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

작성자寶山|작성시간25.05.08|조회수37 목록 댓글 0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을 설명하는 말에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이 있다.

 

<능가경>에서 밝히기를 일체법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이라 했으니,

우주 안의 일체만물은 인()과 연()이 화합한 후

비로소 그 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연()은 어디까지나 간접적 중간 역할만을 한다.

 

그러나 한 인()이 과()를 이루려 할 때

그에 해당한 연력(緣力)이 아니면 절대로 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 연은 간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면서도 연력(緣力)이 들어서 그 인()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

 

이러함을 종자 토지 결실과의 관계를 가지고 비유한다면,

종자는 결실의 인()이요, 결실은 종자의 과()이니

토지()는 종자로 하여금 결실케 하는 중개역할밖에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 없이는 인()에서 과()가 결실될 수가 없다.

이것을 연결불생(緣缺不生)의 법칙이라 한다.

연이 없으면 생이 안 된다는 말이다.

인은 반드시 연을 만나야 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결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 결실 외에 있고, ()은 결실 내에 있으니

이를 일러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이라 한다.

 

가령, 이곳에 감[] 종자를 심는다면

토지햇볕수분공기 등의 연()

그 감나무 종자의 성숙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부연할 필요도 없지만, 연력(緣力)이 들어서

그 인()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는 말은,

연력(緣力)이 감 종자를 배나 능금으로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인과 연의 한계가 분명한 것인데,

만일 인과 연의 소재 및 역할을 혼동하거나 착각한다면,

진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동시에 폐해 또한 심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복(;행복)과 화(;불행)를 중시해서

누구나 행복을 희구하고 불행은 염오하지만

뜻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화복의 연유,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을 잘못 알은 소치 때문이다.

 

우리 일체의 화복이 각자 내부에서 기인함을 망각하고,

자기 이외의 정부정책이라든가, 신이라든가, 조상이라든가,

관상 내지는 풍수라고 하는 외부(환경)에서 오는 것이라

잘못 알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인(自因-자기 스스로의 인-내인)

닦고 키우려 하지 않고, (외연)을 원망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세상만사가 못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이 못마땅하게 생겨먹어서 그런 것이지

세상만사가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그 중에는 못마땅한 것(외연)도 더러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

흔히 불평분자란 말이 있듯이 유별나게 불평이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럴 경우 인식주(認識主-자기)의 주관(內因)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려 하지 않고,

매사 소극적이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성을 띤다.

 

21세기 문명의 혜택을 받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사주(四柱)나 관상(觀相)이나 수상(手相) 등을 보고서

좋다고 하면 기뻐하고, 나쁘다고 하면 실망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 혹은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들이

선조의 백골을 파서 짊어지고 명당을 찾아다니며

조상 묘를 이장하는 이도 없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일수록 먼저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을

각득(覺得)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미산 스님의 해설이다.

 

인과 연으로 생겨나는 것이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즉 연기법이다.

연기법은 어떤 원인이 그 원인과 합치되는 수많은 조건들[]이 결합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그 현상의 실상(실제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처음 원인은 하나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원인과 결합하려는 조건들은 무수히 많다.

 

어느 한 순간 그 원인과 조건이 결합한 결과로 나타났을 때

우리에게 하나의 현상으로 보인다.

그 현상을 불교에서는 법() 또는 다르마(dharma)라고 한다.

그래서 인과 연이 만나서 만들어 낸 현상을 인연소생법이라고 한다.

 

 

용수(龍樹), “나는 그와 같은 인연소생법을 공()이라고 말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이라 표현했다. , 연기법을 공이라고 한다.

 

왜 연기법이 공이라 하느냐 하면, 연기법은 공일 수밖에 없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시적 현상 법으로 나타난 것이니까.

 

이런 법으로 나타난 것의 특성은 일어났다 사라지게 돼 있다.

항상 변하니까, 무상한 것이니까, 그래서 공인 것이다.

 

인연에 의해서 법으로 나타난 그 결과는

또 그냥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영구불변한 실체적 속성이 없다. 그래서 공이라고 한 것이다.

일체만유가 다 공이다.

지구도 은하계도 내 몸도, 대상적인 모두가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중론(中論)>에서는

인연소생법 아설즉시공(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이라 했다.

인연으로 생긴 모든 것들은, 곧바로 공이라 했다.

 

 

칸트도, 우리의 인식을 밖에 있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認識主)인 내 주관에 있다고 했다.

밖에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관이 그렇게 보니까 그렇게 인식된다는 말이다.

밉게 보는 것도, 미운 사람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밉게 본다는 말이다.

모든 인식이 자기 주관에 의존해 있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인연소생법을 인()과 연()에서 생겨난 것들,

즉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체로서 집착하고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고통이 생겨나고,

계속되는 집착으로 인해 고통이 증폭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존재현상을 인연, 즉 연기된 것으로 보면

집착심이 줄어들고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본래 없었던 것이기에,

생겨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이라고 한다.

