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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의 삼세제불 보단 한 무심도인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 송담 큰 스님

작성자寶山|작성시간25.01.07|조회수29 목록 댓글 0

 

천억의 삼세제불 보단 한 무심도인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 송담 큰 스님

 

 

천억의 삼세제불에 공양한 것 보단

한 무심도인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는

무념 무주 무수 무증한 사람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그런데, 무념이요· 무주요· 무수요· 무증한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이라 그 말인데,

 

이 무심도인은 어떠헌 것이 무심도인이냐 ?‘

생각을 하되 생각 없는 생각을 하고,

행울 하되 행이 없는 행을 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고,

증허되 증헌바가 없이 증허는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이라 하는데,

 

이 무심이라 하는 것은

사실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러헌 것이 무심도인이다

이렇게 말허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그래서 누가 무심도인인지 아닌지를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수행한 수행자가운데에는

몸도 마음도 청정해서 무심한 경계에 들어간,

들어갈 공부를 했고 그 가운데에는

이미 무심한 경계에 들어간 스님이 몇 분인가는 있을 수가 있다

그 말이여.

 

설사 오늘날 당장 완전히 진, 진무심경계에 들어가지

안했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도 준 무심도인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 해제 때 모이신 그 스님네 들에게 공양을

올리며는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비명횡사해서 거리 중천에서 갈 곳을 모르고 해매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와 가족들로 하여금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허는 공덕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무심도인

내가 무심도인이다하먼, 그게 무심도인이 아니여.

내가 한 소식을 했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이믄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니고,

나는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헌 생각을 가지믄

이미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닌거여.

 

어떻게 허면 무심 경지에 들어가느냐?

 

본참공안 이 뭣고?’화두가 되았건,

판치생모화두가 되았건, ‘무자 화두가 되었건,

선지식으로 부터서 지정받은 그 본참공안을

하나를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째서 무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은산철벽에 탁! 부딪힌 것처럼,

나아 갈라야 나아갈 데도 없고

물러 설라야 물, , 물러설 수도 없고,

 

오직 꽉 맥힌 의단이 독로허도록 본참공안애

실참 실수 해 나감으로 해서 공안을 타파해서

마침내는 무심도인 되는 것이고

확철대오해서 참 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여.

 

이것이 부처님께서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허셔서

설산에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일생, 일대사를 해결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요점이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그 삼목, 삼복성염을 성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행을 하고

모이신 여러 도반들을 만났으니 너무 반갑고,

고향 일가친척을 만난다고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일가친척은 만나봤자 거북하고 신경 쓰이고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 저기서 한철을 지내고 모인 도반들은

안면이 있는 분이나 안면이 없는 분이나 해제를 하고

만나면 수십 년 보고 싶었던 고향친구가

이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변이 없어서 내가 반가운 척은 못헙니다 마는,

마음속으로는 정말 반가운 것입니다.

 

나와 같이 한 목적을 향해서 가는 도반이요

현재 한 목적을 향해서 고행을 해 나가는 형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세세생생에 또 다시 만나야 할 도반이요

궁극의 목적지에서

다시 부처님 회상에사 또 만나가지고

중생교화를 해야 할 그러헌 도반이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처 : 아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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