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의 출처는 <김창수의 차의 명인을 찾아서> 게시판입니다.
중국 운남성에서 직접 보이차 제다에 참여하고,연구하는 茶情 박기봉님의 글입니다.
보이차에 대해 관심있거나 공부하고 연구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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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박기봉님의 글)
오랜 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간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두달 가까이 진행된 茶 산지의 답사는 잘 마치고,
지금은 산동성 위해에서 그간의 답사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3월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다녔는데,
4월 중순 부턴 사스 때문에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만,
茶를 마시면 사스의 문제는 해결할수 있단 생각으로 잘 마무리 했습니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불천님과 촌안님 등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제 이곳에서 몇일 쉬었으니, 지난 답사의 정리를 몇일 하고
다음 주에 귀국할 예정 입니다.
귀국 하면 뵙도록 하고 지난 답사 중에 적었던 일지를 한편 올립니다.
3월23일
서쌍판납과는 달리 곤명의 새벽 기온은 쌀쌀하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었다.
양선생님 께서 8시에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서 준비를 했다.
서쌍판납으로 떠나기 전에 찍은 선생님 차창의 사진이 마음에 썩 드는게 없어
다시 선생님 차창으로 가서 몇캇의 사진을 다시 찍고
선생님의 전시장이 있는 차 도매시장 으로갔다.
경만과 이무에서 가지고 온 샘플을 놓고 선생님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두곳에서 어떤 차이를 느꼈냐고 선생님께서 물어 보신다.
두곳의 차가 농도 면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났으며,
차수와 그 차수의 재배 형태의 차이를 말씀 드리니
아주 제대로 관찰을 했다며 칭찬을 해주시며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물론 대만이나 홍콩의 상인들이 얘기하듯이
오래 묵히며 산화시켜 맛을 부드럽게 변화시키고 성질 변화를 줘서 마시지 않은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음다법만이 정통 이었다면,
맹해 차창 초기의 제품들은 지금쯤 쏫아져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 생산 이라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양이 아니라
연간 생산이 수백톤이나 되는데, 그럼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들른 이무에서도 그 답을 얻을수 있었고,
곤명의 차상들이 왜 임창일대의 모차를 최고로 치는지,
산화에 의한 변화와 음다법의 변화등에 있음을 알수 있지만,
이런 부분을 설명 한다고 해도 누가 이해를 할까.
만약 보이차 라는게 상인들의 말 처럼 오래 묵히면서만 마셔왔던 차라면,
보이차의 최대 소비지인 서장이나 신강, 몽고 등지엔
몇십년씩 묵은 차들이 산적해 있어야 함을
우린 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잣대로만 이해 하려고 할까.
쉬운 예로, 티벳의 종교 지도자 반선이 하관 차창을 방문한 이유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바로 생산해서 마셨던 티벳 사람들의 차는 무엇이고
그 일부가 남아 지금 명품이 됐다면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을까.
보이차를 공부하며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양선생님과 많은 얘길 나눴다.
선생님의 자상하신 설명이 더해질수록
나의 역활이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은 깊어만갔다.
점심 식사를 하러가다 ??란 스님을 만났다.
익히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차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도,
더욱이 대화도 통하지 않는 분이 어떻게 차의 대가라고 소문이 났을까.
물론 그분 나름대로 차를 보는 견해가 있겠지만.
그분은 얘기 하시겠지, 말이 통해야지만 알수 있는건 아니라고.
언젠가 보이차는 제다를 이해해야만 제대로 알수있단 글을 적었더니,
제다를 몰라도 차를 알수 있으며,
제다를 알아야만 보이차를 이해 할수있는건 아니며,
보이제다의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지를 배웠다고 경거망동을 말라는 충고를 받은 적이있는데,
그분은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제다를 알아야만 차를 이해할수 있나.
그건 어불성설 임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제다를 연구하는 나의 입장에선 제다에 관한 글을 보면
왜 이부분은 잘못됐는지 알수있다.
