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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 장현광선생의 사사당과 묘소

작성자안천|작성시간25.07.25|조회수31 목록 댓글 0

여헌 장현광(張顯光,1554~1637)선생은 조선중기의 학자,문신,정치인,

  철학자,시인으로,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덕회(德晦),호는 여헌(旅軒)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학덕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과거에는 뜻을 두지않고 수많은 영남의 학자들을 길러냈다.

 

장현광의 묘 아래 재사인 사사당(四事堂)

 

류성룡(柳成龍) 등의 천거로 여러 차례 내외의 관직을 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하였고 부임(赴任)한 것은 보은현감(報恩縣監)과

의성현령(義城縣令)의 외직과 내직(內職)으로는 공조좌랑(工曹佐郞),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형조참판(刑曹參判), 의정부우참찬 등이다.

 

사사당 마루

 

장현광은 한강 정구(鄭逑)선생의 조카사위였으며, 처숙인 정구가 사망하자

문하에 있던 허목(許穆)이 장현광을 찾아와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청했다.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본 그는 바로 자신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하였으며,

그의 문인으로는 유진(柳袗) 정극후(鄭克後) 전식(全湜) 김응조 등이 있다.

 

 

사사당 천정 대들보

 

장현광은 유교의 입장에서 온 세상의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을 이르는

태극을 내세우되 일체유(一體儒)와 그 근원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과

조화의 논리로 융화 종합하는 철학적 근거를 명시하였다.

허목을 통해 남인 성리학파와 남인 실학파로도 학통이 이어졌다. 

 

사사당 상량문

 

1636년(인조 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었으며,

여러 군현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와 음식, 군자물품을 보냈다.

이듬해 삼전도에서 왕이 청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통탄해 하고,

영천 입임산(立嵒山)으로 들어가 고요히 몸을 닦으며 12목의 벽서와

소강절의 서서금(西書今)을 쓰고 후학을 가르치다가 반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장현광의 문집으로는 여헌집 11권, 속집 5권, 성리설(性理說) 6권,

역학도설(易學圖說) 9권, 용사일기(龍蛇日記) 2권 등의 저서가 있다.

선산의 여헌영당과 금오서원, 영천의 입암서원과 임고서원, 의성 빙계서원,

성주 천곡서원, 인동의 동락서원, 청송의 송학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사사당 전경

 

사후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고, 다시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가증(加贈)되었으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사사당 뒤에서

 

장현광의 묘소 가는길

 

여헌 장현광 묘역

 

여헌 장현광선생의 묘

 

 

여헌 장현광 묘비

 

유명 조선국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령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행 자헌대부 의정부 우참찬 시 문강공 여헌 장선생지묘

(有明 朝鮮國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 領經筳 弘文官 藝文官

春秋館 觀象監事 世子師行 資憲大夫 議政府 右參贊 諡 文康公 旅軒 張先生之墓) 

 

 

시호인 문강(文康)은  

도덕이 높고 박문하여 문(文)이요, 연원을 두루 유통하니 강(康)이라 하였다.
도덕박문 왈문  연원유통 왈 강(道德博聞 曰文  淵源流通 曰康)

 

 

부지암에 배를 띄우고 / 범주부지암(泛舟不知巖) ~ 장현광(張顯光,1554~1637)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없으니 / 상유천하무지( 上有天下無地)
이 어느 세계인가 인간 세상 초월하였네 / 시하계초세간( 是何界超世間)
세간에는 얼마나 많은 소식 있는가 / 세간기반소식( 世間幾般消息) 
 구름 너머 한 기러기 스스로 한가로워라 / 운외일홍자한( 雲外一鴻自閒)

 

문인석 좌.우

 

흰 머리를 읊다 / 호수음(皓首吟) ~ 장현광(張顯光,1554~1637)


 백발에도 적자의 마음 그대로 보존하니 / 호수유존역자심( 皓首猶存赤子心)
 이때에야 비로소 한 근원이 깊음을 알겠네 / 차시방회일원심( 此時方會一源深)
눈 안에 천지가 모두 진경이니 / 안중천지도진경( 眼中天地都眞境) 
외물의 유혹 어찌 나의 마음 침노하랴 / 외유하종득아침( 外誘何從得我侵)

 

묘소앞 숲

 

백발(白髮) ~ 장현광(張顯光,1554~1637)


소년 시절에는 오직 건장한 기력 믿고는 / 소년유시기력강( 少年惟恃氣力剛)
단김에 만 리의 먼 길 다하려 하였네 / 일취당궁만리장( 一蹴當窮萬里長)
지금 거울을 보며 백발을 놀라워하니 /각경여음경백발(攬鏡如今驚白髮)
천지를 돌아봄에 이 마음 바쁘누나 / 건곤회수차심망( 乾坤回首此心忙)

 

묘소의 엉겅퀴

 

여헌 장현광의 묘소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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