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불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때로는 사찰을 방문하며
그 고요와 침묵을 경험하는 사람들.
나는 이 말을
두 종교를 적당히 섞는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인간의 고통 앞에서 만나는 자리.
기독교의 십자가는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 사랑이고,
불교의 깨달음은
내 안의 집착과 두려움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길이다.
하나는 사랑으로 끌어안고,
하나는 집착을 내려놓게 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부디스트는
기독교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를 더 넓은 사랑의 언어로
사유하려는 사람이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면서도
연꽃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확신은 가지되 오만하지 않고,
믿음은 지키되 배타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말하되 소유하지 않는 신앙.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크리스천 부디스트의 아름다움이다.-옮긴글
나는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니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그런 아버지는 별로 관심조차 두지 않으셨다.
그 이유를 오랜 후에 알게되었다.
하루는 중이 와서 100일기도하라고 했단다.
그것도 밤 12시 넘어서.
아버지는 별 미친 놈 다 본다고 못가게 하셨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무언가 모시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우리 형제들도 모두 불교쪽이었다.
물론 나도 불교서적을 많이 봤다.
중학교 때 서울 문수사로 소풍갔을때 어린 여승을 보고 나도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학 다닐 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대순진리교 다니는 제자는
"선생님의 전생은 스님이다"
증산교에 다니는 제자는 "선교사"라고 했다.
같은 과 여학생은
"당신은 예수를 믿어야 한다"
어느 기도원의 여인은
"당신이 올 줄 알았다.할아버지가 꿈에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다니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증산교, 대순진리,.....등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결혼했는데 바로 아내가 교회를 다니는 여자였다.
나는 애초에 창조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 예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도 아내와 같이 교회를 나간지가 벌써 40여년이 됐다.
두아들 두 손자들도 모두 나간다.
지금도 나는 불교서적을 본다.
잘못 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
나는 크리스천 부디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