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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억울한 각다귀/고현숙

작성자고화|작성시간26.06.14|조회수32 목록 댓글 1

                                                                 억울한 각다귀

고현숙

 

  “우와!”

  물 밖은 각다귀 애벌레로 살던 물속과 공기부터 달랐다. 한참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왕모기다!”

  물놀이하던 아이가 나를 가리켰다.

  “으윽, 피 빨아먹는 흡혈귀. 어디 있는데?”

  “저기 있어. 물리면 큰일이야. 어서 쫓아버려.”

  아이들이 내게 물을 끼얹고 돌멩이를 던지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난 왕모기가 아니야.”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날아올랐다.

  ‘!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심호흡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솔솔 날아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음, 달콤해!”

  향기가 나는 쪽으로 날아갔다. 저만치에 활짝 핀 꽃들이 보였다. 나는 노오란 꽃술에 내려앉았다.

  “꿀 따려고?”

  누군가 말을 건넸다.

  ‘다리는 기다랗고 톱처럼 생긴 더듬이, 등에는 얼룩무늬가 있고 구름무늬 날개는 두 장…….’

  나는 눈알을 굴리며 꼼꼼히 살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니? 각다귀끼리.”

  “너도 각다귀구나. 근데…….”

  나와 좀 다르게 생겨서 흘금흘금 곁눈질하며 받아넘겼다.

  “각다귀치고는 크고 길지? 그래서 다들 날 장다리라고 불러.”

  장다리는 꽃송이 가운데로 쭈욱 입을 들이밀었다.

  “, 너도 나처럼 해봐. 이 속에 달콤한 꿀이 있어.”

  장다리가 뭉툭한 입에 꿀을 잔뜩 묻히고 말했다.

  “고마워. 근데 날 보고 피 빨아먹는 모기라고 물을 뿌리고 돌멩이를 던졌어. 억울해!”

  장다리에게 내 마음을 꺼내 보였다. 하지만 장다리는 꿀만 쭈욱쭈욱 빨아댔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넌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니? 다리만 기다래 가지고.”

  “누가 인정해 주든 안 하든 흡혈귀처럼 하지 않으면 되잖아. 자기 할 일을 잘하면 돼.”

  ‘자기가 할 일을 잘하면 되는 거라고?’

  장다리의 말이 가슴에 쏙 스몄다.

  장다리는 나보다 먼저 날개를 달고 나와서인지 본 게 많았다. 날쌘 파리매나 잠자리에게 잡아먹히는 친구를 보았다고 했다. 또 어떤 친구는 거미줄에 걸려 거미에게 잡아먹혔고, 꼬마쌍살벌이나 날아가는 새가 언제 낚아챌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자신에게 비아냥대는 데도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때, 저쪽에서 알록달록한 날개를 팔랑이며 누군가가 우리 곁으로 날아왔다.

  “호랑나비야.”

  장다리가 알려주었다. 내가 막 반기려는데, 호랑나비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이, 각다귀들! 여기는 내가 맡아 놓은 꽃이야. 좋은 말할 때 딴 데 가서 먹어라.”

  호랑나비는 모습과 달리 말투는 영 딴판이었다.

  “이 꽃들이 다 네 거니? 우리도 꿀을 따야 해.”

  장다리가 따졌다.

  “맞아. 다 내 거야.”

  호랑나비는 긴 대롱 입을 쑥 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꽃이 이렇게 많은데 같이 먹어도 되잖아.”

  나도 지지 않고 거들었다.

  “꽃에 달콤한 꿀이 있다는 건 용케 알아서는. 제발 저리 가라.”

  호랑나비는 있는 대로 심술을 부렸다.

  그때 아이들이 재깔거리며 왔다. 한 아이가 호랑나비를 가리키며 어깨를 달싹거렸다.

  “호랑나비다. 정말 멋져.”

  “긴 대롱으로 꿀을 따는 것 좀 봐. 사진 찍자.”

  아이들은 호랑나비를 찍느라 바빴다. 그러더니 어떤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봐, 왕모기다.”

