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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外經)이란?

작성자사랑 은총 평화|작성시간08.08.09|조회수194 목록 댓글 0

 

 

성경의 외경과 관련하여

7편으로 나누어 올려드립니다.

이 글의 원문은 분도회 왜관수도원 에서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성경을 성서로 표기됨을 양해하시기 바라며...

 

우리가 알면서도 자세히 모르는 부분으로 생각이 되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외경(外經)이란?

 

 

우리의 공동번역 성서에 [제 2경전]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아진 성서들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모 마리아의 부모를 요아킴과 안나라고 하여 7월 26일에 축일로 지내며, 또 성모 승천 대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는데 교회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어디에 근거해서 지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있는 [외경](Apocripha)문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경을 지칭하는 희랍어 [아포크리포스](Apokriphos)란 단어는 원래 [숨겨진] [알려지지 않은]이란 뜻으로 대중이 아닌 특수층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을 지칭했다. 이미 유대교 안에는 구약성서의 정경외에 다른 문헌들이 있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도 사도나 그 제자들의 이름을 붙여 권위를 부여한 많은 문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저자 역시 사도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Apokriphos]란 단어는 [허위]란 뜻으로 변하여 경멸조의 표현이 되었다. 그 후 교회는 사도적 기원을 두고 있으며,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서 전례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엄격히 검토하였고,4세기 말에 비로소 성서의 정경목록(正經目錄)을 확정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경목록에 들지 못한 신약성서 계통의 문헌들을 통칭하여 [외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용어상의 차이가 있는데 두 교회 모두 27권의 신약성서를 인정하지만 구약성서에서 우리가 [제 2경전]이라고 하는 7권을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외경]이라 하면서 성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1. 외경문학의 발생동기


신약성서는 예수의 유년 및 청소년 시절, 마리아의 생애, 사도들의 전교행적에 관하여 충분히 전해주고 있지 않다. 사실 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에 관계된 이야기 다음 12살에 성전에서 설교하신 이야기만 언급되어 있고 갑자기 30세의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 나타나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면 복음서에 기술되어 있지 않은 공백기간에 예수님은 어떻게 생활하셨을까? 또 사도행전은 주로 베드로와 바오로의 선교 행적을 이야기 할 뿐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행적은 어떠했었는가? 초대 교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때로는 신자들의 성화와 교육을 위해 상상과 추리를 동원하여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각색된 것들이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유치한 우화의 성격을 갖는 것들도 있었다. 또 때로는 이단자들 편에서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사도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조작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2세기부터 4세기까지 수많은 외경문학들이 생겨났으며, 이때문에 교회는 신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정전(正典)을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외경 문헌들을 읽어보면 그 허위성과 유치함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토마 복음] 2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6살된 예수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개울가에서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며 놀고있었는데, 마침 안식일이었다. 동네 어른이 이를 보고 양아버지인 요셉에게 가서 "예수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장난을 하고있다"고 일러바치자 요셉이 와서 야단을 쳤다. 예수는 손바닥을 치면서 진흙 참새들을 보고 "날아가라"하고 말하자 참새들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2. 정전(正典)확정의 과정


외경문학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성서의 정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교회안에 확정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세기 중엽까지는 어떤 책이 신약성서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도들이 살아있던 초기에는 구약성서와 주님의 어록집 그리고 사도들의 구두 가르침이 권위를 갖고있었다. 그 후 주님의 단편적인 어록집들이 복음서로 집필되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서간 형식으로 기록되면서 교회 안에서 권위있게 읽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27권의 신약성서가 모두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 같은 권위로 읽혀진것은 아니다.


복음서 4권, 사도행전, 바오로의 13개 서간, 요한의 서간들은 모든 교회에서 처음부터 인정을 받은 반면, 히브리 서간, 요한 묵시록, 베드로 서간들, 야고보 서간, 유다 서간등은 지역교회마다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라, 어떤 교회에서는 [디다케]나 [헤르마스의 목자]같은 문헌도 성서처럼 읽혀지다가 4세기 말에야 27권의 신약성서가 동방,서방교회 안에서 확정되었다.


한편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의 정전성을 증언하는 중요한 문헌이 있는데 히에라뽈리스의 주교였던 빠삐아스가 남긴 [단편](斷片)이다. 빠삐아스는 스미르나의 뽈리까르뽀와 함께 요한 사도의 제자였는데, 130년 경에 5권으로 된 [주님의 말씀해설]을 함께 저술했지만 상실되었고 에우세비오의 [교회사]3권 39장에 일부만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빠삐아스의 단편]이라 불리운다.


