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진으로 여행

완도 해상왕 장보고 유적

작성자안천|작성시간26.06.12|조회수7 목록 댓글 0

장보고(張保皐,780?~841)는 신라인으로 본명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인데 순 우리말로는 "활복"이다.

기골이 장대했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는 무인 기질을 나타냈다라는

기록이 있어 장보고가 활을 잘 다루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완도 청해진 유적 ~ 사적 제308호

 

완도읍 장좌리에 위치한 청해진 유적은 해상왕 장보고 대사가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고 중국과 신라, 일본을 잇는 삼각 무역을

펼쳤던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 전진기지이자 군사 요충지이다.

 

청해진 유적지

 

청해진이 있었던 이곳 장도는 장군도(將軍島) 또는 조음도라고도

불렸는데, 장좌교 서북쪽 100m의 장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의 동백나무숲 언덕에 6기의 무덤이 있고 목없는 시신이 묻힌

1기가 장보고의 것이고 나머지는 장보고의 양친과 선대의 것이라는

민간 전승이 있으며, 장보고는 반농반어로 먹고 살던 그의 아버지를 따라

장도 바깥쪽 바다에서 고기잡이, 노젓기, 수영을 배우고 활과 창으로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장보고는 일찍이 동료이자 의형제인 정연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그곳의 군에 입대했다고 하며, 당시 당나라는 신라방(동네) 만들어져

있었고, 당은 번장이라 해서 이민족 출신을 무장으로 쓰기도 하는 등

이민족의 등용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국가였다.

 

 

장보고는 말 타고 창 쓰는데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으며

곧 서주 무령군(武寧軍)의 소장(小將)으로 출세하기까지 한다.

무령군은 산동반도에 할거하며 당에 맞섰던 고구려 유민 출신

절도사 이사도를 정벌하려고 만들어진 부대였는데 장보고는

무령군 소장 신분으로 평로치청번진 진압에 참전했다고 전해진다.

 

장보고는 805년 전후에 당(唐)으로 건너가 828년 신라로 돌아와

바로 흥덕왕을 만나서 " 당나라 해적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잡아가 

노비로 삼고 있으니 저에게 군사 1만을 주시면 제가 당의 해적들을

막겠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고, 흥덕왕은 즉각 이를 허락한 뒤

대사(大使)라는 특별 관직까지 내려 주었다.

 

장보고 어린이공원의 장보고 동상 

 

장보고는 한반도 서남부 앞바다인 현 완도의 장좌리,죽청리,대야리와

부속섬 장도에 "바다를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의미의 청해진(淸海鎭)

세우고 이를 기점으로 서남해안의 상권 및 무역권을 장악한다.

 

무장한 배를 형상화

 

삼국사기에는 장보고의 활약으로 신라인 노예 매매가 거의

사라졌다고 나오며청해진은 사실상 당대 최고의 해상 무력

집단으로까지 발전해 동아시아에서 엄청난 위세를 떨치게 된다.

 

 

838년 당시 일본 최고의 승려로 꼽히던 엔닌(圓仁)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일본인이 신라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 가는데도

신라어 통역 김정남(金正南), 박정장(朴正長) 등을 고용하였으며,

이후에도 엔닌은 당나라 활동 중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장보고에게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장보고 동상 아래 전시실

 

또 장보고는 산동반도에 적산법화원이라는 절을 건립했고,

이 곳에서 신라, 일본, 당, 발해, 동남아에서 건너온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대표적으로 엔닌이 있다.

 

동상 기념관 안에서 보는 신지대교

 

이 적산법화원은 신라인들이 운영했고 정기적으로

강경법회를 열어 재당(在唐) 신라인의 결집을 맡았다고 전한다.

또한 일본 승려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여행기)에 장보고의

도움을 정확히 기록해 놓았으며, 활을 든 장보고의 영정이

지금도 일본 교토 히에이 산 적산선원에 있다고 한다.

 

완도 앞바다

 

엔닌의 일기에 의하면 839년 6월 27일에 장보고가 보낸

두 척의 교관선이 적산포에 도착했는데, 청해진 병마사라는 직함을

가진 최훈이란 인물이 매물사(賣物使, 교관 선단의 우두머리)로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최훈은 7개월 반 동안 중국 동해안의

주요 항구인 유산포, 해주, 초주, 양주 등을 들러 무역 활동을 한 뒤

다시 적산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장보고는 교관선을 당에 수시로 파견했고, 당나라 동해안의 신라방

 사회를 원격 통제하고 이를 활용해 막대한 무역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동쪽의 일본에도 회역사(廻易使)라는 무역 선단을 주기적으로

파견했는데, 회역사는 어디까지나 장보고가 사적으로 보낸 무역 선단에

불과했지만 그 규모가 공식 사신단을 방불케 했을 정도로 지나치게 커서

당시 일본의 공식 대외 교역 창구 역할을 하던 규슈의 디자이후에서는

회역사를 받지 말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교역물품 도록을 쥔  15.5m의 동상

 

이후 장보고는 감의군사(感義軍使)의 직책과 식읍 2,000호를 하사받고,

진해 장군에 임명되는 등 신라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기는 했으나,

신무왕이 임금이 되기 전 자신을 도와주면 장보고의 딸을 왕의 아내로

들이겠다고 했던 약속이 귀족들의 반발로 끝내 지켜지지 않자,

 

장보고 기념관 앞마당

 

장보고가 반란을 모의하려고 했고, 이에 신라 조정에서는 "염장"을

장보고에게 보냈으며, 염장은 거짓으로 휘하에 들어갔는데, 장보고는

협객으로 반겨 연회를 베풀고 술에 취하자 그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베었다.

 

기념관 내부 상선 전시

 

장보고 기념관, 청해진 유적과 장보고

 

장보고 목조 벽화

 

장보고 목조벽화는 1,200년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 대사의 무역활동을 형상화한 

내용으로, 목조벽화 제작자인 육광정 대사(陸光正 大師)는 1988년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공예미술대사(中國 工藝美術大師) 칭호를

수여받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의

특별요청으로 제작 설치한 작품이다.

 

해상왕 장보고 일대기 등 전시물

 

해상왕 장보고의 기술과 전략

 

완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장보고

 

흥덕왕 알현과 해적 소탕

 

완도에서의 장보고 해상 무역활동

 

황칠 달항아리

 

장보고 표준영정 ~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국가표준영정 제21호

 

장보고 기념관 영상실

 

장보고 해상무역 무대

 

영상실에서 ~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장보고 기념관 영상실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