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11일 오후 2시 ☸ zep – 메타버스 수요니까야읽기 https://zep.us/play/8Ldo18 으로 접속하여 모인 법우님들과 함께 ❂ 빠알리 예불 독송 ❂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제13장 공 품] 세존께서 염원 혹은 원력보다는 팔정도의 실참수행을 강조하신 「부미자 경」(M126)을 읽고 주해를 살펴본 후 해설을 읽으면 정리하였습니다. 이어서 아누룻다 존자가 빤짜깡가 목수에게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을 설명한 「아누룻다 경」(M127)을 읽고, 주해와 해설을 읽은 후에 오랜만에 입장하신 담마와나 미디어팀장님과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힘찬 기운으로 다음 「오염원 경」(M127)까지 읽은 후에 마쳤습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 법이 오래오래 머물기를! 「부미자 경」(M126) 해설 중에서 본경은 자야세나 왕자와 그의 외삼촌인 부미자 존자와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왕자의 처소를 찾은(§2) 부미자 존자에게 왕자는 ‘염원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 가지기도 하고 가지지 않기도 하고, 가진 것도 아니고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건 간에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그 결실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문․바라문의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여쭙고(§3) 부미자 존자는 세존께 다가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드린다.(§§4~7) 세존께서는 그들이 그릇된 견해 등의 8가지 그릇된 도를 가졌다면 아무리 청정범행을 닦더라도 염원의 있고 없음과 관계없이 그 결실을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그릇된 도는 결실을 얻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여러 비유와 함께 명료하게 말씀하신다.(§§9~13) 반대로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든 팔정도를 가졌다면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으니 그런 바른 도는 결실을 얻는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위의 동일한 비유를 바른쪽으로 적용하신다.(§§14~18) 성스러운 팔정도는 부처님의 최초설법인「초전법륜경」(S56:11)의 내용이면서 세존의 마지막 설법의 내용(D16 §5.27)이기도 하다. 이처럼 팔정도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실천도이면서도 진정한 사문과 바라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이처럼 본경은 염원 혹은 원력보다는 팔정도의 실참수행을 강조하고 계신다. 「아누룻다 경」(M127) 해설 중에서 괴로움을 종식시키고 괴로움에서 풀려나고 벗어나는 해탈(vimutti)은 초기불교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래서 니까야에는 이러한 해탈에 대한 여러 가르침이 나타난다. 본서 제4권의 찾아보기에서 마음의 해탈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본서에서만 해도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 등 14개 이상의 해탈에 관한 술어가 나타나고 있다. 벗어나는 대상과 벗어나는 방법과 벗어나는 정도와 벗어나는 당체 등의 차이에 따라서 이런 다양한 해탈에 대한 가르침이 초기불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해탈들 가운데 본경에서는 무량한 마음의 해탈(appamān*ā ceto-vimutti)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mahaggatā ceto-vimutti)이 논의되고 있다. 본경에서 빤짜깡가 목수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이라는 것은 서로 뜻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가, 아니면 뜻은 같고 표현만 다른가를 질문한다.(§4) 아누룻다 존자는 뜻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고 대답하면서(§6) 무량한 마음의 해탈을 4무량심의 정형구로 정리한다.(§7) 그리고 비구가 한 그루의 나무 뿌리만큼의 장소를, … 나아가서 바다에 둘러싸인 대지만큼의 장소를 고귀함으로 가득 채우고 머무는 것을 고귀한 마음의 해탈이라 한다고 정리한다.(§8) 주석서는 “고귀한 마음이란 색계와 무색계의 마음이다.”(MA.i.280; AA.iii.776)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귀한 마음의 해탈의 결과에 따른 존재의 종류를 보이기 위해서”(MA.iv.201) 작은 광명[小光]으로 충만한 천신, 무량한 광명[無量光]으로 충만한 천신, 오염된 광명으로 충만한 천신, 청정한 광명으로 충만한 천신의 네 가지 존재의 태어남을 설명하며(§9이하) 이어서 비유를 들고 있다.(§§10~12) 아누룻다 존자는 전에 오랜 세월 그 천신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고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가 왜 천안제일(A1:14:1-5)로 불리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보기가 된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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