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小鹿島)는 고흥군 도양읍 남단에 있는 섬으로
멀리서 보면 작은 사슴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소록도 하면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소록도의 그림같은 해안
국립소록도병원은 한센병 전문병원으로 입원환자의
진료. 요양. 복지. 자활 지원과 한센병에 관한 연구업무를
목적으로 운영 중인 보건복지부 소속의 국가기관이다.
소록도 병원 입구 ~ 차량 통제지역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이며 입원환자의 평온한 요양을 위해
일부 구역만 개방하고 있으며, 치료와 요양에 방해가 되는 고성,
음주, 단체 취식 등 일체의 행위와 차량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소록도 안내
소록도는 섬 전체가 국립소록도 병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 자원봉사자 등 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한 해 3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에 따라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으로 설립되었다.
일제는 전국의 한센인들을 강제로 소록도로 이주시키고
자혜의원에 강제 수용한뒤 강압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
이후 1934년 10월 소록도갱생원, 1949년 5월 중앙나요양소,
1951년 9월 갱생원, 1957년 12월 소록도갱생원 등으로
병원 명칭을 변경하고 규모를 확장해왔다.
오른쪽에 소록대교가 보이기 시작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환자들은 강제로 격리되었으며,
병원의 증축은 환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을 통해 이루어졌다.
병원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11월 8일
국립나병원으로 개편되면서 부터였다.
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 건물
소록도 국립나병원이 출범하면서 당시 전국의 한센병 전문
병원이었던 익산소생원과 칠곡애생원, 부평성혜원 등은 모두
폐지되고 국립나병원에 통합되었으며, 이후 1987년 12월 31일
지금의 이름인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소록대교와 녹동항
소록대교는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소록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거금도 연륙교라고도 불리며, 길이는 1,160m, 왕복 2차로의 교량이다.
2001년 6월 착공하여 2008년 6월 완공하였으나 섬 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2009년 3월에야 완전 개통되었다.
소록대교
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 12개의 교각이 있고 중앙부분에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을
지탱하는 높이 87.5m의 주탑 2개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이다.
애환의 추모비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령에 의하여 개원한 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으며,
결국 협상대표자 84명 전원은 8월 22일 처참하게 학살을 당하였다.
2002년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고자 현장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국립소록도병원
국립 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
영상자료
솥, 주전자, 냄비, 양동이 등 생활 용품
소품 등
악기, 그림 등
소록도를 일군 사람들 ~ 발자취 등
박물관 뒤편에서 보는 소록대교와 해안
중앙공원으로
소록도 중앙공원 입구
소록도 중앙공원은 1934년 부터 환자 위안장으로 가꾸어 오던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어 1936년 12월 1일 준공하였다.
그후 대공원계획에 의하여 완도, 득량 등지로 부터 운반된
기암괴석과 일본,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나무들로 부지 20,000㎡
(6,000여평)위에 1940년 4월 1일 공원 조성을 완료하였다.
1962년 벽돌 가마터 부지 4,000㎡(1,200여평)을 추가 조성하였다.
100여년 역사를 지닌 소록도 중앙공원
구라탑(求癩塔)
구라탑은 한센병으로부터 완치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정착지로
소록도에서 약 6km 떨어진 오마도에 약 330만평의 간척지공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 사업을 지원코자 "국제 워크 캠프"
남녀 대학생 133명이 참여하여 순수 봉사활동을 하게되며,
이를 기념코자 중앙공원에 높이 2.9m의 구라탑을 설치하였다.
오스트리아 마리안과 마가레트, 마리아 수녀 공적비
소록도하면 이곳에서 43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며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과 마가레트 수녀가 있다.
두 수녀님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왔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탐스럽게 핀 선인장꽃
두 수녀가 처음 왔을 땐 환자가 6,000여 명에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다고 하며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두 수녀는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상처를 만지며 약을 발라주었다.
그렇게 정성을 쏟아 이제는 환자도 600명 이하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라는 편지에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 라는 편지 한장 남기고,
2005년 어느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나갔다.
십자가와 성모당
보리피리 시비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는 이 반석은 중앙공원 조성
당시 소록도 인근 섬에 있던 것으로, 30개의 드럼통을 연결하여
물에 띄운 후 두 척의 배로 소록도 해안까지 끌어서 가져온 다음,
땅위에 통나무를 깔고 환자 500여명이 끌어서 옮겼다고 한다.
시비는 1972년 5월 17일 개원 56주년에 맞춰 제작되었다.
보리피리 ~ 시인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린 때 그리워 /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 인환(人還)의 거리 / 인간사 그리워 /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지나 /
피-ㄹ 닐니리.
이춘상 6.20의거 기념비
너는 환자들에게 못된짓을 많이 하였으니 내 칼을 받아라~!
국립나병원장 조창원 기념식수비(1971.4.15)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를 불법적으로
감금했던 장소로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 소록도갱생원 감금실, 1035년 건립, 국가 등록문화유산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체 해부를 했던곳으로, 사망자는 검시뒤에 장례를 할 수 있었다.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 1934년 건립, 국가 등록문화유산
수많은 애환과 아픔들이 녹아있는 소록도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