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해일이 출간한 서른 권의 수필집 중 열한 번째 수필집 ‘수필가의 인생 열차’ 소개
염해일
오늘도 새벽 4시 30분 모닝콜 소리에 잠을 깬다. 10년 전에 간이식 수술을 받고 내가 직접 개발한 새벽 온몸 운동을 서재에서 책상과 의자를 이용하여 실시한다. 열어 놓은 창문 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고요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니 멀지 않아 찜통더위가 물러갈 것 같다. 어둠이 가시니 참새들이 우리 집 마당 채소밭에 내려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고향 집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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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음력으로 5월 29일에 나의 고향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 큰 어지리에서 오 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을 때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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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받은 교과서에서 어찌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났는지 지금도 그 향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향기에 취하여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동안 1등과 반장을 놓치지 않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칠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수필집을 출간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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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가장 높은 사람같이 보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이 나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되려면 사범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동사범학교에 들어가려면 안동 병설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안동 병설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입시 공부를 많이 하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 안동 병설 중학교가 폐교되었다. 그래서 예천중학교에 입학시험을 쳐서 장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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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에서 예천중학교까지 16Km 떨어져 있어 고향 집에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에 사는 선배이면서 친구의 자취방에 들어가 자취하였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공부하니 공부가 되지 않았다. 토요일만 되면 몸은 교실에 있는데 마음은 벌써 고향 집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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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통지표를 받으니 우리 반 68명 중 34등을 하였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마치고 고향 집에서 새벽에 호롱불 아래에서 아침밥을 먹고 걸어서 다니면서 필기한 노트를 외우면서 공부하였다. 고향 집에서 다니니 마음이 안정되어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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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대구 사대부속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쳤으나 떨어졌다. 그래서 고향에 빈자리가 있는 예천 농업고등학교에 추가로 입학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시 공부하기 위하여 예천중학교에 입학한 나의 남동생과 사촌 동생을 데리고 예천 농고 옆에 방을 얻어 자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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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진신완 수학 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새벽에 예천 영수학원에 강의를 나가면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래서 대학입시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안동 교육대학교에 입학시험을 쳐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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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2월 말로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 1일 자로 나의 고향 면 옆에 있는 풍양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여 풍양초등학교 옆에 방을 얻어 금방 초등학교를 졸업한 셋째 여동생을 데리고 가서 자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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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불편하여 첫 발령을 받고 4개월 15일 만인 1969년 7월 15일 자로 나의 고향 면에 있는 지보초등학교로 이동하였다. 고향 집에서 3년 7개월간 출퇴근하다가 예천군의 중심학교인 예천초등학교로 이동하면서 예천초등학교 뒤편에 부엌으로 드나드는 단칸 셋방을 얻어 분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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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첫 발령 받으면서 시작한 국어과 중등교사 자격 검정고시에 6년 만에 합격하여 예천 초등에서 예천군에 있는 용궁 종합고등학교로 전직하였다. 용궁 종고에 2년 근무한 후 나의 모교인 예천농업고등학교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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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농고에 근무할 때 우리 맏아들이 중3, 둘째 아들이 중1,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대구로 이사 가기로 하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부모님과 떨어져 공부하지 못하였던 가슴 아팠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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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천 농고에서 대구에서 가까운 영천시로 내신을 내었다.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금호여자고등학교로 이동하였다. 금호여고에서 3년 근무한 후 88 서울 올림픽 무렵에 경산고등학교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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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교육부에서 초등학교 경력을 ‘을’경력에서 ‘갑’경력으로 환산하여 주었다. 