마르코는 주님을 따라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사람은 아니었지만,베드로 사도의 통역자로서 기회있을 때마다 베드로로부터 전해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순서대로 잘 정리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신 오류는 범하지 않고 정확하게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마태오는 주님의 말씀들을 히브리어로 모아 정리하였고, 이 말씀들에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 증언에 의하면 마태오 복음서는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는데 빠삐아스 시대에는 희랍어로 번역되어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4. 복음 외경


우리는 성서 외경문학이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신약성서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으로 분류되듯이 외경문학도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복음서 외경들의 이름만 열거하더라도 매우 많다. {히브리인들의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에비온인들의 복음}, {베드로의 복음}, {니고데모의 복음}, {야고보의 원(元) 복음}, {토마 복음}, {예수의 유년기 아랍어 복음}, {목수 요셉의 이야기}, {필립보 복음}, {마티아 복음}, {바르나바 복음}, 그리고 이단 계통의 복음서로서 {안드레아 복음}, {유다 이스가리옷 복음}, {타대오 복음} 그리고 영지주의 주창자들의 이름을 직접 사용한 복음으로서 {바실리데 복음}, {체린토 복음}, {발렌티노 복음}, {아펠레 복음} 등이 있다. 영지주의를 포함한 이단 계통의 복음서들은 자기들의 이단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외 다른 복음서들은 4개의 정전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들, 특히 예수의 어린시절과 부활후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복음서들의 특징을 다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운 일이므로 여기에 몇가지 흥미있는 부분들을 소개하겠다.


2세기에 저술된 {야고버 원(元) 복음}은 마리아의 유년시절,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예수의 탄생 및 소년시절 등을 전해주는 복음이다. 24장으로 구성된 이 복음은 원래 세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이 하나로 편집된 것이다. 제1부(1-16장)는 마리아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마리아가 두살때에 이미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였다고 하며, 또한 마리아의 부모 안나와 요아킴에 대해서도 전한다. 제2부(7-21장)는 {요셉의 비밀}이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들의 조배에 대해, 제3부(22-24장)는 무죄한 어린이들과 즈가리아의 순교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 복음의 저자는 유대인계 그리스도인으로 성모 마리아의 평생동정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 복음}은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소년 예수가 행한 여러가지 기적들을 우화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의 양(養) 아버지 요셉의 생애와 죽음에 관해 전하는 {목수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수께서 요셉의 임종을 도우시면서 그의 공덕을 치하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에 교회는 요셉 성인을 임종자의 주보로 정하고 있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부활 후의 행적들에 관한 외경 복음들도 많다. {베드로 복음}은 예수의 수난 죽음 장례 및 부활 후의 여러가지 기적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27장으로 되어 있는 {니고데모 복음}도 예수의 재판 십자가 처형 장례 그리고 죽으신 후에 {고성소에 내려가심}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제1-11장은 로마총독 빌라도와 연관시켜 서술하고 있으므로 {빌라도 행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본시오 빌라도가 끌라우디오 황제에게 예수의 처형소식에 관해 보고한 편지가 흥미롭다. 예수에 대한 사형선고는 순전히 유다인들의 종교적인 이유였으며 처형 후에 유다인들의 요청에 따라 예수의 무덤을 병사들로 하여금 단단히 지키도록 지시하였지만 삼일째 되는 날 예수가 부활하였으며, 유다인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병사들에게 돈을 주어 입을 막으려 했지만 소문이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끝으로 {마리아 승천(昇天)기}라는 문헌이 있는데 아마도 예수의 유년기 복음에 속해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들이 마리아의 임종이 임박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예루살렘에 모인 가운데 마리아는 임종을 맞이했는데, 죽은 지 3일만에 천사들에 의해 하늘에 올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문헌은 성모신심 특히 성모승천 대축일의 바탕이 되었고 교황 비오12세는 1950년 11월 1일에 성모승천을 신앙신조로 선포하였다.

서간의 외경

 

사도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 외경은 다른 부류만큼 다양하지 않다. 신약성서 정전에 이미 사도 바오로의 대부분의 서간들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유다 사도들의 서간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서간 외경으로는 바오로 사도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들이 많은데 {라오디케이아 서간}, {알렉산드리아 서간}, {고린토 3서} 그리고 바오로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에게 보낸 6편의 {세네카 서간}이 있지만 모두 후대에 쓰여진 것이다. 한편 우리의 주목을 끄는 서간 외경은 {바르나바 서간}과 {사도들의 서간}이다.


