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괄베르또(John Gualbert), 창설자, 1073년
축일 : 7월 12일
비스도미니 집안의 아들인 그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그느 형을 살해한 살인자를 만났을 때,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빼어들었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용서해 주었다. 이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산 미니아또 델 몬떼로 가서 베네딕또회원이 되었으나, 자신을 원장으로 간택하려는 눈치를 채고는 더욱 고적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떠났다. 그가 까말돌리의 어느 은수소에 당도하면서부터 자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살았다. 이것이 발롬브로사회의 시작인데, 성 베네딕또의 초기 규칙을 따르는 발롬브로사회원들은 애덕과 청빈을 강조하고, ㄱ당시 수도회로서는 파격적으로 평수사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애덕을 비롯하여, 성직매매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 기적, 예언 및 영적 지혜등이 뛰어나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이 수도회는 주로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와 롬바르디 지방에 산재해 있다. 플로렌스 교외인 파씨냐노에서 서거하였고, 1193년에 시성되었다.
축일 : 7월 12일
비스도미니 집안의 아들인 그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그느 형을 살해한 살인자를 만났을 때,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빼어들었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용서해 주었다. 이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산 미니아또 델 몬떼로 가서 베네딕또회원이 되었으나, 자신을 원장으로 간택하려는 눈치를 채고는 더욱 고적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떠났다. 그가 까말돌리의 어느 은수소에 당도하면서부터 자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살았다. 이것이 발롬브로사회의 시작인데, 성 베네딕또의 초기 규칙을 따르는 발롬브로사회원들은 애덕과 청빈을 강조하고, ㄱ당시 수도회로서는 파격적으로 평수사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애덕을 비롯하여, 성직매매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 기적, 예언 및 영적 지혜등이 뛰어나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이 수도회는 주로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와 롬바르디 지방에 산재해 있다. 플로렌스 교외인 파씨냐노에서 서거하였고, 1193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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