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으러 들린 천북 굴단지 옆 자그마한 항구. 호젓.
천북굴단지는 굴축제가 열리는, 100여개의 식당이 모여있는 식당집합촌.
어느 집으로 가야할지 고민하다 그냥 첫 집에 들어갔는데 굴밥이 맛있었다.
10가지도 넘는 반찬들, 각종 나물에 양념게장, 굴전, 물김치도 맛있어 바닥을 싹싹 긁어 배불리 먹었다.
산지라 굴이 싱싱하지않을까 싶어 샀지만 가격도 비싸고 마트에서 사는 거에 비해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그저 그럼. 산지라면 그 어디보다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또 낚였다는 느낌.
조그만 해변에서 사르락거리며 조용히 들고나는 파도소리, 제법 맑고 곱다.
지나는 길의 풍경.
-오천항 인근의 보령 충청수영성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석성으로 1509년(조선 중종 4)에 축성되었다.
1466년(세조 12) 설치된 충청수영의 외곽을 두른 길이 1,650m의 성으로 자라 모양의 지형을 이용하여 높은 곳에 치성
또는 곡성을 두어 서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
원래 사방의 성문 등 여러 시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문 망화문과 진휼청, 장교청, 공해관이 보존되고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엿볼 수 있다.
1896년(고종 33)에 폐영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다.-
망화문. 두툼한 돌로 쌓은 아치가 제법 멋스럽다.
아치문 들어서 영보정 가는 길.
성벽 위 얽기설기 뿌리 뻗고 가지 뻗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항이 운치있다.
진휼청. 마루에 앉아 또 잠시 멍 때리기. 조촐한 규모가 왠지 안쓰럽던..
전쟁이나 환란시 이 조그만 규모로 어떻게 그 많은 백성들을 구휼했을까 싶어서.
영내에 나무들이 장했다. 봄이나 기을 쯤 오면 숲이 풍성히 아름답겠다는 생각.
오천항 풍경. 바다는 동해든 남해든 서해든 해안에서 밖으로 확 열린 바다만 봤지 이렇게 내륙으로 깊이 들어 온 바다를
보는 건 처음이다. 이게 바다야? 호수 아냐?
천수만. 바다에서 저 멀리 내륙으로 30km나 뻗어있다니 신기.
영보정이라는 현판을 단 정자가 엄연히 있는데, 설명문엔 터만 남아있다고 적혀있으니.
이 정자는 최근에 개축된 건가보다. 설명문을 바꿔야되지 않나?
정자에 올라 보는 겹겹이 펼쳐진 산등성이들과 저 멀리로 아스라히 뻗어나간 바다가 아름답다.
예당호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예당호는 국내 최대 규모라네.
호수에 군데군데 살얼음이 깔렸다.
어디든 출렁다리, 전망대가 유행이다.
뭐라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해야하는 지방도시들의 고심이 느껴진다.
난 여기 출렁다리보다 호수를 빙 둘러 물 위로 놓여져있던 데크길을, 시간만 있었다면 걸어보고 싶더라.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이곳 저곳을 기웃하며 잠깐 다른 공기속에 있을 수 있는 이런 여행, 나쁘지 않아.
이번 여행에선 특히 처음보는 천수만과 오래 된 석벽과 오래 된 나무들, 먼 먼 역사와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던
수영성이 인상 깊었다.
외적을 막기 위한 수영이 있는 곳.
지형을 보니 바다에서부터 물길이 죽 이어진 게 내륙까지 물자들이 드나들기 편리했겠으나
한편 적이 침입하기도 손쉬웠겠다 싶다.
조선시대 외적 침입 시에 이 배들보다 많은 거북선들이 여기 꽉 차있었단다.
성벽 위에서 양쪽으로 죽 펼쳐진 바다를 보노라면 한때 여기서 벌어졌을 전투들,
악전고투들이 상상되고 그 아우성과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그 힘든 세월을 지나 지금 여기에 있는 수영성.
우리가 오래된 유적들 앞에서 늘 묘한 감동에 빠지는 건,
아마 그 장소에 깃든 켜켜한 시간의 무게와 흔적때문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