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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여행

고려개국 1등공신 복지겸장군

작성자안천|작성시간25.10.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복지겸 장군은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고 그를 도와 고려를 건국한

4명의 1등 개국공신 중 한 명으로 태봉 관작은 마군장군(馬軍將軍)이며,

고려관작은 최초의 삼한벽상공신, 시호는 개국무공공(開國武恭公)이다.

 

복지겸장군 유적지 입구 ~ 당진 순성면

 

복지겸(卜智謙, 873?~936)장군은 면천복씨의 시조로 초명은 사귀(沙貴),

또는 사괴(砂瑰)이며, 복지겸의 가문은 통일신라 후기에 지금의 충남 당진시 면천면

지역을 중심으로 황해 바다에서 세력을 가졌던 해상 호족 세력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개국 일등공신 태사 복무공공 휘 지겸 사적비

(高麗開國 一等功臣 太師 卜武恭公 諱 智謙 事績碑)

 

복지겸장군은 태봉국 궁예의 기병단 장군으로 궁예가 흉폭해져 민심을 잃게되자

배현경, 홍유, 신숭겸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군주로 추대한 4명 중

한 명으로 고려 건국 후 개국 1등공신에 책봉되었고, 삼한삼중대광을 역임하였다.

 

복지겸장군 유적지 홍살문

 

그 후 환선길(桓宣吉) 등의 모반사건을 사전에 탐지하여 소탕 함으로써

개국초 고려의 기반을 튼튼히 다졌으며, 936년 64세로 타계하였다.  

사후 무공(武恭)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고려 성종 13년(995년)

태사(太師)로 추증되면서 태조(太祖)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창의문(彰義門)

 

토지 300경(약180만평)을 하사하여 후손들이 대대로 세식(世食)하게 하였다.

이곳 유적지는 1991년 묘역을 정비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사당과 부대시설은

충청남도와 당진군의 지원으로 2007년에 착공, 2008년 12월에 완공하였다.

 

복지겸장군 사당과 동.서재

 

전하는 설화에 의면 복지겸의 건강이 나빠져서 면천 지역에 와 휴양을

하는데도 건강이 나아지지 않자 그의 딸인 복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마지막날 꿈에 신선이 나타나 "아미산에  활짝 핀

두견화(진달래꽃)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100일이

지난 다음 아버지께 마시게 하고,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 나을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고 그 말대로 술을 빚어

복지겸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면천두견주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사당 출입문인 정충문(精忠門)

 

그때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알려진 당진 면천 은행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940년 복영랑이 복지겸의 쾌유를

발원하며 복지겸의 영지였던 당진에 영랑사를 건립했다는 전설도 있다.

 

무공사(武恭祠, 사당)

 

참고로 면천초등학교안에 있는 은행나무 2그루 중, 한그루는 높이 23.2m,

가슴높이 둘레 5.8m이고, 또 한 그루는 높이 20.6m, 가슴높이 둘레 6.1m이다.
해마다 마을 주민이 은행나무에 모여 목신제(木神祭)를 올리고 있다.

 

사당에서 보는 동.서재와 외삼문

 

동재

 

서재

 

복지겸장군 묘소로 가는 사잇문

 

복지겸장군 묘역

 

면천복씨 시조인 복지겸장군의 묘

 

묘역에서 보는 사당 좌.우

 

 

안쪽에서 보는 홍살문

 

재실인 숭모당

 

숭모당(崇慕堂) ~ 후손이 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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