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애 경, 큰 행복 경, 보배 경을 읽고 나와 가족,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한번 더 나와 가족,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보리원에서 앙굿따라니까야 3권 제4장 수마나 품 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저도 참석하였습니다. 백중 기도를 마치고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앙굿따라니까야 3권 제4장 수마나 품 중 다음 부분이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시하 경( A5:34)
2. "세존이시여,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을 천명하실 수 있습니까?"
"천명할 수 있다. 사하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하여 ,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이것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이다.
다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가까이한다.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주인을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가까이하는 이것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이다.
다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에게는 좋은 명성이 따른다.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에게 좋은 명성이 따르는 것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이다.
다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나 바라문의 회중이나 장자의 회중이나 사문의 회중이나 그 어떠한 회중에 다가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간다.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이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나 바라문의 회중이나 장자의 회중이나 사문의 회중이나 그 어떠한 회중에 다가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가는 이것도,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이다.
다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나는 이것은 내생의 보시의 결실이다."
3."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시하 대장군이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세존에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이 저를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가까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제겐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는 끄샤뜨리아의 회중이나 바라문의 회중이나 장자의 회중이나 사문의 회중이나 그 어떠한 회중에 다가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갑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세존께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세존에 대한 저의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하다, 시하여, 참으로 그러하다, 시하여,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
그리고 앙굿따라 니까야 제 3권 주석 75) 115쪽에 '하찮은 것으로 생활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은 그것의 주인, 어른, 임자가 되어 보시하는 것이며, 이것과 관련하여 보시의 주인이라고 말했다.'는 부분에서 저는 제가 보시를 할 때, 보시물의 하인, 친구, 주인 중에서 어떤 존재로 보시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습니다.
오늘도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보리원 두 분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명상을 지도해주시는 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고 명상하시는 법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