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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맛

작성자정동광(28회)Antonio|작성시간26.06.21|조회수12 목록 댓글 0

《 친구의 맛 》

혹독한 바이러스 펜데믹 3년차를
견뎌내면서 코로나19가 창궐하기
바로 전 여름,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이 항수처럼 그리위 회상해본다.

여름이 푸름에 지쳐 게으름으로 늘어진
호시절에 당김도 매임도 느슨해진 나이,
그것은 어느 시구(詩句 )처럼 지난 삶이
보관해놓은 했별 같은 선물이었다.
지난 삶이라는, 이제쯤이면 선물다운
선물을 스스로라도 챙겨 받을만한 세월을
무난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아군 없는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금치 나라를 겨우 벗어나니
세상사 산 넘어 산이더라.
진자리 마른자리 호호 불며 키위 놓고
이제야 깊은 시름 내려놓으려는데
그들 사이에 웬 꼰대와 라떼가
폭 넓은 강처렴 놓여있어 씁쓰름한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격정 말아요 그대.'
우리는 우리의 길을 씩씩하게 가련다
하며 서로 위안하고 떠났다.

충실한 근무로 쌓은 신임(信任)이 고빼를
늦추니, 길을 잘 아는 늙은 말이 되었다.
터널이 생긴 후 한가해진 미시령 옛길을
음악 깔고 노래 부르며 넘어 넘어갔다.
온종일을 들녘으로, 해변으로, 산골짜기
오솔길로 쏘다니다가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숙소로 향했다.
마치 수학여행이나 온 것 같은 설렘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온 몸이 뻐근했으나 다음날도 일찍들 일어났다.
서로에게 엄지 척을 날리며 아침 식사도
드는 둥 마는 둥 끝내고 고대하던 원주
소금산 출렁 다리로 서둘러 떠났다.
새벽 안개를 뚫고 먼 길을 달려 막상
도착해 보니 이른 아침 시간인 데도
인근 주차장은 이미 만차 표지판이 입구를
막고 있었으며 길거리는 온통
관광버스에서 내린 인파로 아수라장이었다.
출렁다리로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다는데,
그중 가장 난코스로 향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설렘만 담고 사전 정보도 없이 눈앞에 닥친
시행착오 앞에서 우왕 좌왕하다가 친구 중
셋은 자잘한 사연을 배경에 깔고
출렁다리를 향 하여 떠났다.
북적대는 거 싫어하는 선희와 나는 쉴 곳을
찾았다.
마침 가까운 거리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막 시킨 순간, 비극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빠르게 다녀온다 해도 1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 라며 출발했구먼, 유난스레
기분이 들떠서 떠난 희야가 운동화도
안 신었고 허리도 아프다며
돌아오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엄청나게 걸어서 정신이 다
가물거린다면서 말이다.
멋쟁이 희야가 7월의 뙤약별 속에 만만치
않은 길을 홀로 걸어왔는데 꼭 비 맞은
제비처럼 딸범벅이 되어있었다.
눈 한번 곱게 흘겨주고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추가 주문하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자기는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숨 소리까지 쌕쌕거린다.
그렇게 겨우 산 하나 넘고 돌아온, 패잔병을
하 나 더 맞아들여야 했다.
그로부터 40여 분쯤 후에 마지막 선수, 숙이가 출렁다리를 번개처럼
재빨리 맛보고는 초주검이 돼 돌아왔다.
땀에 젖고,힘에 부쳐,혀 빼물고 돌아오는
그 꼬락서니들을 속속 대할 때마다
체면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우리들은
자지러지게 웃음보를 터뜨렸다.
빈티지 청바지에, 명품 티셔츠에,
치장은 아이돌인데 본 경기든 갈라쇼
(Gala Show)든 이제는 어쩔 수없이 나이
든 티를 내는 것에 눈물까지 절끔대며
박장대소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발머리 여중생일 때 교정에서 만난
내 동무들이다.
남편 보다 자식보다 먼저 만난 사이,
낡아갈수록 손때 묻어도 빛나는 보물
같은 존재, 이별 없는 사랑이다.
잦은 안부가 오가면서도 숙이의 사별과
선희의 이혼을 막지는 못했지만,
함께 익어 달콤했고, 같이 낡아갈 수
있어서 평온했다.
이 동고동락 (同苦同樂)의 긴 세월은
우리들의 모범 답안지가 되었다.
오늘까지도 우리는 출석 부르듯이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이여서
언제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삭힌 친구의 맛은, 늘 입안에 단침이
고이게 하는 맛있는 행복이다.

[ 글쓴이/ 위연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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