지금 한국에서 보이를 좀 안다는 분들의 얘기나 글을 보면 제다에 관한 이해가 적다.
수없이 많은 보이차의 제다법이 아니라,
기본을 알면 응용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물론 내게 그런 충고를 한 그분도 나의 그 글을 보며
자신의 제다 상식을 점검했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로 같은 보이차의 세계에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차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제다의 상식은 있어야 함을 왜 이해 하지 못할까.
제다자의 입장에서 본 나의 견해와 판매와 음용하는 입장에서 본,
나와 다른 견해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내가 보이차를 다 아는것도 아니며,
단지 제다자의 입장에선 본 나의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단지 우려 되는건 차문화 라고 하는 포괄적인 부분에 악영향을 미치는,
연도를 속여 부풀려 판매하는 상도의 문제....
그 스님과 ?선생님 그리고 화개에서 제다를 하는 ????도 만났다.
얼마전 한국에서 ?선생님과 관세조정 이후의 문제와 새로운
제다법의 도입등에 대해 얘기한적이 있는데,
이제 화개골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려나...
그분들 일이 있어 저녁때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난 내일 호남성으로 떠나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군산은침의 고향, 군산도로 가기 위해서다.
군산은침의 제다법은 왕사장에게 상세히 들었기에 잘알고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책을 위해선 꼭 들러야 할것같다.
왕사장과 임창의 형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보이차의 제다를 실습한 임창차창의 사장과는 의형제로 지낸다.
그 역시도 양선생님의 제자다.
전화를 받는 형에게 안부와 사업을 물으니, 사업이 아주 잘 된다며
내가 가르쳐준 고초균에 의한 촉매작용과 위생문제의 변화로
판매가 아주 좋아졌다며 왜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보고싶은 형.
형은 지금 나의 도움으로 사업이 잘 된다고 하지만
형의 배려가 없었다면, 난 보이제다를 완성하지 못했을 텐데,
형이 많이 고맙다.
지금은 책을 쓸 준비때문에 바빠서 들리지 못하고
다음 번엔 꼭 들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형이 있는 차창까지는 곤명에서 출발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장거리 버스가 24시간 정도 걸리니 쉽게 가긴 힘든 곳이다.
왕사장과도 통화를 했다.
왕사장은 군산도가 있는 호남성 출신이며, 나와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그는 안휘농대 다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성의 차창에서 공정사를 하다,
몇년 전부터 임창의 형차창에서 직접 전홍이라고 하는 홍차를 생산해
몽고와 러시아 등지로 수출을 하는데, 사람도 좋고 장사도 잘한다.
중국의 이름난 차창엔 그의 동문이 많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내가 형의 차창에서 지낼때 함께한 추억이 많은데.. 보고싶은 얼굴이다.
저녁 식사를 선배님이 운영 하시는 한강에서
?선생님과 화개의 ???? 그리고 몇몇 분들과 함께 하고
?선생님이 묵고 계시는 호텔로가서 우리차의 발전 방향에 대해
내 노트북의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보다 진보한 제다를 배우러 온 그분들이 제대로 길을 찾아
배울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지만,
중국을 조금은 이해해야 접근이 용이 할텐데란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화개의 그 다농에겐 몇년전 그의 다장을 방문해 이런 이런 부분을 바꿔 보라고
얘기 해준적이 있는데, 그땐 내 얘길 귀담아 듣질 않았을 것이고
중국에서의 나를 봤으니 이젠 좀 믿을수 있으려나..
나를 믿고 믿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가 중요한데,
차밭 한평없는 나보다 그의 더 큰 변화와 발전을 기대 해본다.
난 내일 호남성으로 떠나기에 그 분들과는 한국에서 뵙기로 하고
인사를 드리고 24시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많은 생각을 가지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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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거운 음차생활 되시길...
