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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코닝 (Samsung Corning Co. Ltd.)

작성자대 륙|작성시간11.06.07|조회수650 목록 댓글 0

삼성코닝
10억달러 : 삼성코닝

삼성코닝은 30여년에 걸친 오랜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전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삼성코닝은 보다 일반적인 전자 소재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은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의 비결이 되고 있다.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 간 파트너십 중에서 삼성전자와 미국 코닝사 간의 파트너십은 연매출 10억달러를 넘는 ″10억달러 클럽″ 에 가입할 정도로 많은 성공사례들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졌고 오래 지속되어온 파트너십이다.

70년대초 TV 가 널리 보급되던 시기에 미국 코닝사의 유리 제조 기술을 활용해서 흑백 TV용 음극선관 (CTR)을 생산하기 위해 시작된 이들의 파트너십 관계는 내년으로 35주년을 맞는다. 세계 최고급 수준의 각종 디스플레이 재료와 소재를 생산하고 있는 연구 중심 기업인 삼성코닝은 제조업에서 지식기반 경제사회로 이행 중인 한국에서 선구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1984년 5월 연구센터의 문을 연 이래 삼성코닝의 연구 역량은 일련의 눈부신 업적을 달성해왔다. 그 중에는 2002년 10월 산화인듐주석 (ITO; LCD에 투명한 전도막 코팅을 하는데 사용되는 물질) 나노 파우더의 상용 생산 개시, 세계 최초로 컴퓨터 모니터와 TV 스크린용 박막 트랜지스터 (TFT) LCD 평판 백라이트 개발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삼성코닝은 지난 30여 년에 걸친 산업 및 경제의 격변기에 다용도성과 적응성에 관한 표준을 확립해 왔다. 1973년 말 두 기업의 합병을 통해 설립된 합작법인인 삼성코닝은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많은 찬사를 받아왔고, 업계에서 성공과 성취의 모범이 되고 있다. 199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삼성코닝에 대해서 ″미국 코닝사의 핵심 기술과 오랜 경험이 삼성의 뛰어난 제조/관리 기술과 전자 사업을 수직 통합한 강점과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실현한 점″을 높이 사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합작법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최대 공헌자
삼성코닝은 또 스티븐 보스워드 주한 미국대사 재임 기간 중 (1999~2001년) 주한 미대사관에 의해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사이의 합작법인 중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임 당시 보스워드 대사는 경북 구미에 소재한 삼성코닝 공장을 방문해서 전례 없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가장 최근으로는 지난해 미국 코닝사도 삼성코닝을 ″가장 성공적인 해외 합작법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한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삼성코닝은 외국인 투자 기업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재무 건전성, 수출 기여도, 기술 이전 정도와 중요도 등 3개 기준 측면에서 삼성코닝을 한국의 경쟁력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합작법인으로 선정했다.

한국의 기업 기준으로 볼 때도 삼성코닝의 성장세는 가히 놀랍다. 사업 첫 해에 18억원 (약 250만달러)이던 매출액은 1999년에 이르러 1조 2천억원 (약 10억 9백만달러)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서며 (1달러 = 1,188.82원, CIA 정보보고서) 26년 사이에 660배의 매출 성장세를 달성했다. 그 이후에도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0년 1조 3천억원 (11억 5천만달러; 1,000배 증가), 2004년 1조 4천억원 (12억 2천만달러)을 각각 기록했다.

되돌아 보면, 한국 내 코닝사의 존재는 국내 시장에서 상거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외국계 기업들 중에서도 선구적 위치에서 출발했다. 1851년 애모리 휴튼 1세에 의해 뉴욕에 Corning Glass Works (Corning)란 사명으로 설립된 코닝사는 156년의 역사에 걸쳐 창업주 가계가 회사의 지배 지분을 보유해 왔다. 삼성코닝의 탄생은 1972년 한국에 연락 사무소를 개설한 애모리 휴튼 2세 (창업주의 고손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 (CEO)의 결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아시아 프로젝트의 최대 목적은 주방용품 판매를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코닝사는 Corelle Livingware 내충격성 식기류와 새로 개발한 내열 Pyrex 유리제품 등의 제품군을 통해 확고한 평판을 얻고 있었다.

