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병, 이종근
고현숙
종근은 나무하러 가다가 가현산 중턱에 지게를 내려놓았다. 어지러운 나라를 생각하며 안주머니에 있는 청량도를 움켜쥐었다. 그때 검정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산비탈을 타고 빠르게 내려갔다. 종근이 뒷걸음을 쳤다.
“게 섰거라!”
곧이어 일본군들이 가현산 능선을 타고 달려와 종근 앞에 섰다.
“조센징, 손 들어랏! 도망치는 의병이노 숨겨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 어디에 숨겼느냐?”
종근은 두 손을 든 채 고개를 돌려, 반대쪽에 있는 허산을 가리켰다.
“수상한 자를 보면 신고해랏!”
일본군은 종근을 윽박지르며 우르르 허산 쪽으로 내달렸다.
“알아도 못 가르쳐 준다, 이놈들아. 절대로 안 가르쳐 줘!”
종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분이 가라앉았다. 안주머니 속에서 짧고 예리한 칼을 꺼냈다. 임진왜란 때 의병 할아버지가 쓰던 단도가 반짝였다.
“언젠가는 이 청량도로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테다.”
종근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서슬이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이얍! 얍, 얍!”
꾸준히 쌓은 덕에 무술 실력은 몰라보게 늘었다.
붉게 핀 진달래꽃 무리 뒤에서 누군가 불쑥 나타났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구래리 재령 이씨 종손 아니십니까? 저는 흥신리 신관수올씨다.”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까 일본군에게 쫓기던…….”
“맞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천지에 일본 놈들로 득시글거릴 겁니다. 어떻게든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만 합니다.”
신관수는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맞는 말일세. 나쁜 놈들!”
지난해 8월, 한국군 해산에 반대하여 박성환 참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불같이 일어난 의병들이 곳곳에서 대항했다. 강화 분견소 참교 유명규 의병장은 병사 50여 명과 강화 사람들 600여 명을 이끌고 강화성 갑곶진에서 대대적인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워 이겼다. 해주, 통진 등지에서 또 항전하다가 안타깝게도 일본군에게 잡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고향 하성 김경운 의병장은 경시청 감옥에서 탈출하여 박내병 의진에 가담한 후, 일본군 수비대와 여러 번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또 통진, 고양, 광릉 일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신식 무기를 가진 수많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서는 많은 군수품이 꼭 필요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통진에서 엽전 2,300냥과 군수품을, 고양에서 많은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신관수는 안타까워했다.
종근은 왠지 자꾸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전국 의병들이 이인영 13도 창의군 총대장을 중심으로 양주에 집결했다고 들었네. 자네는 어느 의진에서 활동하는가?”
“저는 정용대 의진에서 주로 군수품을 모으고 있어요. 오늘 통진 수곡리에서 군자금을 모아 조강포에서 동지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보시다시피 일본군에게 쫓기고 있답니다. 힘을 합쳐 꼭 왜놈들을 쫓아내야만 합니다.”
신관수는 결의에 차서 말에 막힘이 없었다.
종근은 직접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혈혈단신이니 맘 놓고 큰일을 하고 있겠네그려.”
“웬 걸요. 다섯 살배기 아들하고 세 살 먹은 딸이 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다들 맘 편히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종근은 종손으로서 문중을 이끌어야 하는 무거운 짐을 탓했다. 하지만 두 손 놓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이 함께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종근은 의병 운동에 함께할 뜻을 내비쳤다.
“대명 나루 주막집 아낙이나 조강 포구 박 선주를 찾으십쇼. 그러면 저와 연락이 닿을 겁니다.”
신관수는 그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종근은 가족들을 부모님 방으로 불렀다.
“지금 곳곳에서 의병들과 강제로 해산당한 한국군들이 일본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을 모아 일본군을 몰아내야 하는데, 저는 종손이라는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젊은 의병을 만났는데,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저도 할아버지처럼 이 한목숨 나라에 바치려 합니다.”
“아범아, 넌 우리 문중의 종손이고, 우리 집의 대들보야. 모두 너만 바라보고 있는데,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느냐?”
어머니의 눈망울에 눈물이 어룽어룽 고였다.