  나는 여차하면 날아가려고 접었던 날개를 펴고 아이들 눈치를 살폈다.

  “요기 있다간 물릴지 몰라.”

  “그래, 내려가자.”

  나보다 먼저 아이들이 산을 내려갔다.

  “얘들아, 왕모기도 찍어가자. 오늘 곤충 숙제잖아.”

  깡마르고 키가 큰 아이가 달아나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키다리, 왕모기 닮은 니가 찍어.”

  “그러게. 하하하.”

  아이들은 키다리만 남겨 두고 갔다. 키다리는 얼른 사진을 찍고 따라갔다.

  “거봐. 다들 너희를 싫어하잖아. 제발 내 곁에서 사라지라고, 알았냐?”

  기회다 싶은지 호랑나비가 빈정댔다.

  ‘내가 흡혈귀라고? 난 꽃꿀을 좋아하는 각다귀인데……내가 뭘 잘못했지?’

  억울해서 속이 부글부글했다.

  “우리 딴 데로 가자.”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장다리를 재촉했다. 장다리가 앞서서 날아갔다. 그곳은 감자밭이었다.

  “, 신난다. 꽃들이 많아서 맘 놓고 꽃꿀과 즙을 먹을 수 있겠어.”

  감자꽃을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풀렸다. 나는 뭉툭한 입을 감자꽃 가운데로 깊숙이 들이밀어 꿀을 먹었다.

  “참 이상한 녀석들이야. 덩치가 저렇게 큰 데 날개는 두 장뿐이라니. 파리 날개 같잖아. 근데 다리랑 몸통은 왜 저렇게 길쭉해. 주둥이는 모기 같은데, 왕방울만 한 눈은 또 파리 같고. 도대체 파리야, 모기야?”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등은 붉은 바탕에 검은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녀석이 줄기에 붙어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넌 누구냐?”

  “나아? 무당벌레! 냠냠, 요 쪼그만 진딧물을 잡아먹고 살지.”

  무당벌레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뭐어? 기어다니는 저 꼬맹이들을 잡아먹는다고?”

  갑자기 무당벌레가 무서워져서 파르르 날개를 떨었다.

  “넌 뭘 하려고 여기 왔냐?”

  “? 꾸울 따려고. 나안 모기가 아니야. 키가 큰 파리거든.”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말했다.

  “덩치가 그리 큰 것이 수줍어하긴. 좋았어. 나랑 친구하자.”

  제 맘대로 친구 하겠다는 말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장다리가 가까이 날아왔다.

  “누구랑 이야기하니?”

  “으응, 저기 무당벌레가 말을 걸어서.”

  나는 앞발을 들어 무당벌레를 가리켰다.

  “, 왜 내 친구를 괴롭히니?”

  장다리가 다짜고짜로 따졌다.

  “괴롭히다니? 친구 하자고 했을 뿐인데.”

  “, 그래? 오해했어.”

  장다리가 사과했다. 무서웠던 무당벌레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배가 부를 때까지 감자꽃에서 꿀을 핥았다. 그리고 감자밭을 한가롭게 날아다녔다.

  “치익, 치이익…….”

  그때 둥글고 넓적한 하얀 통을 어깨에 멘 아저씨가 감자밭과 붙어있는 파 밭에 나타났다.

  “얘들아, 도망쳐. 농약을 뿌려서 우리를 죽이려고 해.”

  무당벌레가 벌벌 떨며 소리쳤다. 그리고 감자 잎 뒤쪽으로 슬금슬금 꼬리를 감췄다.

  장다리는 벌써 감자밭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도 있는 힘껏 날았다.

  “에이, 나쁜 왕모기 녀석!”

  중얼거리는 아저씨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농약 통의 호수 끝을 내게로 겨누었다. 물방울 같은 것이 내 뒷다리에 살짝 튀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아 어떡해, 뒷다리가 말을 듣지 않네.’

  나도 모르게 감자꽃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어느새 잿빛 땅거미가 감자밭에 드리우고 있었다. 감자밭 너머에 세워진 텐트 앞에 등불이 환하게 빛났다. 모기떼들이 나방들과 뒤섞여 앵앵거리며 빠르게 텐트 쪽으로 몰려갔다.

