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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다시 만나다)

작성자현수|작성시간26.06.13|조회수20 목록 댓글 0

 

박제된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너무나 울었다.

울다 울다 지친 토끼의 두 눈망울은 짓물러 터진 채 빨갰다. 나무 둥지에 엉거주춤 내달리는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없다. 토끼가 이제껏 보아 온 푸르고 맑은 물빛 하늘은 거기에 없었다.

구름이 두둥실 떠도는 동화 속 같은 하늘은 어디에도 없었다. 토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떨어진들 땅을 무서워할 리 없지만, 아래가 무섭다, 확 무섬증이 달려든다. 땅이 아닌, 흙이 푸석푸석, 나뭇잎이 바삭거리는 그 고향 땅이 아니었다.

토끼는 고개를 휙 내둘러 사방을 살펴봤다. 무른 숲에 도토리, 알밤이 주렁주렁한 그런 자연 속이 아니었다.

여긴 어딜까?

초등학교 생물 실이다.

조금은 기억난다. 여기로 오게 된 첫날의 일들이 떠 오른다.

토끼의 이웃엔 꿩 한 마리가 있었다.

“어이, 꿩 씨!”

토끼는 뻘겋게 짓무른 눈으로 살살 눈웃음을 흘리며 아주 오랜만에 해 보는 농으로 살살거렸다. 토끼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꿩 씨, 같은 신세끼리 뻐길 게 있다고.”

흘낏 쳐다보는 꿩의 눈빛이 퍼렜다.

“난 아무 할 말도 없응게.”

토끼는 꿩하고는 대화하기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다.

‘꿰액!“

아이코, 갑자기 이게 무슨 벽력인가,

토끼는 비명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북이다. 거북이가 점잖지 못하게 방정맞은 고함을 내지를 것이다.

”왜 그려?“
토끼는 퉁명스럽게 거북 보고 묻는다. 거북은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죽도록 찾아다니던 '토끼의 간’이 저 구석에 있구먼,“

토끼는 거북의 코끝이 찡긋거린다, 생각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확!

토끼는 눈알이 빠지는 듯 불이 일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미 가슴에서 떠나버린 자기의 간도 거북이 간처럼 저기서 콩닥콩닥 뛰는 것이다. 내 간이 정말 저기 있었구나.

기다란 유리통 속에 말간 물에 잠겨있는 자기 간을 보았다.

”거북, 당신이 내 간을 자주 본 모양이요. 그렇소?“

토끼는 조금은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지지리도 못나게 표현한 말투였다.

”그럼, 내 일생의 소원이었지, 네 간만 있었다면 난 지금쯤 높은 벼슬 자리에,,,,“

안타까운 울음 섞인 목소리가 끝을 못 맺고 생물 시간의 햇살 속에 잠겨 들었다.

”지금이라도 내 간을 가져가시오, 저기 있잖소.“

토끼는 그때 그럴 줄 알았으면 거북에게 간이라도 내어주고 함께 벼슬을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거짓말로 간이 없다 하고 달아났던 것이 잘 못 된 건가도 생각해 본다.

이미 지금은 간이 몸속에서 빠져나갔기에 거짓도 꾀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이젠 소용없다. 때가 지났단 말이야.“

거북이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닌지 울먹거렸다.

”자네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지,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왔다고, 그래서 그걸 도로 가지러 간다기에 어리석게도 나는 그런 줄만 알았지, 해가 설핏 기울 때가 되어서야 자네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지.“

토끼는 뻘건 눈을 껌뻑거렸다. 그날의 일이 눈앞에 선했다.

깡충깡충 산으로 뛰어올라 달아나면서 바보 같은 거북이라고 얼마나 비웃었나. 결국은 같은 곳에서 같은 신세로 만나고 말 일이었다면 애당초 그렇게 못나게 굴지 않았을 것을.

”그래서 어찌 되었남?“

”어찌 되긴.“

거북은 뻔하지 않으냐는 뜻으로 긴 한숨을 쉰다. 씁쓸한 입맛을 쩝쩝거리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토끼를 쳐다본다.

”계속 얘기해 보게.“

토끼의 재촉에 거북은 다시 눈을 끔뻑거리며 쫑긋 입술을 내밀며 이야기한다.

”우리 용궁엔 규칙이 하나 있지, 해가 지면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잖은가, 나도 오갈 데가 없어서 토끼 자네를 내려준 그 바닷가 근처에서 한없이 기다렸지, 깜빡 조는 사이 이 늙은 목숨 어찌 될까, 걱정도 되었지, 용궁에서 기다리는 용왕님의 병세도 어찌 되었는지 도무지 안절부절못하였지. 그러다가 덜컥 그물에 걸렸지, 해변 근처에 펼쳐놓고 기다리는 어부의 거물에 걸린 거지, 결국엔 이 꼴이지 뭐.“

한 번에 많은 말을 해 놓고 거북은 자신이 참 멍청하다는 표정으로 찡긋거린다. 토끼는 거북이 그물에 걸려서 버둥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결국 그 모든 것이 나 때문인 셈이군.“

토끼와 거북의 끝없는 얘기가 오가는 동안 따스한 햇살은 서쪽으로 곤두박질치고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원수 같던 사이가 어느새 친밀해져서 친구처럼 바뀌는 시간이 되었다.

토끼와 거북을 운명적 만남이 까만 어둠에 눈이 익는다.

마음을 나눌 영원한 친구를 얻은 듯한 엉뚱한 기쁨이 새록새록 바깥에서 하늘을 바라볼 때, 예사롭게 보았던 그 별빛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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