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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 다기 이야기

[차의 종류]용정차(龍井茶) -석성우

작성자초인목|작성시간03.03.18|조회수95 목록 댓글 0


차문화 2001. 3-4월호


세계 명차 이야기|용정차(龍井茶)





찻잔 속의 찻잎 되살아나는 용정차

석성우(파계사 주지, BTN 회장)


5월은 심성이 맑아지는 계절이다. 작은 산등성이나 호젓한 외솔길이나, 푸른 강가나 바닷가의 맑은 하늘 아래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섰노라면 가슴에 쌓여 있는 번뇌들이 저절로 씻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간은 번뇌의 동물이다. 번뇌, 그게 바로 보리(菩提)이다. 다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들듯이, 번뇌를 번뇌 그대로 둔다면 언제까지나 중생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
번뇌를 보리로 승화시킨다면 외려 높은 차원의 고귀한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번뇌에 보리 있고 보리에 번뇌 있나니….
중생의 번뇌를 가늠하는 작은 도구로서 차(茶)는 참으로 좋은 구실을 한다. 그것도 명차(名茶)는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명차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고(名茶非凡品) 그 맛과 운치가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韻味令人悅)”고 하였으니, 어찌 좋은 차를 찾지 않으랴.

항주(杭州) 서쪽에 천목산(天目山)과 용정산(龍井山)이 나란히 있다. 주위에는 대자산(大慈山)·적경산(積慶山)·남병산(南屛山)·용산(龍山)·호산(虎山)·오산(吳山)등이 있는데, 용정산은 풍황(風篁) 남쪽에 있으며 용정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차를 용정차라고 부른다.

좋은 산에 어찌 좋은 고찰(古刹)이 없으랴. 역시 슬기로운 지혜를 가진 이들은 명산에 명찰(名刹)을 이루는 법이다. 원래 용정(龍井)이란 샘 때문에 용정사가 세워지고 이 절에서 차를 재배한 것이 오늘날 용정차의 시작이다.

용정사에는 숭장(崇章)이란 스님이 살았는데 그는 평범한 수행승이었다. 스님은 부처님이 이루어 놓은 지혜를 다 얻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면서 한편으로 마음속은 중생들에게 회향하고픈 심정으로 가득하였다. 그리하여 산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부 수행으로 생각하고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하였다.

산중에 들어가 손수 차를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올리고는 절 앞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는 누구나 무상으로 목을 축이고 가게끔 배려하였다.
그런 보살행 하기를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머리카락이 백설같이 흰 할머니가 흰 옷을 입고 어린 동자를 데리고 와서 문수보살 앞에서 공손히 예배하고 숭장스님에게 말하였다.

“나에게 용정차를 한 잔 보시(布施)하십시오.”
숭장스님이 용정차를 정성껏 달여 드리자, 할머니는 그 용정차를 마시고 나서 다시 한 잔을 청함으로써 거기에 응하였다.

그날 밤에 숭장스님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문수보살이 나타난 것이다.
“그대가 달여준 용정차 공양을 잘 받았네. 이제부터 그대의 원력(願力)대로 사바세상으로 나가 중생들의 어두운 가슴에 등불을 밝혀주는 일을 하게나.”숭장스님은 꿈을 꾸고 난 후 하산하여 중생 교화에 진력하였다.

좋은 차에는 좋은 전설이 담겨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신앙적 차원의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용정차는 일기일창(一旗一槍), 일엽일아(一葉一芽)일 때 찻잎을 따서 만든 것을 제일 좋은 차로 여긴다. 그런데 오늘날은 용정차에도 다섯 가지 등급을 둔다.

용정산에서 나는 차는 용정차라고 부르고 사자봉(獅子峰)에서 나는 차는 사봉용정차라고 부르며, 이 두 곳에서 생산된 것을 진정(眞正)용정차라 한다.

청명(淸明) 전에 만든 차를 명전(明前)용정차, 곡우(穀雨)쯤에 만든 차를 우전(雨前)용정차라 부른다. 명전용정차를 최진품(最珍品)으로 여기고, 우전용정차를 가품(佳品)으로 여긴다.

옛 문헌에는 “때를 맞추어 찻잎을 따서 만들어야 좋고(早採三天是個寶), 때를 놓쳐 만들면 풀잎이나 진배없노라(遲採三天變成草)”고 하였다.

용정차의 외형을 살펴보면 찻잎이 마치 연심(蓮心), 작설(雀舌)처럼 생겼다. 그 향기는 신선한 두화(豆花)꽃 향기와 비슷하고 차의 탐색은 벽록(碧綠)색이고 투명하다. 일반 차와 다르게 눌러 만든 게 특징인데 이런 용정차의 특성은 녹색의 빛, 은은하고 넘치는 향기, 순한 감칠맛, 아름다운 찻잎으로 ‘사절(四絶)’이란 명예를 얻는다.

오늘날 홍콩에는 중국 대륙에서 생산되는 용정차가 있다. 포장에 극품(極品)이라고 쓴 게 제일 좋은 것이지만 열어보면 그렇지 않은 게 들어 있기도 하다.

홍콩 시내에는 차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다. 그런 곳에서는 사고자 하는 이가 필요한 양만큼 파는데, 차의 등급이 있어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대만에서도 용정차가 생산되고 있다. 물론 토질이나 기후가 다르므로 맛과 향이 대륙의 것과 다르며 어느 것이 좋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차는 기호음식이므로 취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용정차에 얽힌 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천 년 전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용정산 기슭에 황량(荒凉)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몇 세대만 모여 사는 작은 산촌에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살았다. 할머니는 차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었다. 차를 만드는 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차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럴 때 할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달여 인부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차 상인이 할머니의 집에 와서 그 집 뜰에 있는 석함(石函)을 보고 자기에게 그 석함을 팔라고 하자 할머니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차 상인은 기쁜 마음으로 대금을 치르고 인부들을 데리고 왔다. 막상 석함을 열어보니 석함 속에 있었던 차 찌꺼기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차찌꺼기를 오래 묵혀 퇴비로 만들어 몇 안되는 차나무에 주어 차나무를 길렀다. 오늘날 용정차나무는 바로 할머니가 기른 차나무라고 전한다.

중국인 특유의 기질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깃든 듯하다.
좋은 차 한 잔으로 오월을 맞이하고 심성을 따뜻하게 가꾼다면 설령 험한 세상이라도 부드럽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문득 우리네들도 용정차 같은, 역사가 오랜 명차가 있었으면 오죽 좋으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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