{바르나바 서간}은 바오로의 선교 동반자였던 바르나바의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1세기 전후의 작품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도 교부}의 문헌으로 취급되고 있다. 서간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호교론적 신학 논술이다. 21항으로 구성된 이 서간은 제1부(1-17장)에서 참다운 영지(gnosis)를 강조하면서 구약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와 연관시켜 영적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제2부(18-21)에서는 윤리적인 실천을 권고하고 있는데 두가지 길 즉,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말하는 {디다케}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한편 {사도들의 서간}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승천에 관해 서술하고 있어 서간이라기 보다 묵시록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사실 예수의 말씀들 중에는 세상의 종말과 육신의 부활 공심판 종말의 표징 단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서간에 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관한 대목은 당시의 교회 관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줄 뿐만 아니라 전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외경문학의 하나인 빌라도보고서를 올려봅니다. 예수님을 유대민족들에게 내어 줄수 밖에 없던 나약한 빌라도 예수님께로부터 '네 죄보다 저들의 죄가 더 크다'고 이야기를 들은 어찌보면 불쌍한 빌라도... 우리도 어쩌면 유대민족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그 나약하던 빌라도의 모습은 아닐까요?

미리 양해를 구하지만 글이 많이 길고 눈이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고 읽어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문학입니다.

성주간이 되어 성삼일을 앞두고 있기에 묵상하는 의미에서 빌라도의 보고서를 올려봅니다.

 

 

빌라도 보고서


이 보고서(報告書)는 「메시아」시대에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서,

현재「터어키」의 성「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

50권으로 되어있는 이 원고는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 씌어졌는데,

각권이 2×4피트로 되어 있는 것의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로마」사가(史家) 「빌레루스·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명(原名)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

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이 사가(史家)는 19세였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가(史家) 「프리시안」과 「타시투스」의 글을 빌면,

그는 「캄파니아」출신으로 가이사와는 친한 벗이었고

16년동안 로마군을 지휘하였으며,

그 후 로마로 돌아가 「로마史」집필을 끝낸 후

집정관(執政官)의 직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사가(史家)「발레루스」 자신이 유다지방에서 만난

나사렛 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 지 못한 과일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유대인의 여론은

양분되었다.

빈민층은 「로마」의 권력으로부터 구원해 낼

그들의 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지도층 계급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하였으며

등뒤 에서는 그를 저주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애굽의 마술사라고 빈정거렸다고 사가(史家)

「발레루스」는 기록하였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 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빌라도」의 보고서(報告書)


「로마」의 황제, 「디베료·가이사」각하에게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모든 다른 신(神)들과는

조화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발레리우스·플라슈스」를 계승하여 유대 총독이 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임한 이래로 제 생활은 불안과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직위를 인수하고

큰 연회(宴會)를 베풀 것을 명하고

「갈릴리」의 영주(領主)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의 부하직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저와 제 가 속하고 있는 정부 전체에 대한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며칠 후 대제사장이 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거동(擧動)은 엄숙(嚴肅)하였으나 외식(外飾)에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종교가,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로마」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라든지 먹는 것이라든지 마시는 것을

금지한다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은 신앙심이 깊은 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안색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략(政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순간부터 피 정복자는 정복자를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로마」인들에게 이 나라의 제사장들을 요주의(要注意)할 것을

경고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벼슬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들의 어머니라도 배신할 자들입니다.


제가 통치하는 모든 도시 가운데

「예루살렘」은 가장 다스리기 힘든 도시라고 여겨집니다.

백성들은 매우 거칠어서, 저 자신 순간순간마다 폭동(暴動) 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폭동을 진압할 만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지휘 하에 한 명의

백부장 (百夫長)과 그가 거느린 군대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기의 통치지역을 방어할 만한 충분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 온 「시리아」의 사령관(司令官)에게

증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우리 제국의 확장을 꾀하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우리 정부 전체의

붕괴(崩壞)를 초래케 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 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능한한, 대중들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제사장들이 폭도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지도

모르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될 수 있는 데로 백성들의 마음과 입장을 탐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제 귀에 들려온 여러 가지 소문들 중에 특별히 제 주의를 집중시킨

사건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청년이 「갈릴리」지방에 나타나,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을 고귀한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목적하는 바가 민중을 선동하여

「로마」제국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제 근심은 곧 걷히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예수는 유대인보다는 오히려 「로마」인에게

더 친근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저는 큰 군중이 모여 있는 「실로」라는 곳을 지나다가,

군중에 둘러싸인 젊은이가 나무에 기대어 선 채로 군중을 향하여

조용하게 연설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라고 누군가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연설을 듣고 있는 군중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어서 저는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30세 가량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평온한 얼굴을

본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저 검은 턱수염과

황갈색의 안색을 가진 무리들과를 어떻게 대조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온 것이 예수에게 방해가 되게 하지 않으려고

저는 계속 걸었으나 제 부관(副官)에게는 군중 속에 들어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제 부관의 이름은 「만류스」로서 그는 「카타린」을 잡으려고

「에투루리아」에 주둔한 적이 있는 공작대장의 손자입니다.