또한 코닝사는 1947년 유리 TV 화상관의 대량생산 최초로 개시, 1949년 TV 후면 유리의 원심주조법 개발, 1953년 컬러 TV 화상관을 대량생산 하는 등 전자 분야에서도 확고한 신뢰를 얻고 있었다. 서울에 코닝사의 사무소가 개설되기 2년전 코닝사는 광케이블을 개발했다.

1972년 미국 거대기업인 코닝사의 사무소 개설은 같은 해 흑백 CRT TV 생산에 뛰어든 3년차 기업 삼성전자의 주목을 받았다.

리스크 감소
70년대에 걸쳐서 삼성 그룹은 나중에 삼성전자의 일부가 된 삼성 SDI, 삼성반도체통신, 삼성전기 등과 같은 전자 계열사들의 설립에 적극 나섰는데 이러한 노력은 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삼성은 수직 통합형 TV 제조회사를 목표로 1969년 12월 Sanyo, Sumitomo 등과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튜너, 변압기, 축전기 등과 같은 TV 부품 생산에 나섰고 1970년 1월에는 NEC, Sumitomo 등과 또 다른 합작법인을 설립해서 진공관 조립 부품, 흑백 TV CRT 생산에 돌입했다. 두차례의 협정으로 삼성은 완제품 TV를 국내 시장에 판매할 권리를 가진 반면 이들 TV를 수출할 수 있는 권리는 Sanyo와 NEC에게 돌아갔다.

그러한 제약 조건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전세계 TV 시장에서 선도 업체로 부상하기 위해서 엄청난 기술적 장애 요인을 극복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1972년경 Sony 사는 이미 고화질 Trinitron 컬러 TV 를 생산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시장 선점을 위해서 CRT 를 제조하는데 사용되는 유리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 당시 한국에는 CRT 유리 제조업체가 없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합작법인 설립을 염두에 두고 코닝사에게 접근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적었지만 코닝사는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정책 하의 삼성전자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코닝사에게 익숙치 않은 낯선 사업 지역에서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기업과의 파트너십 체결은 시장 진입 위험의 감소를 의미했다. 삼성전자의 경영 역량, 제조 능력, 마케팅 우위를 코닝사의 CRT 기술과 전문 역량과 결합시킴으로써 생겨날 시너지 효과를 염두에 둔 양사는 1973년 12월 20일 50:50 지분 비율로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데 합의했다. 1975년 3월 수원에 완공된 TV 유리 제조공장은 같은 달 18일에 한국에서는 최초로 흑백 TV 용 CRT 를 생산했다. 이 공장은 삼성 그룹의 역량을 통합해서 자체 CRT 를 생산했고 삼성의 수직 통합형 생산 공정을 통해서 하위 산업 부문에서는 TV 를 자체 생산했다.

코닝사의 이 같은 초기 글로벌화 및 외주 시도는 새로운 합작법인 삼성코닝이 첫 번째 사업연도에 흑자를 기록하며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87년 5월 삼성전자가 수원 전자 단지 내에 건설하던 흑백 TV용 유리목 밀봉 공장이 완공되었다.

삼성전자가 흑백 TV 에서 컬러 TV 로 이행한 것은 1983년 3월 수원에 컬러 TV GT관을 생산하기 위한 최초의 공장문을 열면서 시작되었고 1986년 11월에는 두 번째 공장이 문을 열었다.

다각화 전략
삼성코닝의 연구개발 (R&D) 센터는 1984년 5월 문을 열었다. 이 R&D 센터는 미래 핵심 기술의 개발, 제품군 확대를 위한 지속적 혁신 조장, 회사의 생존에 중요한 다각화 전략 추구 등에 중점을 두는 등 삼성코닝의 변화를 위한 동력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R&D 센터는 곧바로 TFT_LCD 용 정밀유리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제품은 정밀유리 생산을 위해 경북 구미에 설립된 삼성코닝의 자매 합작법인인 삼성코닝 정밀유리에 의해 1995년 상용화된다. (두 번째 공장은 충남 아산에 설립되었다.) 삼성코닝 정밀유리는 현재 랩톱 컴퓨터, LCD TV, 디지털 카메라, PDA 에 사용되는 TFT_LCD 를 생산하고 있다.