불암산 자락에서 촌안(村顔) 합장
중국 운남성에서 직접 보이차 제다에 참여하고,연구하는 茶情 박기봉님의 글입니다.
보이차에 대해 관심있거나 공부하고 연구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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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박기봉님의 글)
오랜 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간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두달 가까이 진행된 茶 산지의 답사는 잘 마치고,
지금은 산동성 위해에서 그간의 답사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3월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다녔는데,
4월 중순 부턴 사스 때문에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만,
茶를 마시면 사스의 문제는 해결할수 있단 생각으로 잘 마무리 했습니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불천님과 촌안님 등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제 이곳에서 몇일 쉬었으니, 지난 답사의 정리를 몇일 하고
다음 주에 귀국할 예정 입니다.
귀국 하면 뵙도록 하고 지난 답사 중에 적었던 일지를 한편 올립니다.
3월23일
서쌍판납과는 달리 곤명의 새벽 기온은 쌀쌀하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었다.
양선생님 께서 8시에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서 준비를 했다.
서쌍판납으로 떠나기 전에 찍은 선생님 차창의 사진이 마음에 썩 드는게 없어
다시 선생님 차창으로 가서 몇캇의 사진을 다시 찍고
선생님의 전시장이 있는 차 도매시장 으로갔다.
경만과 이무에서 가지고 온 샘플을 놓고 선생님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두곳에서 어떤 차이를 느꼈냐고 선생님께서 물어 보신다.
두곳의 차가 농도 면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났으며,
차수와 그 차수의 재배 형태의 차이를 말씀 드리니
아주 제대로 관찰을 했다며 칭찬을 해주시며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물론 대만이나 홍콩의 상인들이 얘기하듯이
오래 묵히며 산화시켜 맛을 부드럽게 변화시키고 성질 변화를 줘서 마시지 않은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음다법만이 정통 이었다면,
맹해 차창 초기의 제품들은 지금쯤 쏫아져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 생산 이라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양이 아니라
연간 생산이 수백톤이나 되는데, 그럼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들른 이무에서도 그 답을 얻을수 있었고,
곤명의 차상들이 왜 임창일대의 모차를 최고로 치는지,
산화에 의한 변화와 음다법의 변화등에 있음을 알수 있지만,
이런 부분을 설명 한다고 해도 누가 이해를 할까.
만약 보이차 라는게 상인들의 말 처럼 오래 묵히면서만 마셔왔던 차라면,
보이차의 최대 소비지인 서장이나 신강, 몽고 등지엔
몇십년씩 묵은 차들이 산적해 있어야 함을
우린 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잣대로만 이해 하려고 할까.
쉬운 예로, 티벳의 종교 지도자 반선이 하관 차창을 방문한 이유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바로 생산해서 마셨던 티벳 사람들의 차는 무엇이고
그 일부가 남아 지금 명품이 됐다면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을까.
보이차를 공부하며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양선생님과 많은 얘길 나눴다.
선생님의 자상하신 설명이 더해질수록
나의 역활이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은 깊어만갔다.
점심 식사를 하러가다 ??란 스님을 만났다.
익히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차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도,
더욱이 대화도 통하지 않는 분이 어떻게 차의 대가라고 소문이 났을까.
물론 그분 나름대로 차를 보는 견해가 있겠지만.
그분은 얘기 하시겠지, 말이 통해야지만 알수 있는건 아니라고.
언젠가 보이차는 제다를 이해해야만 제대로 알수있단 글을 적었더니,
제다를 몰라도 차를 알수 있으며,
제다를 알아야만 보이차를 이해 할수있는건 아니며,
보이제다의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지를 배웠다고 경거망동을 말라는 충고를 받은 적이있는데,
그분은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제다를 알아야만 차를 이해할수 있나.
그건 어불성설 임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제다를 연구하는 나의 입장에선 제다에 관한 글을 보면
왜 이부분은 잘못됐는지 알수있다.
