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치는 길이다. 문화예술 관련의 일을 하면서 내 주 본거지는 대인예술시장이 되었고, 작업실에서 나와 길목 하나를 건너면 전남여고와 마주친다.. 늦은 밤, 몇 잔의 소주에 기분이 가라앉으면 단지, 모교라는 이유만으로 들어가 담장 아래를 기웃거리곤 하기도 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곳.. 들여다보면 볼 수록 3년의 시간을 보낸 전남여고 교정 안에서 흔적들을 만난다. 혼자 느리게 걸으며 운동장을 걷다보면 그 시절의 내가 했던 생각들이 다시 기억으로 돌아온다.
웃음도 나온다. 무슨 혜안이 있었는지, 열아홉의 나는 충분하게도 오십의 나를 예상하고 있었으니.. 아마도.. 하고 생각했던 미래의 일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그 안에서 웃고 먹고, 마시며,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 삶이란 이미 스무살 즈음에 스스로 규정지어 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깊이있는 깊이로 다가서는지, 나 혼자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며 배려하고 아픔을 나누며 살아가는지,.. 그 차이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돌아왔다. 빨리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기를 바랬었다. 모든 것을 다 겪어버리고, 지나갈 것이 다 지나가버린.. 그래서 알맹이만 사리처럼 오롯하게 남아있을 사십과 오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하지만 막상 바라던 나이가 되어가니.. 내 스스로 삶에 대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했는지 마저도 알게 해준다. 댓가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고, 난 아직도 걷고 있는 중이다.
이 생활관에 입주하던 날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더 기뻐하셨다. 한복도 맞춰주시고.. 우리집 여학생이 드디어 다도와 예절을 올곧게 배워올 것이라 말씀하셨던 것이 생생하다. 하지만 난,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 역시 기억한다.. 밖으로만 나가고만 싶어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한복을 입은 채,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을 즐거워 했고, 간간히 플래시를 터트리며 마당의 히말라야시다를 껴안 채 시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날 밤. 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난, 이 문 앞에서 밤새 서성거렸다. 아마도 교복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면 도망이라도 갔을 것이다. 답답했고.. 단체로 자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았다. 난, 지금도 여럿이 함께하는 단체생활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다. 스스로 왕따임 셈이다. 사람들은 내게 제 입맛에 맞는 사람만, 같은 코드인 사람만 만나는 편식이 심한 사람이라고 한마디씩 하기도 한다.
생활관 문을 열고 30년 만에 들어가 본다. 역시 1박2일의 에절을 배웠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기억하기 싫어서 내 지억의 창고에서 지워버린 듯 하다.. 내게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굳게 닫혀져 있던 문이다..
총무로 일하고 있는 순선이와 학교 운동장에 가보았다. 순선이는 30년만의 방문이 감개무량이었다.. 얼굴빛처럼 햇빛도 화사하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앉아 수다를 떨던 등나무 벤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내가 광주로 이사를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대학이었다.. 고등학교는 대학을 보고 오는 길에 들렸었다. 그때 마침 학교의 낡은 건물들을 헐고 증축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가슴이 온통 서늘해져옴을 느꼈었다.. 내, 역사가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다만 기억 속에서만 머물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동안을 망연하게 그저 차 안에 바라보았었다.
매달 한 번씩 전남여고 총동창회 회장님들과 간사들이 오늘 이 시간에 모여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정산보고와 월례회를 한다고 설명해주신다. 아마도 우리도 곧 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가각의 의자에 앉아야하리라.
총동창회의 김정자 회장님께서 우리의 총무인 나순선과 경아를 소개해주는 시간을 할애해주셨다. 두 사람은 이곳을 방문해 인사하기 위해 맛있는 간식으로 떡을 준비해왔다.. 난, 이런 소소한 일들을 보면서.. 도저히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이란 것을 안다. 난,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어하는 일들만 하며 살아왔는데.. 이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까지 시간을 들여 하고 있다.. 세상은 이런 배려가 있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변화해간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이다.
한 쪽 벽에 걸려있는 역대 회장님 사진들. 내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었던 최순자 선생님도 동창회장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알았고.. 게속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순선이와 경아의 인사말.. 자주 찾아뵐께요..하는 말이 듣기에 참 좋았다.. 물론 박수로 화답을 받았다.