R&D 센터가 추구한 또 다른 발전 분야는 ITO 코팅 유리와 다양한 세라믹 제품이었다. 이들 제품은 상용화되기까지 그 이후로도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다. 예를 들면 LCD 용 ITO 코팅 유리의 생산은 1988년에서야 구미 공장에서 개시되었고 그 이듬해 삼성코닝은 산화 제2철을 함유하고 있는 연자성 재료인 소프트 페라이트(soft ferrite)를 주 소재로 추가로 다각화하여 고주파 인덕터, 변압기, 초단파 소재 내 자기 소자에 사용했다.

한편 삼성코닝의 컬러 CRT 는 회사는 물론이고 한국을 위한 성장 동력임이 입증되었다. 1989년 말 구미 공장은 증축을 통해 연간 생산능력이 240만개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삼성코닝은 또 수원 전자단지에 Glass Frit (규소 화합물) 공장을 완공한 후 VCR 의 회전식 헤드 변압기용 세라믹 부품의 생산에 돌입했다. 실제로 삼성코닝의 다각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ITO 코팅 유리와 회전식 헤드 변압기 부품은 곧 회사 최대의 수입원이자 전세계 시장에서 1위 제품이 되었다. 해외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도쿄와 뉴욕 (1988년 9월) 및 홍콩 (1989년 3월)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삼성코닝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90년대에 걸쳐 삼성코닝은 해외 생산능력을 확대하여 세계 각지의 고객 요구에 보다 신속히 대응했다. 1991년 6월 삼성코닝은 말레이시아에 SCM 자회사 공장을 설립해서 동남아시아 지역에 컬러 TV 와 CRT 모니터 유리의 생산 기지를 마련했고 이듬해 4월에는 중국 톈진에 또 다른 자회사를 설립해서 회전식 헤드 변압기 부품을 생산했다.

수익성 제고 노력
유럽 시장에 컬러 TV 와 모니터용 CRT 유리를 직접 공급하기 위해서 삼성코닝은 1994년 파산 상태에 놓인 동독의 FGT 사를 인수해서 현지 자회사 SCD로 개명한 뒤 3년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1996년 12월 삼성코닝은 당시 새로 조성된 북미 자유무역 지대를 활용할 목적으로 미국 국경에서 가까운 멕시코의 티후아나에 자회사 공장을 설립해서 TV 유리 및 모니터관을 생산했다.

2년 후인 1998년 8월 삼성코닝은 중국 심천에 소재한 국영 SEG와의 합작법인 심천 SEG 삼성 글래스를 설립해서 중국 시장 내 수상관 수요를 충족시켰다. 삼성코닝은 부채에 허덕이던 SEG를 흑자 전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합작법인은 외국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파트너사와 동일한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설립되었다. 2004년 11월 이 합작법인은 공장 증설을 통해 CRT용 패널 유리와 후면 유리를 연간 150만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 중 하나를 운영하게 되었다.

90년대말경 삼성코닝은 총 생산량의 약 95%를 수출하는 등 생산 제품군에 있어서 시장 주도자가 되었다. 2000년 매출액 1조3천억원을 기록한 삼성코닝의 주력 상품은 ITO 유리, CRT용 프릿 (밀봉) 유리, 회전식 변압기 등이었는데 이들 모두 전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CRT 유리는 전세계 시장점유율 20%를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고 소프트 페라이트 고객 29명 중 24명은 해외 고객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삼성코닝은 전세계 22개 국가, 136개 고객사에게 제품을 납품했다. 한해 전 삼성코닝은 유리, 코팅, 세라믹 등 3개의 핵심 주력 분야를 선정했는데 이는 회사의 미래 성장과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다.

