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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 다기 이야기

[다도]차 유적지 답사1- 함양의 다정(茶亭)들-황은주

작성자초인목|작성시간03.03.18|조회수181 목록 댓글 0
차 유적지 답사1 차문화 2001. 11-12월호



함양의 다정(茶亭)

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을 찾아서

황은주 (가천박물관 학예연구사)




함양은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조선시대에는 많은 유학자들이 정자를 짓고 은거했던 역사적인 고장이다. 1470년(성종1년) 김종직(金宗直)이 함양군수로 재임할 때, 객사에 걸려 있던 유자광(柳子光)의 현판을 철거하여 훗날 무오사화의 불씨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함양은 소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어 사방이 험한 산지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이다. 덕유산(德裕山)·기백산(箕白山)·황석산(黃石山)·삼정산(三丁山)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굽이굽이 남계천( 溪川)·위천(渭川)·경호강(鏡湖江) 등이 흐르며 절경을 이룬다.

특히 덕유산 남계천 계곡의 거연정(居然亭)·군자정(君子亭)·동호정(東湖亭)·농월정(弄月亭)과 같은 유서 깊은 정자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안의와 함양 일대의 명소인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팔담팔정(八潭八亭)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네곳의 정자만이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한다.

육십령을 넘어 화림동 계곡에서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거연정은 1613년 당시 중추부사였던 김시서(金時敍)가 건립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로, 도로변과 계곡 바위 사이를 돌다리[화림교]로 연결한 것이 무척이나 인상깊다. 굽이쳐 흐르는 계곡의 유연함과 어울려 차를 마시면 선계(仙界)에 곧 입경(入境)할 듯한 정취를 지니고 있다.

거연정을 지나 군자정으로 가 보자. 군자정은 조선 중종 때 모헌공(慕軒公) 이원숙(李元叔)이 무오사화를 피해 낙향하여 세운 것이다. 커다란 반석 위에 자리한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으로, 기세 좋게 뒤틀린 누각의 다리에서 자연미가 느껴진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다듬어 만든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면, 지금은 단청이 바래고 쇠락하였지만 애초 화려하게 치장되었을 지붕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련하다.

그곳에서 물길을 따라 2km 정도 내려가면 나무의 구불구불한 멋을 자연스레 살린 동호정을 만날 수 있다. 노송에 둘러싸인 정자 앞에는 차일암(遮日岩)이란 커다란 바위가 있다. 차일암이란 말 그대로 해를 가리는 바위거나 혹은 햇볕을 가리는 차일을 치던 바위라는 뜻일 것이다. 이 외에도 차일암 구석구석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읽어보면 옛 선인들의 풍류를 한자락 느낄 수 있다.

명문을 살펴보면 바위 이름인 차일암을 비롯하여 영가대(詠歌臺), 금적암(琴笛岩) 등이 있는데 여기서 영가대란 노래를 읊는 대(臺)라는 뜻이요, 금적암이란 가야금 같은 현악기를 뜯고 퉁소 같은 관악기를 불던 장소라는 뜻이다. 옛날 선비들이 시회(詩會)라도 열라치면 이 동호정을 찾아와 차일암을 앞에 두고 풍류를 즐겼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예인(藝人)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예능을 맘껏 뽐내며 악기를 연주했을 것이요, 절개 높고 이름 높았던 절색의 해어화(解語花)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동호정에서 안의 방향으로 가다보면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서 가장 경관이 좋다는 농월정에 다다른다. 1721년 지족당(智足堂) 박명부(朴明 )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팔각지붕 건물이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자리잡은 농월정은 만약 그 곳에 자리하지 않았다면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자연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


달을 희롱하며 풍류를 즐겼을 선인들을 생각하며 필자는 지난 9월 2일(음력 7월 보름) 백중(百中)에 농월정을 찾았다. 맞은편 산에서 시나브로 떠오르는 달이 농월정 앞 월연암(月淵岩)에 스미는 것을 바라보며, 천상(天上)의 선관(仙官)들이 인간세를 살피러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 함양의 다정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옛 선인들의 발자취와 풍류가 가득 담긴 다정들을 둘러보며 필자가 문득 느낀 것은 차란 어떻게, 어떤 차를 마시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차를 어디서 마시느냐 하는 것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인들의 풍류를 현대인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늘빛은 마치 물 같고 물은 연기 같아라.
이곳에 와 소요(逍遙)한지 이제 반 년
좋은 밤 밝은 달과 함께 얼마나 누웠던고.
맑은 강은 지금 흰 갈매기 눈에 비췄네
본디 마음 속엔 미움과 시기가 눈에 없었는데
헐뜯음과 이름 높임이 어찌 귓가에 맴돌까
소매 속엔 오히려 경뢰소가 남았으니
구름에 올라 두릉천을 다시 찾네.

天光如水水如煙
此地來遊己半年
良夜幾同明月臥
淸江今對白鷗眼
嫌猜元不留心內
毁譽何曾到耳邊
袖裏尙餘驚雷笑
倚雲更試杜陵泉
- 《일지암시고》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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