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차(茶)는 선종 본래의 다법(茶法)이다
차문화 2001. 7-8월호
- 초의·응송 음다법 중국 선종 영향받았다
박동춘(동아시아 차문화연구가)
차의 엄밀한 첫 행위는 마시는 것이다. 음용행위(飮用行爲)의 전제요소는 차품이다. 이 차품을 극명하고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 물, 불, 차그릇(차완과 잔) 그리고 차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요소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이 주체자인 사람의 마음이다.
물은 세부적인 경험과 탐구 속에 시간이라는 무게를 싣고 품천(品泉)의 세목으로 드러나서 차의 체(體)로까지 표현되었다. 불은 차를 만들 때 화후의 변화에 따라 천차만별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찻물을 끓일 때 물과 불의 변화를 심미적 기준과 실질적인 탐구를 통탕변의 세목으로 드러났다. 또 차완과 잔은 차품의 종류와 시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변천되어 기혈조(器血條)의 세목을 더했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차를 마시는 환경조건, 분위기는 사람의 심미적 요소를 더해 객(客)과 당처(當處)를 고려했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서 그 대상물은 차탕(茶湯)이다. 차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는 차품, 특히 제다법을 탐구하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남아 있는지 제다법이 존속된 당위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초의스님의 제다법과 다풍은 그 현장성이 중요하다. 초의스님이 문자로 기록한 『동다송(東茶頌)』이 문헌적 자료로 남아 있고 실증적 형태로 그 사실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제다법이 실제적으로 대흥사에 남아 있다. 대흥사(현 대둔사)는 초의스님이 열반 때까지 주석했던 일지암, 또 대광명전이 있고 그의 제다법이 그의 종법손, 응송스님에게까지 전승되었다. 초의스님의 다풍이 어떠했는가는 아마도 응송스님의 다풍을 탐구해 보는 것이 가장 근사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응송스님은 1893년 완도에서 출생, 대흥사에서 17세에 출가했으니 그 때가 1910년경이다. 응송스님은 완호스님의 제자였던 인담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응송스님이 초의스님의 후인인 것은 이런 계보가 있기 때문이다. 응송스님의 다풍의 특징은 뜨거운 차를 마신 것이다. 스님은 늘 차는 뜨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세수 100살 가까이 산 것은 차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 했으며 실제 필자가 백화암에 내려갔던 1979년경에 스님의 나이가 88세임에도 불구하고 청력과 시력이 젊은이만 못지 않았다.
응송스님이 늘 뜨거운 차를 마셨다는 것은 아마도 초의스님의 차풍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까!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하는 연유는 참선중 정체되기 쉬운 기를 원활히 소통시켜주고, 녹차가 가지는 냉기를 중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의 구덕(九德) 중 방한척서는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가시게 한다는 뜨거운 차의 효용성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초의스님 계열의 차풍에 뜨거운 탕수를 견딜 수 있는 제다법이 있는가. 응송스님에게 전승된 제다법은 분명 뜨거운 탕수를 그대로 부어도 색(色)·향(香)·미(味)의 고른 조화를 드러낼 수 있는 제다법이 오늘에까지 전승되고 있다.
차의 제조법이 문헌적 체계를 갖춘 것은 우리나라에서 『동다송』이 유일하다. 간헐적으로 초의스님과 교유했던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산천도인 김명희, 소치 허유 등이 남긴 간찰과 문집 속에 단편적으로 초의스님의 차는 솥에 덖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여러 차례 언급되 있고 특히 대흥사 승려인 범해 각안의 「초의차(草衣茶)」라는 시는 더욱 이 사실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응송스님의 제다법도 솥에 덖은 방법이니 초의스님의 제다법이 응송스님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응송스님의 제다법은 뜨거운 화후에서 생잎을 살청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차가 가지고 있는 영양, 식물적인 요소, 일시에 갈무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뜨거운 탕수에 견딜 수 있는 비법이 여기에 있다. 이 유형의 제다법은 선종이 들어오면서 함께 유입되어 우리나라에 면면히 이어오던 고유의 제다법이 가미된 형태는 아닐지….
중국 선종의 제다법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는 중국 강서성 영수현에 소재한 선종사찰 운거사의 제조법이 응송스님의 제다법과 가장 유사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강서성 운거사의 제다과정을 조사한 결과 뜨거운 불에 달구어진 무쇠솥에서 생잎을 덖을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차손, 차를 유념하는 방법, 유념한 후 약하게 발효를 거치는 방법이 대흥사의 응송스님의 제다법과 같다.
남종선과 함께 유입된 제다법이라면 1천 년의 역사 흐름 속에서 우리의 심성과 환경에 맞추어 얼마만큼 변화되고 발전되었는지 면밀히 연구하면 그 실체가 자명히 드러날 수 있다.
운거사는 구법승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고 또 우리나라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며, 차나무의 종류도 소엽종으로 우리의 차종과 같다. 실제 강서를 답사했을 때 운거사를 찾아가는 산하는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했다. 나지막한 산들과 논, 그리고 소나무들, 우리의 선조들이 강서의 문화적 특성을 선호함은 이런 조건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차제조법은 수종이 중요한데 운거사의 수종은 소엽종으로 우리나라 옛 절터에 자생하는 수종과 같았다. 운거사에서 제조되고 있는 차품은 그 형태도 우리와 같다. 실제 처음 입산하여 삼여 년 동안 제다과정을 거쳐야 정식 승려로 인정된다 하니 선종에서 제다는 한 수행의 과정이다.
허운대사가 득도하는 과정은 선종에서 뜨거운 차를 마셨다는 방증자료가 되기에 충분한 것인데, 허운대사가 방선중 다관에 따라 주는 뜨거운 찻물이 손에 튀는 바람에 잔을 떨어트렸고 잔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에 득도하여 오도송을 읊었다는 사실이 있다. 또 회화 속에 나타난 팽다(烹茶)는 동자가 소나무 아래에서 풍로 위에 다관을 얹어 부채를 부치면서 차를 달이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차가 뜨거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유행했던 차는 뜨거운 차이며 특히 선종에서 차는 뜨거워야 하는 당위성을 운거사의 유품에서 증명한 셈이다. 차는 찬 것인데 뜨거운 것은 차(茶)뿐이라는 응송스님의 지론은 곧 초의스님의 차품에서 나온 것이며, 전통적인 차품은 뜨거운 차가 원형이라는 사실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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