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기 초기불전학림 『맛지마 니까야』 제1권, 제4강 소식입니다.
제16기 학림의 네 번째 강의가 9월 27일, 화요일 저녁, 7시 반부터 두 시간 동안
초기불전연구원 공식 YouTube 채널인 ‘초기불교TV’를 통해 실시간 방송에 동참하신
120여 명의 학림 수강생들과 함께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꾸준히 생방송 강의에 출석하시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원장 스님으로부터 삼귀의와 오계를 수지하고 「자애 경」과 「큰 행복 경」 합송 후,
물질 즉 이 ‘몸’을 생기게 하고 유지시키는 네 가지 요인인 ‘업, 마음, 온도, 음식’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유익한 인사 말씀을 들었어요. 보시-지계-수행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이 몸을 조화롭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자세한 내용은 담마와나 법우님이 편집해서 올리는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본 강의에서는 「모든 번뇌 경」(M2)과 「법의 상속자 경」(M3)의 핵심을 잠깐 복습한 후,
이어서 『맛지마 니까야』 네 번째 경인 「두려움과 공포 경」(M4)을 217쪽까지 공부했고요,
다음 주에는 「두려움과 공포 경」을 마저 보고 다섯 번째 경인 「흠 없음 경」(M5)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경
Bhayabherava Sutta(M4)
: 이 경은 부처님께서 ‘전에 내가 정각을 이루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로 시작하시며 부처님의 성도 과정에 대해 설하시는 내용이 담긴 『맛지마 니까야』의 여섯 개 경들 중 하나로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숲과 밀림의 외딴 곳에서 한거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여쭙고 세존께서 상세하게 설명하시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숲이나 밀림의 외딴 곳에서 홀로 수행하면서 생길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를 세존께서 16가지 방법으로 모두 극복하시고 4선(禪)과 3명(明)을 성취하신 과정을 자눗소니 바라문에게 설하시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고 재가신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Bhaya(두려움)와 bherava(공포)는 둘 다 동사의 어근이 √bhī (to fear, 두려워하다)로 같다. 따라서 두 단어는 동의어이며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문맥에 따라 Bhaya를 공포로, bherava를 두려움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서언
1. 경이 설해진 곳: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
2. 자눗소니 바라문의 질문
☞ 주석서에 의하면 자눗소니 바라문은 여러 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재가신자인데, 꼬살라 왕의 높은 궁중제관이었으며 ‘자눗소니‘라는 명칭은 이름이 아니고 직위를 뜻한다고 한다.
1) “고따마 존자시여, 이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선남자)들은 고따마 존자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습니다. 존자께서는 그들의 지도자이시고, 돕는 분이시고, 인도자이십니까? 이 사람들은 존자님을 본보기로 삼습니까?”
⇒ 세존께서 그렇다고 대답하신다.
2) “①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② 한거(kāya-viveka, 몸의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③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④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 세존께서 그렇다고 대답하신다.
3. “바라문이여, 전에 내가 정각을 이루지 못한 보살이었을 적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견뎌내기 어렵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다.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
☞ 보살은 bodhi-satta, bodhi-satva(보리 살타)에서 나온 말인데, 초기 경들에서는 본경에서처럼 세존께서 깨닫기 전, 출가해서 깨닫기 위해 수행하던 시절의 스스로를 부르시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를 대승불교에서 보편화, 일반화해서 부처가 되기 위해 6바라밀을 닦는 구도자를 출가, 재가 총칭하여 보살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부처님 당시 부처님의 출가 제자를 부르는 호칭은 sāvaka(사-와까, 성문)였고 성문승의 목적은 부처님 가르침인 팔정도를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는 것이었다.
■ 본문
[세존께서 외딴곳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신 과정을 16가지로 설하심]
4.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살생 등]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다.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①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몸의 행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 * 사문은 집을 떠나 독신생활을 하는 수행자(부처님 제자들도 사문), 계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될 수 있다.
바라문은 인도의 종교인, 지식인을 대표하는 특정 바라문 계급 출신, 독신이 아니다. 부처님 제자들 중에 바라문 출신이 많았다.(사리뿟따, 목갈라나 등)
☞ *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 주석서에 의하면, 해로움(불선, akusala)이란 비난받아 마땅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두려움(bhaya)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뜻에서, 공포(bherava)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뜻에서 해로움이다.(MA.i.113~114)
「청정도론」 제20장~제22장에서 설명하고 있는10가지 위빳사나 지혜 중 네 번째 지혜인 공포의 지혜(공포로 나타나는 지혜, bhayatupaṭṭhānañāṇa)는 두려움이기는 하지만 공포로 나타나는 위빳사나 지혜이기 때문에 여기서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라고 표현하셨다.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도 있지만 위빳사나 지혜에 속하는 공포도 있기 때문이다.
