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양진씨의 시조는 고려 예종(1106년~1122년) 때
고려 중앙군인 2군 6위 중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냈으며
인종 4년(1126년)에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이 된 후
여양현을 식읍으로 받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진 진총후(陳寵厚)이다.
숭덕재 정문인 경종문(敬宗門)
진총후의 아들인 진준(陳俊)은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해서
칭송받던 무신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의종이 폐위되는 와중에
무신들이 문신들을 모두 죽이려 하자, "우리가 원한을 가진 자는 이복기,
한뢰 등 4~5인에 불과한데, 이 많은 무고한 사람을 이같이 살해하고
가산을 몰수함은 부당한 일이므로 중지하라."고 하였다.
숭덕재와 경종문 ~ 숭덕재 문이 닫혀았어 담 너머로 담아본다
진준(陳俊) 덕분에 적지 않은 문신과 그들의 가족이 화를 피했는데,
이에 사람들이 "음덕(陰德)이 있으니 후손들이 반드시 창성한다."라
하였다고 고려사에 전한다.
숭덕재(崇德齋)
그 말처럼 진준(陳俊)의 다섯 아들과 다섯 손자가 모두 요직에 올라
가문의 토대를 다졌으며, 이에 자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봉작을 받았던 여양현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 여양 진씨의 시초이다.
경덕단(景德壇), 숭덕재(崇德齋) 경내
여양진씨는 한국의 성씨로 본관인 여양(驪陽)은 고려시대 홍주(洪州)의
여양현(驪陽縣)을 말하며, 현재의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일원이다.
경덕단(景德壇). 숭덕재(崇德齋) 안내문
안내문에 의하면 여기는 여양진씨(驪陽陳氏) 시조(始祖)와
그 직손(直孫) 등 모두 11위(位)의 단비(壇碑)를 모신
경덕단(景德壇)과 재각인(齋閣)인 숭덕재(崇德齋) 경내이다.
여양진씨 시조 진총후(陳寵厚) 단비
고려 신호위상장군 여양군 여양진씨시조 휘 총후지 단비
(高麗 神虎衛上將軍 驪陽君 驪陽陳氏始祖 諱 寵厚之 壇碑)
인걸지령(人傑地靈)의 여양진씨(驪陽陳氏) 발상지요,
세전지지(世傳之地)로서 상대(上代)에 위대한 인물들이 배출
되었으니, 이곳에 모셔진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덕단(景德壇) ~ 여양진씨 시조 진총후와 직손들의 단비(壇碑)
시조 진총후 공은 고려 예종조에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
인종조의 상장군으로 여양군의 봉작을 받아 이곳에 터 잡으셨다.
2세 준(俊)공은 명종 때 지추밀원사 좌군병마사, 참지정사 금자광록대부,
판병부사 등을 역임하셨는데, 무신 정충부가 일으킨 경계지난 때
많은 문신들을 구출하였고, 1179년 명종 9년 6월 4일에 서거하셨다.
시조 진총후와 여양진씨 선대 단비
3세 중 광순(光純)공은 대장군을, 둘째 광수(光脩)공은 병부상서를,
셋째 광경(光卿)공은 상장군을, 넷째 광의(光儀)공은 대장군을,
다섯째 광현(光賢)공은 추밀원부사 대장군을 역임하셨다.
경덕단과 숭덕재 측면
4세 중 담(湛)공은 고려 강종조에 문하시중을, 식(湜)공은 고려 명종 때
한림힉사 복여어사대부 겸 서경유수를, 온(溫)공은 강종조에 문과 한림학사
얘빈성경과 지나주사를, 택(澤)공은 고려 신종조에 판전농시사를,
화(澕, 호는 매호)공은 고려 신종조에 한림학사 우사간을 지냈으며, 경기도
용인에 묘소가 실존하고 있어 여기서는 "봉사입금" 시비만 따로 세웠다.
매년 10월 3일에 추향(秋享)을 봉행한다. ~ 여양진씨 대종회
여양진씨는 시중공파, 어사공파, 예빈경파, 매호공파, 전농공파의
크게 상계 5파를 시작으로, 다시 중계(中系) , 하계(下系)로 분파된다.
경덕단 좌우의 문인석과 망두석
시중공파는 진총후의 증손자로 문하시중을 지낸 진담(陳湛)을 파조로 한다.
어사공파는 진담의 사촌 아우로 어사대부를 지낸 진식(陳湜)을 파조로 한다.
예빈경파는 진식의 아우로 예빈경을 지낸 진온(陳溫)을 파조로 한다.
매호공파는 진식, 진온의 아우인 지공주사 진화(陳澕)를 파조로 한다.
전농공파는 진담, 진식의 사촌 아우인 판전농시사 진택(陳澤)을 파조로 한다.
참고사항으로 우리나라에서 "진"으로 발음되는 진씨는 베풀 진(陳),
나라 진(秦), 나아갈 진(晉), 참 진(眞)을 성으로 쓰는 네 성씨가 있는데,
인구는 총 157천여 명이며, 이중 여양진씨가 11만여 명으로 가장 많다.
나라 진(秦)자 성씨는 풍기 진씨와 진주 진씨가 있고, 나아갈
진(晉)자 성씨는 남원진씨, 참 진(眞)자 성씨는 서산진씨 단 본이며,
베풀 진(陳)자는 여양, 강릉, 나주 등 47본이 있었으나, 1992년도에
모두 합부하여 여양진씨로 통일했다. 다만 베풀 진(陳)자 중
여양진씨 계통이 아닌 광동진씨와 양산진씨가 있다.
오른쪽 측면
여양진씨의 현대 지명(알려진) 인사로는
진헌식(제헌 국회의원,내무부장관), 진의종(제17대 국무총리),
진념(초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진대재(정보통신부 장관),
진동수(금융위원장), 진중권(교수, 평론가), 진선미(제19~22대 국회의원)
진갑용(프로야구 선수 및 감독), 진성(가수, 본명 진성철), 진지희(배우) 등
오른쪽측면 옆의 기념비와 헌성금비 등
또한 진씨(陳씨) 유래설에 대하여는 동래설과 토착성씨설도 있다.
먼저 동래설은 북송 복주 사람이며 우윤을 지냈던 진수(陳琇)라는
사람이 외침을 피해 고려로 망명하여 여양현 덕양산 아래 터를 잡고
살았으며, 진총후는 그의 후손이라고 하는 설과
경덕단과 숭덕재 전경
둘째 토착성씨설은 중국 남북조시대를 기록한 사서인 남제서의
백제전에 백제 동성왕 때 큰 공을 세웠다는 행양무장군 진명(陳明)
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며, 또 백제 관등의 3등인 은솔로 품달군의
군장을 지냈다는 진법자(陳法子)의 묘지명이 발굴되면서
품달군이 홍성군일대로 추정된다는 설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