종근은 걱정이 가득한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집안은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선 애국충정의 집안입니다. 아버님께서도 제게 인의 예절과 충효를 가르치셨고요. 무술도 틈틈이 익혔으니 이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나라가 있고야 문중도 있고, 다들 평안히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들은 강직하여 불의를 두고 보지 않는 종근의 성격을 잘 알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근은 부인 심 씨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의논 없이 혼자 결정해서 미안하오. 이 나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소. 앞으로 힘든 일들이 많이 있을 거요. 용서하시오. 내 집안일에 소홀하더라도 뒷일을 잘해 내리라 믿소.”
“왜 당신 마음을 모르겠어요.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과 장렬하게 전사하신 의병장의 자손이잖아요. 또 의령 곽재우 의병대장은 붉은 옷을 입고 의병들과 신출귀몰 나타나 일본군을 물리쳤다잖아요. 암요, 나라를 구하겠다고 관직도 없이 의롭게 죽어간 의병님들의 뜻을 이어가야지요. 친정 오라버니께서도 학교를 세워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 계신걸요. 위험한 건 알지만,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부인은 종근에게 몸 건강하기를 바란다며 힘주어 말했다.
종근은 중절모자에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대명 나루로 향했다. 주막집 앞 평상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배를 타시게요?”
주모가 다가와 묻자, 종근은 주모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정용대 의병장을 만나고 싶소.”
“별 웃기는 양반을 다 보겠네.”
주모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지 몰라 주변을 살피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이 주고받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종근이 국밥값을 내고 돌아서는데 주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보소, 내일 또 오소.”
다음 날, 종근은 대명 나루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대명 나루는 한산했다. 밖을 내다보던 주모가 종근을 보고 반색을 했다.
“어서 오세요. 안 오시면 어쩌나 했어요.”
이때 재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종근의 옆자리에 앉으며 소리쳤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주쇼.”
턱수염에 안경을 썼지만, 체구와 힘 있는 목소리는 영락없는 신관수였다.
빠르게 국밥을 먹고 난 신관수가 종근에게 눈짓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종근이 서둘러 국밥값을 치르고 따라나섰다. 갑곶나루 쪽 산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는 신관수를 쫓아갔다. 산자락을 지나 소나무 숲에서 둘은 마주했다.
“갑곶나루에서 배를 타십쇼. 조강포에서 박 선주를 찾으면 누군가가 아재를 모실 겁니다.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또 뵙겠습니다.”
신관수는 문수산 자락 월곶 포내마을 논길로 빠르게 걸어갔다.
봇짐을 짊어진 남자 몇몇이 강화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고 있었다. 종근은 강둑을 따라 갑곶나루로 뛰어서 조강 포구로 향하는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애기봉 아래 조강 포구에서 눈이 부리부리하고 날렵하게 생긴 앳된 젊은이를 만났다. 젊은 뱃사공은 하성의 포수 강상봉이었다. 강 포수는 풍덕군(개풍군) 조강리로 종근을 데리고 갔다.
“탕 타당 탕.”
산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강 포수는 나룻배 밑바닥을 들춰 장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앞장서서 뛰어갔다. 빼곡한 소나무 숲 위쪽에서 의병들이 산기슭 일본 순사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음,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군.”
강 포수도 소나무 뒤에서 일본 순사를 향해 총을 쏘았다.
“으아악!”
일본 순사들이 강 포수의 총을 맞고 하나둘 쓰러졌다. 종근은 자신도 모르게 청량도를 꺼내 앞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강 포수가 급히 막았다.
“멈춰! 위험해요.”
짧은 단도로 총에 맞선다는 게 어리석다는 것쯤은 종근도 알고 있었다. 종근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일본 순사들이 저 멀리 물러가고 있었다. 대승이었다. 의병들은 얼싸안고 크게 기뻐했다.
강 포수는 종근을 13도 창의 좌군장인 정용대 의병장에게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시오. 총은 쏠 줄 아시오?”
“배우면 잘할 것이오.”
“좋소. 총 쏘는 법을 틈틈이 배우면서 군자금과 군수물자를 모으는 데 힘을 보태주시오.”