그래서 중등으로 전직하면서 일찍이 포기하였던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하여 교감 승진에 꼭 필요한 벽지 점수를 받기 위하여 벽지학교가 많은 문경으로 내신을 내었다. 그런데 대구에서 가까운 금호여고와 경산고등학교에 근무하여 이동점수가 낮아 문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예천군에 있는 감천고등학교로 이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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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고등학교에 1년 근무한 후 문경으로 다시 내신을 내어 문경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벽지학교인 문경서중학교로 들어갔다. 내가 문경으로 들어가던 해에 경북교육청에 인사원칙이 벽지학교 근무한 교사는 3년 이내 벽지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인사원칙으로 바뀐 첫해이었다. 그래서 문경에 벽지학교에 국어과 빈자리가 많이 비었다. 그 당시 문경에 들어가면 벽지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2~3년 근무한 후 벽지학교로 들어갈 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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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두고 관운이라고 하나 보다. 내가 벽지학교로 들어가던 해에 재수하던 우리 막내아들이 가톨릭대학 의과대학에 합격하고, 대구 공항에 있는 공군부대에서 방위로 근무하던 둘째 아들이 대구교육대학에 합격하였다. 사람의 한평생에 세 번의 행운이 온다고 한다. 그해가 내 평생에 세 번의 행운이 온다는 가장 큰 행운이 왔던 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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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서중에서 벽지학교 만기인 3년을 근무한 후 선산 여자고등학교로 이동하였다. 선산 여고로 이동하면서 교무부장으로 5년간 근무하면서 교감 승진에 필요한 점수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교감 승진에 필요한 점수는 경력점수(35년 만점), 근무성적(교장이 주는 1등 수, 세 번 연속 받아서 만점),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점수(96점), 60시간 이상 받은 일반연수 세 개의 합산점수(99점, 99점, 98점), 연구점수, 벽지학교 근무점수, 국가 자격연수 점수, 연구학교 근무점수, 농촌학교 근무점수, 주임 근무점수 (7년 만점)을 모두 채우고 나니 교감 승진 대상자로 지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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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연수 세 개를 모으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하였다. 일반연수 세 개 중 두 개는 일찍 99점을 받았다. 그런데 일반연수 점수 한 개가 96점이다. 96점을 1점이라도 더 높이기 위하여 60시간 이상 연수를 수없이 많이 받았다. 그리고 연구점수를 받기 위하여 특별연구 교사, 수업 선도 교사, 현장 교육 연구대회, 경북 교육 예능 글쓰기 대회에 수없이 나가 상을 받아 만점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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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가 자격연수 점수를 받기 위하여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워드 시험에 몇 차례 응시하였으나 독수리 타법으로 시험을 치니 떨어졌다. 그래서 독수리 타법이 아닌 워드 치는 법을 배워 부산 상공회의소에 가서 쳤으나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대전 상공회의소에 가서 워드 3급을 받았다. 워드 3으로 국가 자격연수 점수가 모자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을 쳐서 1급을 받아 국가 자격연수 점수 만점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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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등으로 전직하면서 초등학교 경력을 ‘을’경력으로 환산하여 주어 일찍 교감 승진을 포기하였다. 그래서 교감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전혀 모아 놓지 못하였다. 금호여자고등학교 근무할 때 학생부장이 명예퇴직하는 자리에 주임할 사람이 없어 밀려서 1년 했다. 그리고 문경서중에서는 학교에 들어온 순서대로 주임을 하는 내규가 있어 마지막 3년 차에 연구 주임 1년을 했다. 선산 여고로 이동하면서 교무주임을 5년하고 나니 주임 점수 7년 만점이 되니 교감연수 대상자로 지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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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 국어 교사 몇백 명 중에서 일 년에 두세 사람이 교감연수 대상자로 지명을 받기 때문에 0.001점 차이로 지명을 받고 못 받을 때였다. 교감 승진 대상자로 지명받고 교감 자격연수를 받았다. 선산 여고에서 노부모 봉양 조건으로 1년 유예하여 선산 여고 근무 6년 만에 의성군에 있는 다인 종합고등학교 교감으로 승진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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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종합고등학교에 1년 근무한 후 대구 집에서 통근하기 위하여 구미에 있는 진평중학교 교감으로 이동하여 진평중학교 근무 3년 만에 교장 자격연수 대상자로 지명받고 경산 기차역 부근에 있는 장산중학교 교감으로 이동하였다. 장산중학교로 이동하면서 교원대학교에서 교장 자격연수를 받다가 과음과 과로로 간암에 걸려 외국에 나가 3개월 기다려 간이식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포항 호미곶 광장 솔숲 속에 있는 대보중학교 교장으로 승진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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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중학교 교장으로 승진 이동하면서 관광지로 바다가 있고 공기 좋은 호미곶에서 생활하면서 나의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대보중학교에서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독서지도에 중점을 두고 학교 경영하였다. 학교 가까이에 있는 포항해병대에 입대한, 서울대학교 해병대원과 호미곶으로 결혼한 외국인을 방과 후 교사로 초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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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중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대구 경한 라이오스 클럽에서 학교에 기증한 자전거를 상품으로 내 걸고 학교장배 독서 골든벨 대회를 자주 열어 학생들의 독서 습관화시켰다. 그리고 조용한 교장실에서 매주 다섯 권의 수필집을 빌려 1년간 250여 권을 읽고 나니 글이 줄줄 나와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대보중학교에 1년 6개월간 근무한 후 영천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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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여자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독서지도에 중점을 두고 학교 경영하였다. 