5. ~7
②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말의 행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③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마노의 행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④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생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8.
⑤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9. 악의와 타락한 생각을 품은 자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⑥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자애로움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0.
⑦ 나는 내 자신 안에서 해태와 혼침이 없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1. 들뜨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자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⑧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고요한 마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2.
⑨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의심을 건넜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3.
⑩ 나는 내 자신 안에서 나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4.
⑪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소름끼침이 없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5.
⑫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바라는 것이 적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6.
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열심히 정진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7.
⑭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마음챙김의 확립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8.
⑮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삼매의 성취를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9.
⑯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통찰지의 구족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세존께서 행주좌와(行住坐臥) 한 자세를 유지한 채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심]
20.
“바라문이여, 상서로운 날로 알려진 보름 중의 14일, 15일, 8일의 밤에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동산의 탑전이나 숲의 탑전이나 밀림의 탑전 같은 그런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내가 머무는 동안 짐승이 오거나 공작새가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바람이 낙엽과 쓰레기를 흩날렸습니다. 그때 내게 ‘지금 다가오는 이것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꼭 두려움을 기대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내가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어떤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든, 그 자세를 유지한 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리라.'
바라문이여, 그때 내가 포행을 하고 있을 때(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않고 오직 포행을 하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내가 서 있을 때(住) ....
내가 앉아 있을 때(坐) ....
내가 누워 있을 때(臥) .... 오직 누워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초월하심]
21.
“낮을 밤으로, 밤을 낮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문 바라문들은 어리석음으로 살지만 나는 밤이면 ‘이것은 밤이다.’라고 인식하고 낮이면 ‘이것은 낮이다.’라고 인식합니다. (* 잘못된 인식은 까시나 수행자가 출정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새소리로 인해 밤낮을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주석서에서 설명함. 그러나 세존께서는 바르게 수행하심)
바라문이여,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한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열반)과 이익(도, magga)과 행복(과, phala)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할 때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22.
[불굴의 정진, 마음챙김의 확립, 몸의 경안, 마음 집중이 생김]
⇒ 7각지(七覺支) 중 네 가지 요소를 갖추셨음을 말씀하심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을 차례로 구족하심]
※ 선정에 들기 위한 조건
1) 다섯 가지 장애(nīvaraṇa)를 극복해야 함: ① 감각적 욕망(kāmacchanda), ② 악의(vyāpāda), ③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 들뜸과 후회(uddhacca-kukkucca), ⑤ 의심(vicikicchā)
2) 다섯 가지 선의 구성요소(jhānaṅga)가 확립돼야 함: ① 일으킨 생각[尋(심), vitakka] ② 지속적 고찰[伺(사), vicāra] ③ 희열[喜(희), pīti] ④ 행복[樂(락), sukha] ⑤ 집중[一境性(일경성), 정(定), ekaggatā]
① 일으킨 생각은 해태와 혼침을,
② 지속적 고찰은 의심을
③ 희열은 악의를
④ 행복은 들뜸과 후회를
⑤ 집중은 감각적 욕망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역할을 함.
23.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쾌락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不善法]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 고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4.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5.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이[禪 때문에]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성자들이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6.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족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 법사 스님께서 파일로 올려주신 참고자료 중 5종선에 관한 내용입니다.
☞ 경에서는 넷으로 분류한 禪[四種禪,jhāna-catukka]을, 아비담마에서는 다섯으로 분류한 禪[五種禪, jhāna-pancaka]을 설한다. 경에 나타난 네 가지 禪의 초선에 나타나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세분해서 초선과 제2선으로 나누어 아비담마에서는 전체를 다섯 가지로 재구성한 것이다.
초기경들은 이 다섯으로 분류한 禪[五種禪]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오염원경」(M128) 등은 암시적으로 이런 분석에 대한 기초를 마련해주고 있다. 「오염원경」(M128)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삼매를 설하셨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런 나는 ① 일으킨 생각이 있고 지속적 고찰이 있는 삼매를 닦았다.
②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 고찰만 있는 삼매를 닦았다. ③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는 삼매를 닦았다.”(M128 §31)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를 각각 사종선(四種禪)과 오종선(五種禪), 혹은 4종선과 5종선으로 옮기고 있다. 「오염원경」(M128)의 이 부분도 아비담마에서 禪을 오종선으로 세분하는 경전적인 근거가 된다. 4종선과 5종선의 분류에 대해서는 『청정도론』IV.86을 참조하고 5종선에 대한 문자적인 설명을 비롯한 해설은 『청정도론』IV.198~202에 잘 나타나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두 분 스님께서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고
보리원 신축불사가 원만하게 잘 회향되기를 기원합니다!
학림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들께서도
환절기에 마음, 온도, 음식 관리 잘 하셔서
건강 잘 유지하시고 계속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학림이 잘 진행되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시고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은 담마와나 법우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