  “얘들아, 저기 사람들이 있다. 어서 가자.”

  “넌 사람 피를 빨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열심히 날아가냐? 우리 뒤에 따라와라.”

  “한심한 나방들이라니.”

  “쪼끄만 모기들아, 우린 밝은 불을 좋아한단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가야 해.”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따라 날았다. 좁은 틈을 비집고 모기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갔다. 주인아저씨가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아까 내게 농약을 뿌린 아저씨였다. 나는 놀라서 밖으로 나갈 틈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모기가 속삭였다.

  “뭘 그리 허둥대니?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주둥이를 잽싸게 꽂고 피를 먹어. 이렇게 말이야.”

  “, 따가! 엄마, 모기 물렸어요.”

  아저씨 딸이 소리쳤다.

  “엄마, 또 물렸어.”

  딸은 손등을 굵으며 울상을 지었다. 아줌마가 손바닥으로 모기를 내리쳤다.

  “으악!”

  모기는 온몸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그동안 먹었던 피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어서 도망쳐야 해.’

  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텐트 위쪽으로 날았다. 틈새가 보였다.

  “아빠, 저기 왕모기 있어요. 얼른 잡아요.”

  딸이 나를 가리켰다. 파리채를 든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전 사람을 물지 않아요. 제발 살아서 나가게 해주세요.”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아저씨는 파리채를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아팠던 뒷다리에 또 맞았다. 나는 뒷다리 하나를 떼어내고 간신히 텐트를 빠져나왔다.

  텐트의 불이 꺼지자, 사방이 고요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날이 훤히 밝아왔다.

  ‘장다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처음 만났던 곳으로 날아갔다. 없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꿀을 따 먹었다.

  “난 호랑나비를 좀 더 관찰할래.”

  “얘들아, 여기 개미가 기어간다.”

  “사슴풍뎅이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저기 모기, 흡혈귀다!”

  어떤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쟤는 모기가 아니야.”

  다른 아이가 손을 저었다. 키다리라고 놀림을 받던 바로 그 애였다.

  “자꾸 꿀을 따서 열매가 많이 맺히게 해 줘.”

  키다리가 내게 말했다. 눈빛이 부드러웠다. 나는 날개를 쫙 펴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빨대를 더 깊이 꽂았다.

  “쟤는 덩치 큰 애벌레에서 나왔대. 물속 낙엽 같은 걸 먹어서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좋은 애벌레라고 해. 고마워, 각다귀야.”

  키다리가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무리 봐도 모기 같잖아.”

  일행 중 한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나를 살폈다.

  “아니래도. 각다귀는 꿀벌이나 나비처럼 열매를 맺게 해주는 고마운 곤충이야.”

  키다리가 다시 알려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키다리가 뭔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여길 좀 봐라. 꿀벌처럼 꽃가루를 옮겨 줘서 열매를 맺게 해주는 곤충이라고 나왔잖아. 나도 이번에 알았어.”

  “키다리, 다시 봐야겠는걸. 그동안 각다귀가 억울했겠다. 우리가 모기라고 해서.”

  “그러게. 사라져 가는 꿀벌 때문에 걱정했는데, 이로운 곤충이잖아. 이번 숙제는 키다리 걸로 발표하자!”

  키다리의 얼굴이 해맑아졌다.

  아이들은 키다리와 어깨동무하고 떠나갔다.

  ‘더 부지런히 꿀을 따야 해. 난 열매를 맺게 해주는 이로운 곤충이거든!’

  나는 이 꽃 저 꽃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꿀을 땄다. 어느새 장다리가 내게로 날아왔다.

  “뭐 좋은 일 있니?”

  “난 꿀 따는 게 참 좋아.”

  나를 알아봐 준 아이들이 고마워서 꽃 속에 주둥이를 깊숙이 밀었다.

                                                                                                                                         2026 한미문단(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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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산풀쌤 | 작성시간 26.06.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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