영천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서 골든벨 대회에서 영천여자중학교 학생들이 1, 2, 3등을 모두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정년퇴직하던 해에 영천여자중학교 제49회 졸업생 239명에게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취업이 되었을 서른한 살이 될 자기에게 쓴 편지와 중학교 때 입었던 교복과 즐겨 먹던 가자 봉지 외 스물다섯 가지를 타임캡슐로 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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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여자중학교에서 초, 중, 고 열다섯 학교에서 42년간 근무한 후 내 나이 65세 되던 2011년 2월 14일에 영천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식을 하고 그해 2월 말로 정년퇴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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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두 달을 남겨 놓고 정년퇴직 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하여 금빛평생교육봉사단에 원서를 내었다. 100명 모집에 153명이 응시하여 면접고사를 거쳐 입단하였다. 그리고 정년퇴직 한 달 전에 정년퇴직 후 대학 강의를 듣기 위하여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국립대구박물관 대학에 새벽에 나가 줄을 서서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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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곧바로 대구 서부도서관에서 정규 학교 교육받지 못하신 어르신 30여 명에게 6년째 한글 교육봉사를 하면서 국립대구 박물관대학에 나가 6개월간 강의를 듣고 실크로드 답사를 마지막으로 8월 말로 수료하였다. 9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운경 대학에 입학하여 6년째 강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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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교육청에서 다문화 학생 한국어 지도 강사를 모집하였다. 응시하여 다문화 학생(베트남)에게 한국어 지도 봉사도 하고 있다. 대구 문화 지킴이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대구 시내 문화재 보호 활동과 모니터링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연금공단에서 모집하는 봉사활동에 원서를 내어 교육까지 받고, 대경 뿌리학교에서 교육위원으로 초, 중, 고 학교 현장에 나가 학생들에게 뿌리교육과 전통 놀이지도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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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인 대경 뿌리학교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매일신문의 자매지인 ‘시니어 每日’을 창단하던 해에 1, 2차 기자 시험에 응시하여 최종 합격하여 기자로 활동도 활동하고 있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 하여 대구시 교육감으로부터 최우수 금빛평생교육봉사단원으로 선정되어 감사패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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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4일에 정년 퇴임식을 할 때 교장 시절에 쓴 153편의 글로 565페이지의 대형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을 출간하여 정년 퇴임식에 참석하여 축하하여 준 손님들에게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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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하던 2011년 5월에 순수종합문예지인 ‘월간 문학세계’와 ‘한국 문학 세상’ 신인 문학상에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에 실려 있는 ‘아내의 생일’을 두 문예지에 동시에 응모하여 동시에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203회에 실린 심사평과 당선 소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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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진솔함이 뒷받침된 탄탄한 문장력
염 해일 임의 ‘아내의 생일’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아내의 생일’에서는 순수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늘 무관심하게 지내다가, 미역국을 끓여 정성을 담아내는 진솔한 마음을 잘 묘사하였다. 문장과 문장 그리고 단락과 단락을 구성해 내는 솜씨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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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특징은 순수함과 진솔 성에 있다고 본다. 수필은 고백적이고 개성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장과 구성력, 그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자기의 주관을 뚜렷하게 잘 드러내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수필의 참됨은 진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의 순수함과 진정성에서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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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수필가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신인상 등단이 새로운 출발이란 점을 명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도창회, 최정규, 金天雨, 정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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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K형에게!
K형, 지난 2011년 2월 14일 42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 퇴임식을 하였소. 그날은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내려와서 나의 정년퇴임을 축하하여 주었소. 선녀님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가느라고 40분이면 도착할 학교까지 무려 1시간 20분이나 걸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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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였소. 아들들과 집사람, 친구들, 제자들, 친지들이 그 어려운 눈길을 뚫고 오고 있다네요.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맙더군요. 아들들과 우리 집사람은 친구 L 원장이 한창 축사를 하는 중에 들어왔소. L 원장이 하던 축사를 멈추고 600여 명의 축하객에게 집사람을 소개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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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원장의 축사 내용 한 부분을 소개하겠소.