지금 한국에서 보이를 좀 안다는 분들의 얘기나 글을 보면 제다에 관한 이해가 적다.
수없이 많은 보이차의 제다법이 아니라,
기본을 알면 응용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물론 내게 그런 충고를 한 그분도 나의 그 글을 보며
자신의 제다 상식을 점검했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로 같은 보이차의 세계에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차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제다의 상식은 있어야 함을 왜 이해 하지 못할까.
제다자의 입장에서 본 나의 견해와 판매와 음용하는 입장에서 본,
나와 다른 견해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내가 보이차를 다 아는것도 아니며,
단지 제다자의 입장에선 본 나의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단지 우려 되는건 차문화 라고 하는 포괄적인 부분에 악영향을 미치는,
연도를 속여 부풀려 판매하는 상도의 문제....
그 스님과 ?선생님 그리고 화개에서 제다를 하는 ????도 만났다.
얼마전 한국에서 ?선생님과 관세조정 이후의 문제와 새로운
제다법의 도입등에 대해 얘기한적이 있는데,
이제 화개골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려나...
그분들 일이 있어 저녁때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난 내일 호남성으로 떠나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군산은침의 고향, 군산도로 가기 위해서다.
군산은침의 제다법은 왕사장에게 상세히 들었기에 잘알고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책을 위해선 꼭 들러야 할것같다.
왕사장과 임창의 형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보이차의 제다를 실습한 임창차창의 사장과는 의형제로 지낸다.
그 역시도 양선생님의 제자다.
전화를 받는 형에게 안부와 사업을 물으니, 사업이 아주 잘 된다며
내가 가르쳐준 고초균에 의한 촉매작용과 위생문제의 변화로
판매가 아주 좋아졌다며 왜 들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보고싶은 형.
형은 지금 나의 도움으로 사업이 잘 된다고 하지만
형의 배려가 없었다면, 난 보이제다를 완성하지 못했을 텐데,
형이 많이 고맙다.
지금은 책을 쓸 준비때문에 바빠서 들리지 못하고
다음 번엔 꼭 들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형이 있는 차창까지는 곤명에서 출발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장거리 버스가 24시간 정도 걸리니 쉽게 가긴 힘든 곳이다.
왕사장과도 통화를 했다.
왕사장은 군산도가 있는 호남성 출신이며, 나와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그는 안휘농대 다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성의 차창에서 공정사를 하다,
몇년 전부터 임창의 형차창에서 직접 전홍이라고 하는 홍차를 생산해
몽고와 러시아 등지로 수출을 하는데, 사람도 좋고 장사도 잘한다.
중국의 이름난 차창엔 그의 동문이 많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내가 형의 차창에서 지낼때 함께한 추억이 많은데.. 보고싶은 얼굴이다.
저녁 식사를 선배님이 운영 하시는 한강에서
?선생님과 화개의 ???? 그리고 몇몇 분들과 함께 하고
?선생님이 묵고 계시는 호텔로가서 우리차의 발전 방향에 대해
내 노트북의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보다 진보한 제다를 배우러 온 그분들이 제대로 길을 찾아
배울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지만,
중국을 조금은 이해해야 접근이 용이 할텐데란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화개의 그 다농에겐 몇년전 그의 다장을 방문해 이런 이런 부분을 바꿔 보라고
얘기 해준적이 있는데, 그땐 내 얘길 귀담아 듣질 않았을 것이고
중국에서의 나를 봤으니 이젠 좀 믿을수 있으려나..
나를 믿고 믿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가 중요한데,
차밭 한평없는 나보다 그의 더 큰 변화와 발전을 기대 해본다.
난 내일 호남성으로 떠나기에 그 분들과는 한국에서 뵙기로 하고
인사를 드리고 24시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많은 생각을 가지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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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거운 음차생활 되시길...
불암산 자락에서 촌안(村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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