우리가 함께했던 생활관의 내부. 잠을 잤던 곳을 보고 싶었는데 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오지 않아 들여볼수가 없었다..
김정자 동창회장님.
올해의 회장님. 역시 김정자 회장님. 아마도 전남여고 동창회장은 이름이 같은 사람만이 될 수 있는듯.
문을 열고 생활관에 들어섰을 때, 동창회장님이 우리를 보고 <우리 아가들. 어서오세요> 하며 팔을 벌려 안아주셨다.. 밖에서는 나름 경로우대로 늘 존칭어를 받다가, 아가란, 호칭을 들으며, <아유. 우리 이쁜 아가들.> <이 탱탱한 피부 좀 봐>하는 말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점점 친근해졌다..
그냥 살아온, 지나온 세월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깊은 강물을 건넜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한없는 자갈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서,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 회한과 분노, 외로움들이 모여 노래교실 안을 가득 메운 허연머리칼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세상의 깊이는 그 나이만큼의 깊이로만 볼 수 있다. 열아홉의 생활관은 열아홉에 맞게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게 내게 다가왔을 것이고, 오늘은 오십의 나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저 의자에 앉아 노래교실에서 한 소절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다시 오늘의 방문을 되새김 할 것이다.
하늘을 맑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우리 51회 동창회에는 어떤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마트면 빠트릴 뻔 했다.. 동창회장님께서 챙겨주신 선물. 전남여고 마크가 선명한한 룩색 하나와 시집 한권. 돌아와 책상에 앉자마자 다 읽었다.. 신춘자 동문님의 <동악산 사모곡>이란 제목의 시집이었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탁월한 시의 주제들로 엮어져 있으며 네 아들과 남편의 시가 인상이 깊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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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임래옥 작성시간 11.04.05 시어머니 같은 대 선배님들 앞에서 당당한 그대들 정말 멋지다.
어렵고 힘든 일은 광주 친구들 몫이 된것 같아 여간 미안하구먼...
범현희는 인생의 깊이를 아는 수필가 같다.현희야 나 기억하지? -
답댓글 작성자신은영(5반) 작성시간 11.04.05 래옥아, 현희가 아니고 현이란다.
나는 옛날부터 현이라는 이름이 참 맘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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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은영(5반) 작성시간 11.04.05 현이 오늘 고생했다고 해야 하는건지 즐거웠겠다고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네가 우리 둘만이 아닌 다른 친구들 속으로 푹 들어온 것 같아 기분 좋다.
너는 항상 자랑스러운 내 친구거든.
나도 생활관 기억은 별로 없다. 3학년 가을 너랑 둘이 본관 앞 계단에 앉아서 불타버린 방송국 보면서 분개하던 기억만이 가장 선명하다.
열아홉에 예상했던 오십의 삶! 그 당시 넌 충분히 그런 혜안을 지닌 영리한 친구였지.
너와 난 자유롭고 싶은 비슷한 영혼을 가졌지만 자유로운 영혼 자체로 살아온 너와 달리 나는 현실에 얽매여서 안으로 감추고 살아왔다는 사실만 다를 뿐...
삼십을 사십을 돌아온 오십...우린 그래도 행복하잖니? -
답댓글 작성자소소한 일상(범현이 -2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4.05 네 글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돈다. 너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손톱 밑의 때까지도..너가 내 친구여서 여전히 고맙고 감사해.. 무엇이 우리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냈을까..
오늘은 정말 뻘짓 안하고 일만 해야 돼. 마감이 낼이거든. -
답댓글 작성자신은영(5반) 작성시간 11.04.05 이럴땐 남자라면 짜아식~~하면서 등이라도 두들겨줬을텐데...
말을 안해서 그렇지 너는 네 블로그에서 날 안울린 줄 아니?
맨날 코끝이 찡하게 하고 눈시울 적시게 만들고...
글쓰는 사람에게 마감의 의미는? 쫒기는 자의 마음? 나는 그랬다.
억지로 써야 하니까.
오늘 마감 잘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