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집 한 채를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
집을 지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건물을 무너뜨리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데는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너뜨리는 것은 혼돈을 만드는 일이지만 짓는 것은 질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벽돌 하나, 기둥 하나, 배선 하나까지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질서가 세워질 때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우주라는 집을 지으시는 이야기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그 질서 위에 생명과 문화를 세우셨습니다. 태초의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혼돈은 질서가 되었고, 공허는 충만함이 되었으며, 흑암은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고, 그 질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세우신다.”
1. 하나님 나라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이전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구절은 단순히 지구의 물리적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질서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묘사합니다.
1) 혼돈(Tohu) ‘토후’는 방향이 없고 형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광야처럼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2) 공허(Bohu) ‘보후’는 비어 있고 목적이 없는 상태입니다. 존재는 하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3) 창세기 1:1-5, 26-28 (Hoshek) ‘호셰크’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하나님 생명의 부재를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흑암은 종종 심판과 죽음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처음부터 아름답고 완성된 상태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질서와 공허와 어둠 속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히브리어 원문은 “와요메르 엘로힘”” 곧“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이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말씀은 질서를 창조하고 존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통치 행위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우리 삶을 혼돈으로 몰아갑니다. 가정도 혼란해지고, 사회도 방향을 잃고, 교회도 정체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순종될 때 질서가 회복됩니다. 혼돈을 이기는 힘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질서를 세우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반복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바로 “구별하다” 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물과 물을 나누셨고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고 낮과 밤을 구별하셨습니다. 창조는 단순히 만드는 행위가 아닙니다. 질서를 세우는 행위입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질서 창조”라고 설명합니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단순히 예술이나 취미가 아닙니다.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와 질서의 체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최초의 문화 형성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계를 정하셨고 역할을 부여하셨고 목적을 주셨고 선과 악을 구별하셨습니다. 문화는 결국 누가 질서를 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문화전쟁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정한 질서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로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은 창조를 마칠 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왜 좋았습니까?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 나라 문화를 확장하게 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은 창조기사의 절정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대 근동에서 왕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마다 자신의 형상을 세웠습니다. 그 형상은 왕의 통치를 상징했습니다. 하나님도 온 세상 가운데 자신의 형상인 인간을 세우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1) 정복하라(카바쉬) 무질서를 하나님의 질서 아래 두라는 의미입니다.
2) 다스리라(라다) 왕이 통치하듯 책임 있게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3) 경작하고 지키라 창세기 2장 15절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하다’(아바드)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섬기다”, “예배하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지키다’(샤마르)는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인간은 세상을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존재입니다.
문화명령의 핵심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전쟁을 비판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비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새 문화를 창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의 문화명령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창조적 사명입니다. 어둠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정직한 직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 창조자입니다.
4.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힘은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까? 답은 단순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말했습니다. “그것을 먹는 말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죽지 않는다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문화전쟁의 시작은 말씀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질서 대신 자신의 질서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질서는 혼돈으로, 충만함은 공허로, 빛은 어둠으로 바뀌어 창세기 1장 2절 창조 이전의 상태로 회귀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화는 정치적 힘, 법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노아는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믿고 출애굽을 이끌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을 믿고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종교개혁도, 청교도 운동도, 대각성운동도, 모두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새 문화는 언제나 말씀 순종의 열매였습니다.
결론: 혼돈을 비판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 문화를 세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장은 단순한 창조 이야기가 아닙니다. 혼돈 위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이야기입니다. 흑암 위에 빛이 비치는 이야기입니다. 공허함 속에 생명이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명을 오늘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세상을 향해 불평만 하지 마십시오. 어둠을 탓하기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혼돈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새 문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정에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교회에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에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자녀 교육에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셨던 일을 오늘도 이루실 것입니다. 혼돈은 질서가 되고, 공허는 충만함이 되며, 흑암은 빛으로 바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말씀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땅 가운데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