「만류스」는 「유대」지방에 오랫동안 거주한 고로 「히브리」

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충성하여 저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총독청에 들어서자 저는 먼저 와 있는 「만류스」를 발견하였으며

그는 「실로」에서 예수가 한 말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읽어본 어떤 철학자의 작품에서도

예수의 말에 비교될 만한 것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적인 유대인 중 한 사람이

「가이사」에게 세(稅)를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자유를 그 「나사렛」젊은이에게 허용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지혜로운 말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를 체포하여 「본디오」로 추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로마」정부가 사람을 다루어 왔던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상반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보호의 손길을 그 에게 뻗쳐 주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행동하였고 말하였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연설하거나 또 제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관청의

제재(制裁)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예수에게 허용된 무제한의 자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유대인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예수가 후자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그 「나사렛」젊은이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정략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는 그들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또 한번은 부자가 많은 헌금을 내고

뽐내는 것을 보고 한탄하며, 가난한 자의 한푼이 하나님의

목전(目前)에서는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예수의 오만한 언동(言動)에 대한 항의가 날마다 총독청에 줄을

이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로 불리우는 자들 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예수에 대한 진정서가 「가이사」에게 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처사는 원로인에게 재가를 받은 것이었으며,

「파르티안」전쟁이 끝나면 저에게 증원군을 보내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 니다.

폭동을 진압하기에는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도 허약한 고로,

저는 힘없이 물러섬으로써 총독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성(城)의 평온을 되찾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글을 써 보내어 총독청에서 한번 만날 것을

청하였습니다.

예수가 왔습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西班牙)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의 유약한 감정은 모르는 사람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나사렛」사람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는 저의 접견 실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다리는 쇳덩이로 된 손으로 대리석 바닥에

붙여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으며,

그 나사렛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서 있는데도

저는 마치 형사범(刑事犯)처럼 사지(四肢)를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제 앞에까지 다가와 서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왔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신(神)들과 영웅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화가들이

아직 그려내지 못한 유형(類型)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 었습니다.


"예수여," 하고 드디어 저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사렛」예수여, 지난 3년동안 나는 그대에게 연설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였소.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소.

그대의 말은 현인(賢人)의 말이오. 나는 그대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에는 그대의 설교는 다른 철학자들의 그것을 능가하며

단순하고도 장엄한 것 같습 니다.


이에 대해서는 황제께서도 알고 계시며, 그를 허락한 것을

스스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설교가 강력하고도 원한 깊은

적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 드려야겠소.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오.

「소크라테스」에게도 대적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증오의 희생물이 되었다오.


그대의 경우는 그대의 설교가 그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것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으로 그들이 나를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소.

그들은 「로마」정부가 그들에게 허용한 작은 권리마저도

나와 그대가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다면서

고소까지 하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서,

이제부터는 그대가 설교할 때에 좀더 신중하고 온화한 말로하며,

그들을 고려하여 대적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리석은 군중들을 충동질하여 그대를 대적하지 않도록 하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의 도구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오."


그 「나사렛」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의 군주여, 그대의 말은 참된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격류(激流)를 명하여 산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계곡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버릴 것입니다.

그 급류는 자연과 창조주의 법칙에 순종한다고

그대에게 답변할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 급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계십 니다.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사론」의 장미가 피기 전에

정의의 피가 엎질러질 것입니다."


"당신의 피는 엎질러지지 않을 것이오."하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로마」정부에 의하여 허용된 자유를 남용하는

거칠고 오만한 모든 「바리새」인보다 더욱 값진 것이오.

그들은 「가이사」에 대한 음모를 꾸며, 「가이사」는 폭군으로서

그들의 멸망을 도모하고 있다는 말로 무식한 자들을 충동하여

황제의 관대하심을 공포로 조작시키고 있소.

오만무례하고 철면피같은 인간들이오!

그들은 악한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의 가죽을 쓰는

「티베르」강의 여우임을 그들 자신은 모르고 있소.

나의 총독 관저는 밤낮을 물문하고

그대에게 도피처로 제공될 것이오."


