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이스/최양숙
네게로 돌린 순간
갑자기 미끄러진다
안전망 바깥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사방을 더듬거린다
누가 나를 통과한다.
살얼음 같은 시선
서늘한 감촉들이
공중에 흘린 말을 숨죽여 줍고 있다
녹아서 읽지 못한 것
만져보면 비리다.
지금 시조마학을 받아서 읽다가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손끝에 느끼는 감촉 같이 매우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작가다. 바로 곁에 수록되어 있는 ‘비장소’ 역시 좋다.
비장소/최양숙
혼자 머물기에는 구석이 적당하다
이내 떠날 것 같은 손톱만한 서글픔이
찻잔 속 표정을 바꾸며
사선으로 흐른다
가끔씩 끊어지는 재즈를 듣는 동안
카톡은 오지 않고 입술만 질근거린다
오후를 넘긴 문장은
삭제된다 나간다
의미 없이 걷다가 잠시 부딪힌 눈길
낮선 신호음처럼 “또 만나”하고 헤어진다
그 안에 감긴 이야기
저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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