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철암도서관

선생님이 사시던 집 이야기

작성자박미애|작성시간10.04.06|조회수21 목록 댓글 1

선생님이 사시던 집 이야기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외롭다. 동네에서 가장 외진 곳보다 더 후미진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아니래도 외로운 분이 살다간 집이어서 더 외로운 집. 방문을 여닫는 손길이 없어 문고리도 외롭고, 소담하게 앉아 쉬던 고무신이 없어서 섬돌도 외롭다. ‘모름지기 작가는 외로워야 한다’ 는 생전의 말씀처럼 외롭게 사시다 떠난 집. 모든 사물들이 저마나 외로움을 더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누구든지 여기에 오시려거든 외로움이 무엇인지 배우려고만 오시기 바란다. 외로움을 덜지도 더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그러려니 살다 가신 선생을 생각하며 ‘외롭다’ 고 읊조려 보기 바란다. 섬돌이나 들마루에 앉아서 찬찬히 외로운 것들을 눈으로만 곱씹어보기 바란다. 오래 자리한 고인돌을 보면서, 붉은 열매를 단 산수유를 보면서, 개나리 덤불 밑에 우두커니 자리 잡은 뺑덕이(강아지 이름)집을 보면서, 빨래가 없는 빨랫줄에 걸린 거미줄을 보면서 외롭다고, 외롭다고 생떼를 써도 좋다.

 

행여 마당의 풀이 마음 쓰여 베려고 하거나 굳이 청소를 하려들지는 말길 바란다. 마당에 자라는 풀들은 선생이 기르시던, 아니 놓아두고 보시던 것이거나 약용으로 쓰던 것들이다. 관절에 좋다는 쇠무릎, 지사제로 쓰던 이질풀, 차를 끓여 마시면 향이 그저 그만인 삼백초, 민들레, 질경이 할 것 없이 다 그렇다. 행여 보기 싫다고 낫을 들거나 아까운 손으로 뽑으려들지 말길 바란다. 그저 조용히 그들의 외로움을 느끼고 당신의

 

외로움을 매만지기만 하길 바란다.

 

외로움에 사무치거든 집 뒤에 있는 빌뱅이언덕에 올라보기 바란다. 거기, 아직 자연으로 다 못 돌아가고 남아 있는 뼛조각을 매만지지는 말고 그저 오래 바라봐주면 좋겠다. 시간이 나면 언덕 아래 푹 꺼진 선생의 집 낮은 지붕과 수런거리는 외로움이 살고 있는 뒤란을 살펴보기 바란다. 비밀이지만, 이즈음 언덕에는 까만 범부채 씨앗이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한 두어 개만 받아서 가져가 심어보길 바란다. 혹, 이곳이 그리우면 빌뱅이표 범부채를 보며 외로운 여기를 생각하고 외로움에 잠겨보길 바란다. 여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외로운 곳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의 외로움은 얼마간 위안을 얻을 것이다.

안상학 (시인.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동찬 | 작성시간 10.04.07 '외로움을 매만지기만 하길 바란다.'
    권정생 선생님 댁에 천천히 느리게 다녀오고 싶습니다.
    도시락 싸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참 좋습니다.
    일요일 책모임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