梵網經
범천의 그물, 견해의 그물
Brahmajāla Sutta(D1)
법을 통한 칭송
Ι. 18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Ι-1. 영속론자들
Ι-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Ι-3.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
Ι-4. 애매모호한 자들
2.2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애매모호한 자들인데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2.24.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不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러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5.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러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열의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아니면 적개심을 가져올 것이다. 나에게 열의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적개심을 가져오는 것은 나에게 취착이 될 것이요, 나에게 취착이 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취착을 두려워하고 취착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함을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6.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러한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학식 있는 사문·바라문들은 영리하고, 다른 자들의 교리에 정통하고, 머리털을 쪼갤 수 있는 능숙한 궁수처럼 [요점을 지적하고], 예리한 통찰지로써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버린다고 생각되는데, 이 [유익함과 해로움에 대해] 그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서, [내가 말한 이유 가운데서 허점을 발견하여] 나를 논파해 버릴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 나를 논파하면, 나는 그들에게 대꾸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계속된 질문을 두려워하고 계속된 질문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7.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멍청하고 대단히 어리석다. 그는 멍청하고 대단히 어리석어서,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①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이 있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②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없소?’라고…
③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④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⑤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소?’라고…
⑥ 만일 그대가 ‘화생은 없소?’라고…
⑦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⑧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⑨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 과보[異熟]는 있소?’라고…
⑩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소?’라고…
⑪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⑫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⑬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오?’라고…
⑭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지 않소?’라고…
⑮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오?’라고…
⑯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오?’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8.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2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꿰뚫어 안다.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리원 불사가 아무런 장애 없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역경과 전법의 중심도량이 되기를!
이 세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모든 중생들이 고통 없이 안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