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나를
존재 하는 듯
없는 듯
한낮의 태양 아래 건
한밤중 달빛 아래 건
그대
없는 곳 어디인가?
생멸(生滅)을
벗어난 그대는
항상
고요함과 친하여 좋다
나는 그대를 떠난 적 없는데
그대는 나를 찾지 못하네
나는
당신의 그림자."""
이정하 시인은 그의 시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 바람불어 흔들리는게 아니라
들꽃은 저 혼자 흔들린다.
누구하나 눈여겨 보는 사람 없지만
제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떨리는게다.
그래도 들꽃은 행복했다.
웬지 모르게 행복했다.''
들꽃처럼 저마다의 삶은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스스로의 그 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이다.
지금껏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말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알것만 같다.
인간에게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모든것이 열려 있고 가능하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부조리한 세상,
각박하고 힘든일도 많지만
살아있어야 행복도 느낄 수 있고,
즐거운 일도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으니
어떻든 모든 것이 그만큼 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밤낮없이 일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도
왜 늘 불안한 걸까?
항상 더 가지려 애를 쓰지만
정작 원하던 것을 얻어도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삶...
무엇이 문제일까?
불안과 두려움이 선천적인 감정이라면
그 이유는 아마도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살아있기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다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또 노력하고,
이 끝없는 불안, 두려움과의 술래잡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안과 두려움을 대하는 방법은 단순 명백한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유일한 실존적 삶이다.
부조리하지만 삶은 늘 그래왔다.
인생을 너무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인생이 초라해진다.
인생은 그냥 길가에 풀한포기처럼
나서 사는것과 같은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ᆢ
오늘 살아 있네 이런 느낌으로 충만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일수도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보다 인간에게
더좋은 느낌을 주는것은 없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
그냥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현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아 있다는 충만함으로
하루하루가 차오른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어쩌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우리가
어떻게 덜 고통 받으며,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성과 의식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무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것일수도 있다.
편견과 시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 보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어 가는 과정이
나를 만나고 나를 찾아가는 진정한 여행이라 생각된다.
20대 철부지 열정만 있었던 시절,
이것 저것 해보다 지치고 쓰러지고 방황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도 없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제대로 나아간적도 없이 제자리 에서만 맴돌다
시간만 축낸거 같아 후회가 밀려온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늘 방황속에서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지금의 나이도 좋지만
이십대로 돌아가 후회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어떤 간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열정도 발전도 크게 없는 무료하고 진부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나는 현재 나의 모든 상태에 만족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속에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방향을 확고히 붙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일상이 관습화되고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말이다.
지금의 나이가 가장 좋은 것은
어쩌면 지나온 시간속에선 느끼지 못했던 보다 여유로운 시선일 것이다.
세상을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넓게 다르게 바라보고 그 현상에 대해 주목하여
나 자신의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질문하면서 해석할 수 있는
시선의 여유, 인식의 깊이를 갖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뒤죽박죽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현상과 소문들에 근거하고
파편화된 조각들에 기대어 편협한 시선과 잘못된 왜곡현상이 많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왜곡이 조금은 더 정결하게 씻겨 내려간 듯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여유.
나만의 걸러진 인식들을 스스로에게 느끼게 된다.
물론 어쩌면 주관적인 자기 충만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험만큼 많이 생각한 만큼
인식과 느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판박이가 아닌 독립적 자아로
타자의 평가나 시선이 아닌
나자신과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선의 깊이를 생각하게 된다.
이게 모두 나이를 먹어 가는 효과일까?
경험의 넓이가 인식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내 자신속 갖힌 알에서 깨어 나오고 싶은
어떤 정제된 느낌이 커져가기 때문일까?
변해가는 게 슬픈 것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게 다 변한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 슬픈 것이다.
왜냐하면 변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모든 20대는 다 똑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30대까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갈피를 못잡으며 살았다.
그때의 나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가는 요즘에서야
나를 만나지 못한 나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관점에서 돌아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과 동행 하는 여행이었던 거 같다.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자기 질문의 과정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나선형의 궤적이다.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기한까지 사람답게 살다 가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는 이유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품고 세상을 지적하며,
내가 나 답게 살 수 있는 것을 찾아 그렇게 살고 싶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에 심취했던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인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이란, 젊은이의 눈에는 끝없이 긴 미래로 보이며,
늙은이의 눈에는 지극히 짧은 과거로 보인다.
젊은이의 경우에는 마치 쌍안경을 거꾸로 하여 사물을 보는 것과 같고,
늙은이의 경우는 쌍안경을 바로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인생이 극히 짧다는 사실을 알려면
장수한 늙은이가 되어 보아야 한다.
인생의 모든 사물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꿈과 같이 덧없게 느껴지고,
허무와 무상이 뚜렷이 눈에 보이고,
마음에 스며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 이미 너무 늦다.
그게, 인생의 슬픔이다.
가끔은 별들은 반짝이며 수없이 떠있는데
갈 길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야한다
살아있다는 것이
하늘아래 존재하는 희망이라
앞만 보고 다시 앞만 보고
무엇도 보이지 않아도
오직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우릴 늘 감싸지만
희망은 삶 속에 언제나 있다.
행복에는 조건이 없다
살아있다는 것 하나로
얼마든지 충분한 것이니까..
살아있다는 건
행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낙관은 의지의 문제이고,
비관은 감정의 문제이다.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슬픈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일상 삶 속 매순간 던져진 상황 속에 접하는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나를 향한 세상을 향한 질문 안에서
나만의 희망을 나만의 답을 찾아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늘 이 하루, 꿈꾸는 모든 것,
계획하고 있는 모든 것,
상상만큼 잘 될 거라고 믿고 살자.
설레는 마음을 들고 집 밖을 나서자.
오늘 하루만큼은 쉽게 웃고
감정에 솔직해지자.
흘러가는 1분, 1초에 나를 입히고
내가 가진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엄한 서사시가 만들어진다면
파랑새가 찾아와 귓불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지 않을까?
"모든게 설레이니?
너에게 싱그런 풀향기 나는 거 알아?''
쓸개 수술후 피서겸
서산 용현계곡에서 포부(?)를 위한 칼을 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