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보리원 불사 원만성취 발원 100일 기도 (96일째)

작성자아누붓다(香那)|작성시간22.08.03|조회수75 목록 댓글 15

梵網經

범천의 그물, 견해의 그물

Brahmajāla Sutta(D1)

 

  법을 통한 칭송

 

  Ι. 18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Ι-1. 영속론자들

  Ι-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2.1.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네 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2.2.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수축한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산다.”

 

2.3.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팽창한다.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4.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5.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곳에 먼저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염원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2.6. “비구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으며 뒤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생겼으며 더 힘이 약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존자 범천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런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7.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2.8.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2.9.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은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다.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유희로 타락해 버려서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2.11.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2.12.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음이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고 마음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타락하여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다. 그런 우리는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3.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스스로 자신이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눈이라 하고 귀라 하고 코라 하고 혀라 하고 몸이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변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心]이라 하고 마노[意]라 하고 알음알이[識]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4.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1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꿰뚫어 안다.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리원 불사가 아무런 장애 없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역경과 전법의 중심도량이 되기를!

이 세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모든 중생들이 고통 없이 안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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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사마와띠 | 작성시간 22.08.04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사두~사두 ~사두
    -()()()-
  • 작성자메따 | 작성시간 22.08.04 사두 사두 사두
    _()_ _()_ _()_
  • 작성자purahan | 작성시간 22.08.05 사두 사두 사두
    _()__()__()_
  • 작성자수마나 (무량심) | 작성시간 22.08.08 사두 사두 사두 ()()()
  • 작성자sumangala | 작성시간 22.08.11 사~두 사~두 사~두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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