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열쇠다.
삼덕이가 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선생님은 삼덕이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다. 그러나 삼덕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이상한 얼굴로 삼덕이를 바라보았다.
“지는 삼디긴디유.”
삼덕이는 입학 첫 날부터 삼디기로 불렸다. 삼디기는 세 살 때 아빠가 몹쓸 병으로 돌아가시고 돈 벌러 나간 엄마에게서는 소식이 끊겼다. 그래서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와 충청도 산골에서 둘이 살고 있다. 할머니는 삼덕이에게 칭찬을 할 때도 “애고, 우리 심기디 착혀!”라고 말한다. 그래서 삼덕이는 제 이름을 ‘삼디기’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덕이는 2학년인데도 글을 읽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려운 덧셈 뺄셈도 하는데 삼덕이는 아무것도 모르니,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삼덕이를 부를 때 ‘까막눈 삼디기’라고 불렀다. 삼덕이는 아는 것이 없어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며 친구들의 공부를 방해 하는 아이로 찍히기도 했다.
어느 날 경상남도 통영에서 촌스러운 모양새를 하고 사투리를 쓰는 ‘연보라’라는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반 학생들은 장난끼어린 목소리로 삼덕이 옆에 보라를 앉히자고 떠들며 웃었다. 의외로 보라는 아는 것도 많은 아이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연보라’는 이 작품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린아이답지 않게 굵직하고 투박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어딘지 모르게 누나 같은 학생이었다. 보라는 삼덕이에게 못되게 구는 친구들에게 어른스럽게 충고를 하는 등 삼덕이에게 잘해준다.
아침 시간에 “동화책을 읽고 책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세요.”라고 칠판에 써 있었다. 하지만 까막눈인 삼덕이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방 속에서 딱지를 꺼내 혼자서 놀기도 했다. 그때 보라는 삼덕이 앞에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처음에 삼덕이는 보라의 호의를 무시했다. 보라는 삼덕이가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보라는 삼덕이에게 글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받아쓰기에서 늘 빵점만 맞던 삼덕이는 보라 덕분에 빵점이지만 빵점이 아니기도 했다. ‘가, 나, 다’ 한 글자라도 쓰려고 했던 삼덕이의 노력을 보라가 알아봐주기 때문이다.
삼덕이는 누구보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할머니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착한 아이다. 비록 글을 읽지 못해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은 삼덕이다.
보라는 날마다 삼덕이에게 그림책을 가져다 쉬는 시간에 읽어주었다. 또 삼덕이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 열심히 듣기도 하고, 따라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그 동안 보라가 읽어 준 동화책만 해도 열권이 넘었다. 삼덕이는 보라가 빌려준 동화책을 집으로 가져가 할머니께 읽어드렸다.(물론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반 친구들은 삼덕이가 보라에게 열심히 글공부를 배우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꾸만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받는 삼덕이를 보며 보라에게, 삼덕이가 또 빵점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삼덕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비록 틀린 맞춤법이지만 의미를 맞게 쓴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보라는 삼덕이의 받아쓰기 공책에 빵점이 아닌 백점으로 ‘0’ 옆에 ‘10’을 적어 ‘100점’으로 고쳐준다.
삼덕이는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비록 더듬더듬 읽고 틀리게 읽기도 하지만 반 친구들은 작은 목소리로 삼덕이만 들리게 속삭여준다.
“깡통을 무심······코 투······”
‘툭’자에서 더듬거리자 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툭 찼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삼덕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작은 소리로 가르쳐 준 것이다. 덕분에 삼덕이는 무사히 책 한 쪽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삼덕이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반 아이들 또한 모두 삼덕이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보라는 삼덕이의 마음을 여는 열쇠다. 가장 빛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보라는 왜 삼덕이에게 잘 해주는 걸까? 시골에서 전학 온 학생의 너그러운 인심이 삼덕이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에는 투박한 보라의 이미지와 보라의 이름이 너무 상반 된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다 읽고 나니, ‘보라’의 예쁜 이름과 예쁜 마음이 매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이해했다. 글을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면서 삼덕이가 정말로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행복이 독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감정을 독자가 함께한다는 건 작가의 엄청난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삼덕이의 이름은 남에게 너그럽고 본보기가 될 만한 덕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작품 속에서는 삼덕이의 이름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단지 촌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굳이 이름의 의미를 넣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까막눈 삼디기 (글 원유순, 웅진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