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까지는 철암에 가는 길은 특히 겨울 철에는 그 당시에도 타 지역에서 볼수없는 진 풍경이었읍니다.
중앙선을 타고 영주에서 내려 영암선을 갈아 탑니다. 기관차도 그때는 전기도 디젤도 아니고 석탄을 때서 수
증기로 달리는 증기 기관차인데 객차 안 난방은 칸 칸이 석탄 난로로 해결하였읍니다.연통도 밖으로 각 각 내
어서 객차마다 노오란 연기(조개탄 연기)를 펑펑 내뿜으며 기차는 달렸습니다. 지금 상상해도 만화같이 재미
있고 우습지요. ^^^^^ 물론 난로가에 앉은 사람은 따뜻했지만 난로에서 먼 자리에 앉은 승객은 몹시 추웠습니다.
더구나 통리를 지나서 도계 묵호로 가는 승객은 통리에서 짐을 다 챙겨 통리재를 걸어내려가 신포리에서 묵호가
는 기차로 옮겨 타야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할만한데 겨울철에는 눈과 빙판에 비탈길을 내려가려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요즘과 같은 등산화나 운동화는 볼수 없는 시절이어서 구두나 고무신 위에
새끼줄(볏짚으로 꼬은 줄)로 감고 오르내렸습니다. 통리역에 승객들을 위해 새끼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노약자나 어린아이들은 짐꾼들이 지게위에 태워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게꾼들이 기차 손님들을 대기하고
있다가 서로 손님을 잡으려고 승갱이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일자리가 부족하여 기차역이나 시장에 지게꾼들이
대기하고들 있었습니다. 요즘 택시들이 승객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것 같이..... 천신만고 끝에 신포리에서 기차를
타고 앉아 한숨 돌리고 있노라면 신포리를 떠난 기차가 뒤걸음질을 치는게 아닌가? 경사가 너무 져서 지그자그로
운행하여 초행의 승객들을 놀라게 해주는 영암선에서만 볼수있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2, 3년전에 어느 국내여행
사에서 관광코스로 되었었는데 인기가 없는지 곧 사라졌습니다. 짐을 옮겨실거나 비탈길을 오르내리지 않고 객차에
앉은채로 도계를 거쳐 묵호 강능까지 오늘같이 달릴수 있게 된것이 60년대 중반경부터 인것같이 기억되는데 그때
부터는 장성 철암사람들도 당시 '바캉스" 라고 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북평 묵호 강능으로 여름휴가도 즐길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