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_()_
라꾼따까 밧디야 경3 (Ud7:5)
1.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는 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서 세존께 다가갔다.
2. 세존께서는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대부분의 비구들이 경멸하는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가 멀리서 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대부분의 비구들이 경멸하는 저 비구가 오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크나큰 신통력과 크나큰 위력을 가졌다. 그리고 이 비구가 얻지 못한 증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3.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흠집 없는 바퀴와 흰 차일을 가졌으며
하나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가 구르나니
근심 없고 흐름을 끓었으며
속박없이 오는 그를 보라."
※ "마음챙김이라 부르는 하나의 바퀴살을 가졌다는 뜻이다"
※ 이 우러나온 말씀은 [상윳따 니까야] 제 4권 까마부 경> 1(S41:5) &3에도 게송으로 나타난다. 게송에 나타나는 모든 술어는 문자적으로는 마차(ratha)에 해당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아라한에 해당한다. 자세한 설명은 《우다나 주석서》에 나타난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흠집(ela)이란 결점(dosa)을 뜻한다. 결점이 없는 것이 '흠집 없음(nela)'이다.
마차(ratha)는 '흠집 없는 바퀴'에 비유되는데 마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그것이 바퀴가 흠집이 없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지극히 청정한 계를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라한과의 계를 뜻한다.
'차일'은 마차 위에 펼친 양털 옷감 등인데 '흰 차일'은 지극히 청정하고 새하얀 아라한과의 해탈을 뜻한다.
'근심없고'란 번뇌의 동요가 없음은 뜻하는데 그 마차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흐름을 끓었으며'라고 한 것은, 보통의 마차는 굴대와 바퀴통에 계속해서 기름이 흐르지만 이 마차는 36가지 갈애의 흐름을 완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에 그런 흐름이 끓어진 것이다.
'속박없음'이는 것은, 보통의 마차는 차축 등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많은 묶음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 마차에는 모든 속박들, 즉 족쇄들이 완전히 제거 되었다. 그래서 속박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공덕으로 모든 번뇌를 소멸하게 되기를!
이러한 공덕으로 열반에 이르기를!
지금 행한 이 공덕을 모든 존재에게 나누어지기를!
저희들의 안식처인 보리원에 귀의합니다.
이러한 진실한 말로 두 분 스승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길!
빠알리 삼장 역경 불사가 원만하게 성취되기를!
보리원의 불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역경과 전법.수행의 중심 도량이 되기를!
저와 저의 가족과 이웃들이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고통 없이 안온하기를!
이 세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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