종근은 좀 더 일찍 의병 활동에 나서지 못한 걸 후회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거라지. 나라를 위해 그동안 못했던 일을 꼭 해내고야 말 테다.’
군도와 양총으로 무장한 종근은 열여덟 명의 동지와 함께 고향 마을 통진 대패면 심 진사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양릉면과 산빈면 동장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바람 앞에 등불이외다. 힘을 모아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만 하오. 총을 사들일 군자금이 꼭 필요하오. 여러분의 힘이 이 나라를 구할 것이오.”
종근의 눈에서 굳건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잘 아시겠소만 지금 농민들은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아마 군자금으로 내놓기 어려울 것이오.”
“군자금을 강제로 모금한다면 날강도 일본 놈들과 다를 게 뭐요.”
동장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나라가 바로 서야 다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잘 아실 게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데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하오. 어렵더라도 함께 이 고통을 참아냅시다. 우리 의병들이 일본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오.”
다음 날, 종근과 동지들은 군도와 양총, 그리고 실탄을 거둬들였다.
나흘째 되던 날은 대패면 동장들이 심진사 집으로 군자금을 가지고 왔다는 연락이 왔다. 군자금은 1만 5천 냥으로 아주 큰 돈이었다. 신관수도 군자금 50원을 거두었다. 동지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참 대단한 분들이야.”
의병들은 이구동성으로 군자금 모금을 칭찬했다.
종근은 총 쏘기와 무술 훈련에 온 힘을 기울이며 다음 활동을 계획했다.
동지들은 각자 고향에서 집안일을 하며 일본군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펴 의병장에게 연락하게 했다.
나라 밖에서 제1차 국내 진공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다.
일제의 감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군자금 조달을 풍족히 하면 항일 투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종근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고향 후배들과 마음을 맞추고 일본 헌병과 순사들의 동정을 수시로 파악하여 보고했다. 종근은 한강 하구 서북부 지역을 오가며 무장 투쟁을 계속 전개했다.
며칠 뒤, 잠복 중이던 일본 경찰에 의해 열여덟 혈기 왕성한 강 포수가 고향 마을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 아직 나라를 구하지 못했는데……훌륭한 동지를 잃었구나! 군자금 모금에 더 힘을 내야 해.’
종근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우러렀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종근은 잠시 다녀올 생각으로 집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종근은 집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꼼짝 마라.”
집 곳곳에 숨어 있던 일본 경찰들이 장총을 겨누며 종근을 둘러쌌다. 종근이 청량도를 휘둘러 위협하며 담장을 다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이놈들, 여기가 뉘 땅이더냐? 감히 남의 땅에 와서 주인행세를 하느냐!”
담 밖에서도 일본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종근은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했으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주모자가 누구냐? 바른대로 말하면 풀어주겠다.”
밧줄로 꽁꽁 묶여 바닥에 꿇어앉은 종근에게 일본 헌병 대장이 말했다.
“네 놈들의 흉악한 계략 때문에 위태로워진 내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느니라.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더냐? 어서 네 나라로 돌아가지 못할까!”
종근은 온 힘을 다해 부르짖었다.
“조센징, 우리 대일본제국은 동양의 평화를 위해 나서는 거다. 그걸 모르지는 않겠지? 누구와 모의했는지 불어랏!”
헌병 대장이 험하게 종근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동양의 평화? 지나가는 개가 웃겠구나. 지금껏 그 어떤 침략자들에게도 굴복한 적이 없는 우리 대한이다. 원혼이 되어서라도 우리나라를 꼭 지킬 것이야. 남의 나라 국모를 무참히 살해한 죄,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대한제국 군대를 맘대로 해산한 죄, 외교권을 빼앗은 죄……. 이 모든 죄를 인정하고 네 나라로 돌아가, 어서! 날강도 놈들아, 나 하나 죽는다고 우리의 뜻이 사라질 줄 아느냐? 너희들이 물러갈 때까지 우리는 밀물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게다!”
“뭣이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불 인두로 지져라.”
“아 아아악 아악…….”
종근은 모진 고문에 기력을 잃어갔다. 조강포에서 승리를 거두고 환호하던 동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종근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2026 한미문단(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