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황룡사지 발굴 50주년을 맞아
신라 왕실 불교문화의 상징이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의 심초석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 즉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과
중화 3년 명문 금동 사리기 등 총 127건 322점을 처음 선보인다.
황룡봉불(黃龍奉佛) ~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이번 황룡봉불 특별전시는 2026년 6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4개월간 열리는데, 황룡사 9층 목탑은 553년(진흥왕 14)에 시작해서,
645년(선덕여왕 14)에 이르러서야 9층 목탑까지 완성되며,
이후 고려시대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사라지게 된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은 1,400여 년전 황룡사 창건 당시 사리 봉안과 9층 목탑건립,
경문왕(景文王) 때 중수와 사리 재봉안, 통일신라 후기 사리장엄 문화
등을 주제로 하며, 이를 통해 신라 왕실의 불교 신앙과 국가 의례,
황룡사의 목탑 건립 배경, 당시 불교문화의 성격 등을 재조명 한다.
특별전시관 입구
이번 특별전의 핵심 유물은 645년에 제작된 금동 사리함과
사리공 뚜껑, 복원품, 그리고 872년에 제작된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등 황룡사 목탑터 출토품을 비롯해,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기 등은 물론, 사리공 내부가
금동판으로 장엄돼 하나의 거대한 사리함처럼 조성된것 등이다.
황룡봉불(皇龍奉佛) 전
황룡사는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 월성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그 위에 9층의 목탑을 올렸고, 목탑 심초석(心礎石, 탑 중심 기둥인
심주 아래 놓인 받침돌) 아래에 거대한 금동 사리함을 조성하여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를 봉안했는데,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
*사리장엄구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용기와, 공양물,
장식물 일체를 통틀어 이르며, 즉 사리를 직접 담는 사리병(사리함)과
그것을 감싸는 여러 겹의 그릇과 함, 공양구까지 모두 포함된다.
발굴과정 동영상
통일신라 시기의 정교한 보상화 용무늬 벽돌
사리공 장식판
목탑 심초석 뒷면의 사리공은 2단 구조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돌 뚜껑을 덮기 위해 턱을 만들었으며,
사다리꼴의 금동판 4장을 연결하여 턱 위에 올려 장식하였다.
심초석 하부 하층 출토품
청동 대접, 청동 판, 금동 손 칼, 청동 손잡이, 방울 등
금동 사리함 옆면
사리공 내부에 둘러 세웠던 금동 사리함 옆면
심초석 아래의 장엄구
유리구슬, 곱은 옥, 방울, 손 칼, 팔찌, 청동 그릇, 금속 장식품 등
심초석 하부 중층 출토품
철재 가위, 철재 낫과 도끼, 청동 합, 청동 뚜껑, 수정, 관옥, 구슬
청동 대접, 금동 장식, 은제 손칼, 유리 곱은옥, 은제, 동제 고리 등
은제 합, 금제 합, 금은제 연꽃 모양 받침, 수정 구슬
황룡사 찰주본기에는 유리 사리병과 함께 금은고좌(金銀高座)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발견된 유물 가운데 어떤것이
금은고좌인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중 연꽃모양 받침을 분석한 결과
위.아래 연꽃잎은 금으로, 가운데 기둥은 은으로 제작된것이
확인되었으며, 곧 이것이 금은고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금동 사각모양 함, 동제 원통모양 함, 은제 합, 은제 받침, 은제 금제 장식
경문왕이 사리함에 남긴 기록
872년 경문왕은 황룡사 9층 목탑을 중수하면서
금동사리함에 900여 자에 달하는 긴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황룡사 찰주본기"로 목탑의 창건 배경과 중수과정,
참여인물, 새롭게 봉안한 사리의 내용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찰주본기 기록이 있는 사리함 옆면
특히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한
이야기와 경문왕이 사리함을 열어서 기존 사리장엄을 확인한
사실도 담겨 있으며, 이러한 기록을 사리함에 새겼다. 이로인해
사리와 함께 목탑의 역사와 왕실의 불사가 후대까지 전하게 되었다.
사리함 네 면의 안팍에 새겨진 찰주본기 기록들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 찰주본기(皇龍寺 九層木塔 金銅 刹柱本記)는
통일신라 872년(경문왕 12)에 제작된 금동 사리함의 안팍에 새겨진
기록물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心礎石) 사리공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으로, 보물 제1870호로 지정(2015.8.31)되었다.
이 찰주본기에는 탑의 건립 내력과 중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봉안한 것으로, 문장은 당시의 명문장가이자 시독(侍讀)이었던
박거물(朴居勿)이 짓고, 글씨는 명필 숭문대랑 요극일(姚克一)이 쓰고
승려 총혜(聰惠)와 조박사(助博士) 연전(連全)이 글자를 새겼다.
찰주본기는 단순한 사리함의 명문을 넘어 선덕여왕 대의 목탑 창건
비화부터 9세기 경문왕 대의 중수 사실, 그리고 당시 토목 공사와
사찰 운영을 담당했던 성전(成典)의 조직 체계까지 생생하게 알수있는
1차 사료로서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전소될 때에도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했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뚜껑
황룡사 찰주본기는 1964년 12월 도굴꾼들이 황룡사 목탑지의
심초석을 들어내고 사리공 안에 있던 사리장엄구를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1966년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가 발견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수사 당국의 노력으로 황룡사 찰주본기를
포함한 사리장엄구 일체가 회수되었다.
황룡사 찰주본기(刹柱本記) 복원
872년 경문왕은 황룡사 9층 목탑을 고쳐 세우면서
사리공을 열어 확인하고 새로운 사리와 공양품을 봉안 하였는데,
이때 제작한 금동 사리함에 찰주본기를 새겼으며, 기존 사리를
그대로 두면서 법사리와 소탑 99기를 함께 봉안 하였다.
복원된 금동 사리함
연기법승이 새겨진 은제 판(왼쪽), 금동 팔각당형 사리기(중앙),
은제 당형 사리기 받침. 지붕 모양 뚜껑(오른쪽)
해인사 길상탑 소탑 ~ 통일신라 895년
해인사 길상탑에서 발견된 작은 탑으로,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과 오개, 상륜부까지 갖추어 실제 석탑의 모습과 거의 같다.
발견된 탑지에는 바닥면 구멍에 다라니를 넣은 소탑 99기와 77기 등
176기를 봉안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는 157기만 전한다.
해인사 길상탑 탑지석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금동 사리함
금동 사리함은 얇은 금동 판 4장을 연결해 상자 모양으로
만들고 바닥 판을 따로 두었으며, 안쪽에는 사리를 둘러싼
네 부처를 새겼는데, 동쪽에는 약사불, 서쪽에는 비로자나불,
남쪽에는 아미타불, 북쪽에는 석가불을 새겨 놓았다.
봉화 축서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봉화 축서사 석탑에서 나온 납석재 사리호와 소탑, 원통형 옹기이다.
"중화 3년"이 새겨진 금동 사리기
황룡봉불 특별전시장
황룡봉불 특별전시장 방문기념 사진촬영 장소
신라 왕궁이 있는 반월성으로 걸어가는 신라의 여인들
첨성대를 찾은 신라의 여인들
천여 년이 지난 현재의 반월성 풍경
오늘의 첨성대
세계인들이 찾는 신라의 유적
깊이 잠들어 있는 신라의 영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