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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 다기 이야기

[인물, 서적]이목(李穆)과 다부[茶賦]

작성자초인목|작성시간03.03.18|조회수114 목록 댓글 0
다시 읽는 이목의 [茶賦] (차문화 2002. 3-4월호)


최영성 철학박사

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한재(寒齋) 이목(李穆 : 1471∼1498)은 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학자이다. 28년이라는 짧은 삶이 애석하고, 또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여 학문이 원숙하고 완전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재의 <다부>(茶賦)가 차동호인(茶同好人)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한재에 대한 관심이 전에 비해 높아졌고, 또 차문화(茶文化)의 선구자로서 한재를 조명코자 하는 노력이 있음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한재의 <다부>는 1천 3백여 자에 달하며, 초의선사(艸衣禪師 : 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차 노래글’로 병칭된다. 한재는 우리 나라에서 ‘차(茶)’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받들어지고 있는데, 차동호인들은 한재를 ‘다부(茶父)’라 일컫기도 한다. 한재의 위상이 이와 같은 만큼, 다도의 측면에서 그에 대한 조명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다도에 대해서 논할 처지가 못된다. 한재의 다도정신과 <다부>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은 선행 논고들이 있으므로 이에 미루고, <다부>에 담겨 있는 기본 사상과 정신에 대해서만 간략히 말하려고 한다.
한재가 언제부터, 또 무슨 연유로 차를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다부>의 병서(幷序)를 보면 짐작되는 점이 있기는 하다.
대개 사람이 어느 물건을 완상하거나 음미하기도 하는데, 종신토록 즐겨 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은 그 성품 때문인가 한다. 이백(李白)과 달, 유령(劉伶)과 술 같은 것은 그 좋아하는 바는 비록 다르지만 즐김에 있어서는 매한가지이다. 내가 차에 대해서 아주 모르지는 않았는데, 육씨(陸氏 : 陸羽)의 <다경>(茶經)을 읽은 뒤부터 차츰 차의 성품을 터득하여 마음속으로 몹시 진중하게 여겼다. 옛적 중산대부(中散大夫)는 거문고를 좋아해 [금부(琴賦)]를 지었으며, 팽택령(彭澤令 : 陶潛)은 국화를 사랑하여 노래하였다. 그 미미한 것들에 대해서도 오히려 드러냈거늘 하물며 차의 공이 가장 높음에서랴? 아직 (차의 공을) 칭송하는 이가 없음은 현인(賢人)을 내버려두는 것과 같으니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이를 보면 한재가 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차의 성품’과 관련이 있음직하다. 또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들이 대부분 차를 즐겼던 것도 하나의 배경이 되었을 듯하다.
한재의 개결(介潔)한 성품은 직근성(直根性)인 차나무의 성품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당시로 말하자면 ‘차’가 조정에 바치는 공물(貢物 : 進上)의 하나로서 여러 가지 민폐를 지어냈던 것이 사실이다. 한재는 이점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차가 스스로 세금을 불러들여 도리어 사람들에게 병폐가 되거늘, 그대는 (차에 대해) 운운하려 하는가?”라고 한다.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하늘이 만물을 낳은 본 뜻이겠는가. 사람 탓이요 차 탓이 아니다. 또 나는 차를 몹시 좋아하는 고질이 있어서 이를 언급할 겨를이 없었노라.
차로 인해 민폐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람 탓으로 돌리고, 또 차를 좋아하는 고질이 있어서 민폐에 대해서는 말할 겨를이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한 한재! 차에 대한 ‘병적(病的)인 사랑’ 앞에서 그 기호(嗜好)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차의 공덕을 최고로 치는 한재에게는 주덕(酒德)을 노래하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한재가 어찌 차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였으랴? 이에 대해서는 그의 스승 김종직이 함양군수(咸陽郡守)로 재직할 당시 차로 인한 민폐를 해결하였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로 인한 작폐(作弊)를 시정하기 위해 줄곧 마음을 쓰면서도, 단순한 면세 조치가 아닌 차의 생산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정면 대응코자 했던 김종직! 그에게 있어서 차는 그저 하나의 기호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선비들의 심성수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차에 대한 한재의 생각도 스승 김종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다부>에는 노장(老莊)과 도선가(道仙家)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자주 번득인다. 또한 노장의 청허지도(淸虛之道)와 신선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것은 <다부>에서 뿐만 아니라 차에 관한 대부분의 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재의 <다부>에서는 마지막에 가서 유교의 도학사상에 입각하여 끝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그가 차의 오공육덕(五功六德)을 노래한 것은 그저 차의 공덕만 읊은 것은 아니다. “차의 공이 가장 높은데 아직 칭송하는 자가 없으니 마치 현자(賢者)를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고 한 표현이 시사하듯, 그 이면에서 유가의 상덕(尙德), 존현(尊賢)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다부>에서 사상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말미의 ‘희이가왈(喜而歌曰)’로 시작되는 부분이다. 총 106자에 달하는 이 대목은 사실상 [다부]의 결론인 셈이다. 그는 첫머리에서 “양생(養生)에 뜻을 둘진대 너(茶)를 버리고 무엇을 구하랴. 나는 너를 지니고 다니면서 마시고 너는 나를 좇아 놀아, 화조월석(花朝月夕)에 즐겨서 싫어함이 없도다”고 하였다. 언뜻 보면 한재가 ‘양생’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 대목이다.
곁에 천군(天君 : ‘心’의 별칭)이 있어 두려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계하였다. “삶은 죽음의 근본이요 죽음은 삶의 뿌리라네. 안[心]만 다스리면 밖[身]이 시든다고 혜강(禾 康)이 논(論 : 養生論)을 저술하여 어려운 것을 실천하였다지만[蹈艱], 어찌 빈배를 지자(智者)의 물에 띄우고 좋은 곡식을 인자(仁者)의 산에 심는 것만 하겠는가. 정신이 기운[氣]을 움직여 묘경(妙境)에 들어가면, 즐거움은 꾀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된다. 이 역시 내 마음의 차이니 어찌 꼭 저것(茶)에서만 구하리요”라고.
차연구가(茶硏究家)들은 대부분 이 대목을 잘못 이해하거나, 아니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하고 있다. 한재는 도선가에서 이른바 ‘양생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유교사상에 입각한 치심(治心)을 강조하였다. ‘빈배를 지자의 물에’ 운운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천군’을 내세워 ‘심’의 중요성을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어디 그 뿐인가. 한재는 실제의 차로부터 내 마음속의 차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경험과 초월이 묘합(妙合)한 경지로서, 한국적 사고양상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재는 <다부>에서 실제로 차를 완미하는 것보다 ‘정신수양’과 ‘정신적 즐거움’이 한 단계 위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의 본령이 도학(道學)에 있고, 또 학문적 경지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정신이 기를 움직이고 제어해야 한다고 하는 ‘신동기이입묘(神動氣而入妙)’는 그야말로 정신 수양의 높은 경지를 나타낸 것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다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차에 대한 예찬론을 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다도가 심성수양, 더 나아가 구도(求道)에 깊이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차생활을 통해서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에게 있어 차는 결코 ‘맛’이나 ‘멋’, 그리고 ‘즐거움’만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높은 정신적 경지’를 추구하는 수양방법의 하나로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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