인연에 의해서 모였다가 사라지면 텅 빈 공이 되는 것이다.

 

중도(中道)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면 중도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게 실제 공성(空性)이 체험되고

공성이 어떻게 이 삼라만상을 만들어 내는지를

본인 스스로 체득을 했을 때만이 진정한 실천행이 될 수 있다.

그때 가서야 진짜 중도적 삶을 스스로 구현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이라 한다.

 

용수는 <중론>의 삼제게(三諦偈)로 일컬어지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 -

인연으로 생기는 진리는 공()이라 하며,

또한 가()라고도 하고, 또한 이를 중도라고 한다.

 

, 이 현상이 나타난 모든 것들은

연기적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난 법인데,

우리는 여기다가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이 가명(假名)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소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

 

컵 가져와이렇게 했는데, 누가 볼펜을 가져오면 아주 불편하다.

이게 컵이냐? 너는 컵도 모르니!” 이렇게 소통이 안 되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부 이름을 붙여서

개념화해 가지고 소통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개념이 가명(假名)인데,

그것을 실체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명을 실체로 착각하지 않는 것을 중도라 한다.

중도의 이치가 바로 서면 그런 착각을 하지 않게 된다.

 

중도의 이치가 다른 게 아니다.

중도는 바로 연기적으로 사유해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자유가 있는 것이 중도이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 틀렸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명(假名)이 실체인 것처럼 착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기 중도를 분명히 이해하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우 관용적이고 이해심이 큰 법이다. 가명(假名)에 속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교는 우주 만유 일체 진리 가운데 가장 보편타당성을 가진

()-()-()의 이법(理法)으로써

만사만리(萬事萬里)를 해석하고 있다.

이 인연과의 이법이 우주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만유 근본의 원리이고, 철칙이다.

 

불교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실천의 가르침이지, 이론만의 가르침은 아니다.

 

그리고 불교의 근본 목적이

중생들이 무시이래로 혹업(惑業)에 속박돼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 죄업의 근본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고해의 세계를 차안(此岸)이라고 하고,

해탈(解脫) 곧 이상의 세계를 피안(彼岸)이라고 해서,

일체 중생을 고해의 차안에서 극락의 피안으로 건너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복리를 위해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삼세(三世) 인과(因果) 원리를 철두철미하게 밝혀야 한다.

 

무릇 종자는 인()이 되고 토지햇볕비 등은 연()이 되며,

과일의 결실이 과()가 되는 것이 인연과의 법칙이라,

예로부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인연과의 법칙은 수많은 종류가 있다.

인과의 법칙은 틀림없다는 정인정과(正因正果)로 비롯되는

자인자과(自因自果), 선인선과(善因善果), 유심인과(有心因果), 연결불생(緣缺不生),

내인외연(內因外緣), 인과순환(因果循環), 인과자유(因果自由) 등이 있다.

 

자인자과(自因自果)의 법칙 -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게 된다.

곧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내가 지은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받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내가 대신 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 스스로의 것이기 때문에

내 육신이 아픈 것을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내 배가 고프면 내가 먹어야 배가 부른 것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의 법칙 - 선업을 지으면 복락(福樂)을 받게 되고

악업을 지으면 죄고(罪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도 하는 것이다.

선업을 짓고서 죄고를 받는 일 없고 악업을 짓고서 복락을 받는 일 없다.

심고 가꾼 대로 거두는 것이다.

 

유인유과(有因有果)의 법칙 -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연결불생(緣缺不生)의 법칙 - ()은 반드시 연()을 만나야만

()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리 좋은 씨앗이 있다 할지라도

병속에 넣어두면 십년을 가도 그대로 씨앗일 뿐이다.

반드시 좋은 땅이라는 연()을 만나야

싹이 터서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음속에 착한 마음이 있어도

()을 만나 행동에 옮겨지지 않으면 선행이 될 수 없다.

 

내인외연(內因外緣)의 법칙 - () + () = ()가 되는데,

모든 인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내 마음속에 인이 없으면 아무리 연이 있다 할지라도

과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과순환(因果循環)의 법칙 - 인과의 법칙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인은 과가 되고 과는 다시 인이 되어 쉬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금생에 받는 것은 전생에 지은 것이요,

금생에 짓는 것은 내생에 받게 되는 것이다.

 

인과자유(因果自由)의 법칙 - 인과관계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인을 짓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선인과 악인은 다른 사람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유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과의 법칙은 짓는 대로 받는 것이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내가 지은 것은 반드시 내가 받게 되는 것이지만,

짓고 짓지 않는 것은 어느 누가 명령하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선택하고 내 스스로 자유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업을 짓든 악업을 짓든 그것은 나의 자유이다.

인과는 자유이기 때문에

내 인생은 내 스스로가 창조하고 개척하는 것이요,

빈천한 사람도 부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과는 미래 지향적인 창조적 삶이요 자유로운 선택인 것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