염 교장은 그동안 써 놓았던 글을 가려 뽑아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을 출간하였습니다. 순수한 자신의 글 153편을 실어 놓았습니다. 기나긴 교직 생활에서 비롯되었던 환희와 갖은 애환들, 자연을 관조한 내면세계, 부조리한 사회의 비판, 인생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가족사를 담담하게 펼쳐 놓았습니다. 오늘 책을 받아 가셔서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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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정년퇴직 기념수필집을 친지, 선후배들, 제자, 학부형들에게 나누어 주었소. 작가인 K형에게는 맨 마지막으로 보냈소. 졸작을 K형께 보여 드리기가 겁이 나고 두려웠소. 그러나 K형은 저의 졸작에 대하여 격려와 극찬하여 주었소. 그리고 “등단하여 보라”고 권하였소. 그 칭찬에 멋도 모르고 투고하였소. 그런데 당선이 되었다네요. K형,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K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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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졸작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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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로 등단한 후 내가 살아온 시대상을 반영하는 생활 글을 쓰고 있다. 200자 원고지 40매 내외의 글을 써서 매주 월, 목요일에 다섯 곳의 인터넷 카페와 페이스북에 올린 후 나의 글 친구 300여 명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다. 글을 보내지 않는 요일에는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키네마스터로 편집한 후 시나리오를 써서 내 목소리로 녹음하여 올린 유튜브를 나의 글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다. 카톡 친구들로부터 받은 유용한 정보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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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해마다 두 차례 설과 추석 명절에 수필집을 출간하고 있다. 정년퇴직 6년째인 이번 추석에 염 해일의 열한 번째 수필집 ‘수필가의 인생 열차’를 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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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수필가란 인생 열차를 타고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 삶도 수필가란 인생 열차를 타고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련다.
2016년 8월
대구 폭염 속에서
염해일
차례
들어가는 글 2
제1부 가족 6
1. 집사람의 칠순 잔치 7
2. 집사람 칠순 잔치 선물로 띄우는 축하 편지 11
3. 아들들과 함께 찾은 고향 부모님 산소 16
4. 맏아들이 준 티켓으로 대구 사랑 효 콘서트 관람 21
5. 국수 나무집에서 내가 읽어 준 카톡 25
6. 집안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는 용돈 30
7. 40대 막내아들과 하루 35
8. 첫 경험 39
제2부 모임의 이모저모 44
9. 교감 동기회 회장님의 마술공연 45
10. 마을 부부 모임인 범우회 49
11. 경산고 모임인 경우회 53
12. 대학 동기들의 모임인 삼경회 57
13. 안동교대 3회 4반 모임인 삼사회 61
14. 운경 대학 구인회 모임이 있던 날 65
제3부 봉사활동 69
15. 건배사‘소취하 당취평과 원더풀’ 70
16. “겨울 방학에도 한글 교육해 달라.”는 어르신들 75
17. 대구 달성 토성의 문화재를 찾다 80
18.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을 모신 모명재 답사 85
19. 대구문화지킴이회에서 카페 활성화 상을 받던 날 89
20. 운경 은빛 대 가요제 93
제4부 등산 98
21. 고향 친구 부부 모임에서 궁산 등산 99
22. 앞산 자락 길을 등산하던 날 104
23. 함지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109
24. 디스크를 고쳐준 두리마루 등산 113
25. 수리봉 등산 117
26. 개구리 사건이 있었던 와룡산 등산 121
제5부 국내 여행 125
27. 집사람과 경주 천마총과 첨성대를 찾다 126
28. 400년 전 관속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랑 편지 130
29. 마이산 탑사를 찾아서 134
30. 예천 명봉사에서 문종대왕 태실비와 이두 비문 관람 138
제6부 해외여행 142
31. 남유럽 여행을 가기 위하여 인천공항을 가다 143
32.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의 모습 147
33.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151
34. 땅끝마을‘인 까보다로까’에서 대서양 조망 후 신트라 찾아가는 길 155
35.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트라 159
36.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시내 유적지 관람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