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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인과 정신건강] 완벽주의자 말러가 겁냈던 '9번 교향곡' 저주는 무엇일까요?

작성자초동|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말러와 강박증

 

현악기 소리가 아주 조용히, 길게 숨 쉬듯 시작돼요. 마치 한참 망설이다가 겨우 말문을 여는 순간 같죠.

그 사이로 하프 소리가 맑고 부드럽게 울려요. 물결처럼 퍼지면서,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어

줘요.

 

이 음악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예요.

이 곡은 말러가 아내에게 청혼하기 위해 작곡한 사랑의 편지로 알려져 있어요. 또한 영화에서도 자주 쓰였는데

.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71)’에서는 아름다움과 죽음을 함께 느끼게 하는 음악으로 쓰였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서도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어요.

▲ 위키피디아

 

음악을 통해 이렇게 깊은 감정을 표현한 말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말러는 아주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완벽해지려는 마음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곡을 한 번에 쓰고 끝내지 않았어요. 여러 번 고치고 또 고쳤

어요. 이미 완성된 곡도 다시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당대에 유명한 지휘자이기도 했던 그는 관현악단 연주

자들에게도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했어요. 그들의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지 않았어요.

 

이런 모습은 정신의학적으로는 강박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박적 성격은 단순히 꼼꼼한 것과는 조금 달라

. 틀리는 것이 너무 싫고,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상태예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일은 바로 죽음인데요. 그래서 강박적인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해요.

 

당시 작곡가들 사이에 ‘교향곡 9번을 쓰면 죽는다’는 말이 있었어요.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9번 교향곡을 마지막

으로 세상을 떠났고, 브루크너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하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말러도 이 이야기를 신경

썼어요. 그래서 그는 아홉 번째 교향곡 작품을 쓰면서 일부러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어요. 그 곡이 바로

‘대지의 노래’예요. 사실은 교향곡이나 다름없는 작품인데, 9라는 숫자를 피한 거죠. 이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피하려는 마음을 보여줘요. ‘대지의 노래’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피했다고 생각한 말러는

다음 작품으로 9번 교향곡을 썼어요. 그리고 10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죠.

 

말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죽음을 많이 겪었고, 딸도 일찍 잃었어요. 그래서 그는 세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는 불안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은 세상을 더 통제하려는 마음이 강해질 수 있어요. 완벽해지려는

마음은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도 해요. 계속 더 잘하려고 하다 보면 지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보통 완벽주의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말러의 삶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요. 완벽주의는

말러의 경우처럼 큰 창조의 힘이 되기도 해요. 말러의 음악이 끝날 때쯤 우리는 그의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히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한 사람이 불안한 마음을 끝까지 붙잡고 버텨낸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

라는 것을 느끼게 돼요.

 

이헌정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6.06.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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