삼성코닝은 수상관 제조 전문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회사를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술의 선두주자로 만들어줄 혁신적 제품의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했다.

LCD, PDP 및 OLED의 표면에 박막 ITO를 부착하기 위한 필수 소재는 ITO 스퍼터링 타깃(sputtering target)이다. ITO 스퍼터링 타깃은 가격 이온을 끌어오는 스퍼터 처리 공정 중 사용되는 원천 소재이며 ITO 코팅 그 자체는 도성과 투명성을 제공한다.

미래는 나노에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스퍼터링 타깃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코닝은 이를 시장 기회로 보고 이 제품과 ITO 코팅 소재의 제조 부문에서 주요 업체로 부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 삼성코닝은 일본 Sumitomo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체결하고 필요한 기술을 이전 받았다. 삼성코닝의 스퍼터링 타깃 공장은 2000년 11월 구미에 완공되었고 그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삼성코닝 제품이 수입품을 대신하는 등 이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구미 공장은 2003년 6월까지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했다. 지난해 100톤이었던 ITO 타킷 생산량은 2007년에는 180톤으로 거의 두 배나 증가할 전망이다.

Sumitomo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체결했던 시기에 삼성코닝은 호주 Advanced Powder Technology (APT)사와도 협상을 개시했다. 2000년 삼성코닝은 아시아 지역내 CMP Slurry (반도체 웨이퍼 연마제) 시장을 위한 나노 파우더를 개발하기 위해 호주의 Advanced Powder Technology (APT)사와 합작법인 Advanced Nano Technologies를 설립했다. 이듬해 APT는 삼성코닝이 APT의 기술을 사용해서 산화세륨 나노 파우더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라이센스 계약을 삼성코닝과 체결했다. 나노 파우더의 세계 시장은 2010년 4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나노 파우더 산업에서 삼성코닝의 지위를 확립하기 위한 2단계 프로젝트 중 1단계로 삼성코닝은 2001년 11월 반도체 웨이퍼 연마용 산화세륨 생산을 위한 시범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그 후 일년도 채 안된 2002년 10월 9일 삼성 코닝은 전도와 투명도를 위해 LCD, PDP, OLED 상에 ITO 박막필름을 코팅하는 사용되는 핵심 재료인 ITO 나노 파우더를 제조하기 위한 공장을 구미 공단에 열었다. 공장 가동식에 참석한 송용로 당시 삼성코닝 사장 겸 CEO는 ″나노소재 사업을 삼성코닝의 미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TO 제품은 삼성코닝 매출액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분야의 시장 선도업체인 일본의 Nikko Mining 및 Mitsui Kinzoku의 시장 지위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코닝은 인듐괴의 주 소비자이기 때문에 삼성코닝은 현재 ITO를 대체할 코닝 소재를 찾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삼성코닝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또 다른 중요 분야인 PDP 필터에 있어서 일본의 Asahi Glass 및 Mitsui Chemical에 앞서고 있다. PDP 필터는 선명하고 생생한 컬러를 구현시키고 PDP에서 발생하는 유해한 전자기파와 근적외선광(NIR)을 감소시키는 등 플라즈마 TV의 화질에 필수적이다.

보다 선명한 화질
삼성코닝은 시장에서 가장 높은 명암비를 자랑하는 PDP 필터를 개발했는데 이 필터는 PDP TV의 패널 표면에 부착될 수 있다. PDP TV의 인기 상승에 고무된 삼성코닝은 관련 기술도 개발했고 2004년 4월 구미의 필터 생산 공장이 가동에 들어갔다. 삼성코닝이 생산한 PDP 필터는 광도를 높이고 외부 광원에 의한 반사를 줄여줌으로써 보다 선명한 화질을 제공하는 탁월한 제품임이 입증되었고 삼성코닝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주요 PDP 필터 제조업체로 부상하게 되었다. 2004년 하반기에 생산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코닝은 그 해에 56만개의 필터를 출하하며 세계 3위의 공급업체가 되었다. 2005년 매출 150만개를 목표로 정한 삼성코닝은 Asahi Glass사에 이어 세계 2위로 급부상했다. Asahi Glass사를 따라잡아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삼성코닝은 2006년 9월 연간생산능력을 260만개로 확대했다. 또한 삼성코닝은 2007년 말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400만개로 높여 일본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릴 계획이다. 세계 PDP 필터 시장은 약 6억 달러 규모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삼성코닝의 주력 제품군에 새롭게 추가된 제품은 질화갈륨 (GaN) 기판이다. 질화갈륨 (GaN) 기판은 삼성코닝과 삼성종합기술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로서 발광다이오드 (LED)를 위한 새로운 광원이다. 2002년 이래로 생산되어온 질화갈륨 (GaN) 기판은 고온/고전력 반도체 제품의 기본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대량 생산이 가시화되면서 삼성코닝은 질화갈륨 (GaN) 기판에 기대를 걸어왔고 마침내 기존의 광원 기판을 대체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간 삼성코닝이 개발한 혁신 제품 중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면광원램프 (FFL)라고 알려져 있는 LCD용 평면 역광 장치일 것이다. 삼성코닝은 2003년 1월 세계 최초로 32인치 FFL을 출시함으로써 단번에 LCD 조립과 작동과 관련한 새로운 LCD 효율 기준을 제공했다. 일반적으로 LCD는 선형 배열 방식의 약 20개의 냉음극형광램프 (CCFL)를 사용하는 반면 한 개의 FFL은 LCD 패널의 표면 전체에 광선을 투사한다. 또 FFL은 보다 향상된 광도와 5만시간이 넘는 긴 수명을 갖고 있으며, CCFL를 사용할 때에 비해서 비용이 최고 30% 절감된다. 40인치 모델은 2004년 8월 출시되었고 50인치 모델은 현재 생산 준비 중에 있다. 2004년 말 최초 생산능력은 연간 1백 만대였지만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외국업체와의 제휴 관계를 통한 번영
삼성전자는 FFL 평면 역광 장치를 사용해서 32인치 LCD TV의 생산을 시작했다. 2004년 독일 Osram Opto Semiconductors사와의 라이센스 계약 하에서 얻은 독점 기술을 사용해서 삼성코닝은 유럽 TV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무수은 FFL 평면 역광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Suppli의 추정에 따르면 이 장치의 전세계 수요는 2004년 8백만 대에서 2006년 2천만대로 증가했다.

삼성코닝은 1975년 흑백 TV용 CRT 유리 생산을 시작했다. CRT 유리는 여전히 삼성코닝의 주력 제품에 속하기는 하지만 최근에 이룬 이 분야의 획기적 혁신 제품인 32인치 HDTV용 CRT 유리는 삼성코닝이 디스플레이 산업의 추세를 따라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준다.

LCD의 부상은 CRT에 도전이 되었고 삼성코닝은 모기업으로부터의 분사 압력을 받게 되었다. 지난해 CRT가 출하량에 있어 전세계 TV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의 CRT 수요량이 엄청나다는 iSuppli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삼성코닝은 제품군 변화와 확장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이루었다. 실제로 반도체용 산화세륨 CMP 슬러리와 GaN 기판의 개발로 삼성코닝은 보다 광범위한 전자소재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계획이다.

삼성코닝의 기업 역사를 통해서 변치 않는 사실은 이 거대기업이 탄생 이후 외국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서 끊임없이 적응하고 번창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코닝은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간의 성공적 협력 사례로서 그리고 비전을 가진 오랜 파트너십으로 기적을 이룬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삼성코닝은 매출 10억 달러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삼성코닝은 CRT 유리, 세라믹, ITO 코팅, PDP 필터, LCD 역광 장치 등의 제품군에서 시장 선도적 업체로 5개 제품은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나머지는 말레이시아, 독일, 중국 등지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종업원 수는 5,500명에 달한다. 삼성과 코닝사 간의 30여 년에 이르는 제휴 관계는 파트너십의 신뢰가 유지될 경우 어떤 이익을 거둘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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