예수는 관심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으며, 근엄하고 숭엄(崇嚴)한

미소를 띄면서 말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면 그 때는 땅 위나 땅 아래 어느 곳에도 인자를 위한

도피처는 없을 것입니다. 의(義)의 도피처는 저기에 있습니다."

라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 니다.


"선지자들의 책에 기록된 말씀은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여,"하고 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의 요청을 명(命)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나의 통치하에 있는 지방의 안전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소.

당신은 설교할 때 좀 더 온건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나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떠할 지를 그대도 잘 알 것이오.

와 주어서 고맙소. 잘 가시오."


"땅의 군주여,"하고 예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가이사·아구스도」가 「로마」세계에 평화를 주던 바로

그 날에 태어났습니다.

핍박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핍박을 예상하고 있으며,

나에게 길을 보여주신 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그 핍박을 잘 감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세상 적인 사려분별(思慮分別)과

지각을 삼가십시오.

성막에 희생 제물을 잡아놓는 것은

그대의 권력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한 후 그는 투명한 영혼처럼 접견실 휘장 뒤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 압감에 해방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은 그 당시 「갈릴리」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에게 편지를 써서 그 「나사렛」사람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헤롯」이 그의 성격대로 하였다면 그는 예수를 당장 잡아

사형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왕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의원에 대한 그의 영향이 무시당할지도 모르는 행동을 범하는데

주저하였으며, 또 저처럼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관리로서 한 유대인 때문에 겁을 집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전에 「헤롯」은 총독청으로 저를 방문하였으며 얼마간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떠날 즈음에 「나사렛」사람에 대한

제 견해가 어떠한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예수는 가끔 위대한 민족이 드물게 배출해 내는

위대한 철인 중의 한사람으로 그의 교훈은 결코

처벌받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로마」정부는 그 자신의 행동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그에게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음흉하게 웃어보이면서 마지못해 하는 투로

인사하고는 떠났습니다.


유대인의 큰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백성의 여론은 유월절 의식(儀式)에서 항상 감정을 표명하는

일반 백성의 환희에 편승하 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그 「나사렛」사람의 죽음을 시끄럽게 요구하는

소란한 군중들로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파견한 밀사(密使)는 성전의 금전이 군중들을 동원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 왔습니다.

위험은 점점 더 가중되었으며 한 「로마」의 백부장은 멸시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저는 「시리아」 의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어 100명의 보병과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기병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저는 반역하는 성(城)한 가운 데서 얼마 되지도 않는

정병(精兵)들과 함께 외톨박이가 된 것 같았으며

폭동을 진압하기에 너무 약한 탓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붙들고 있었으며 선동적인 폭도들은

총독청에 대하여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그들의 상전(上典)의

명령만 믿고 있 었으며, 제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말해 보라고

눈짓을 했을 때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 서!"라고

고래고래 고함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때는 세력 있는 세 당이 예수를 대전하기 위해 일심동체가 되었습니다.

첫째로 「헤롯」당과 「사두게」파로서 그들의 선동적인 행동은

두 가지의 동기-즉 그들은 「나사렛」사람을 미워하였으며

「로마」의 속박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에서 나온 것 같았습니다.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기(旗)를 가지고

거룩한 성에 들어왔다는 것 때문에 저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어떤 치명적인 죄를 범하였다고 해도 신성모독죄 보다는

덜 흉악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불만의 씨가 그들의 가슴속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의 은금(銀金)의 일부를 공공건물을 건축하는데

사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제안은 무시당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공공연하게 예수의 대적임을 자처하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부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자들로서

그 「나사렛」사람이 지난 3년 동안 그가 가는 곳마다

「바리새」인들 을 혹독하게 질책한 것에 대하여 끔찍한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힘으로 행동하기에는 너무도 두렵고 약하다는 것을 알고

「헤롯」당과 「사두게」파와의 불화를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세 당 외에도 저는 언제나 소요에 끼어들기 잘 하며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데는 한몫을 잘 담당하는 분별없고

야비한 군중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예수는 대제사장 앞으로 끌려와 사형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중재(仲裁)를 부탁해 온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유죄판결을 확인한 후 처형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예수는 「갈릴리」사람이요

그 사건은 「헤롯」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거기로 보내라고 명(命)을 내렸습니다.


교활한 그 영주는 겸양을 표시하는 척 하면서

「가이사」의 대리자인 저의 명령을 거절하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제 손에 위 탁하였습니다.

곧 저의 관저는 포위된 성보(城保)의 형세를 띄었고 매순간마다

불만에 가득찬 터질 듯한 군중들은 그 수가 증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나사렛」산지(山地)에서 몰려온

군중들로 넘쳤으며 전 유대인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장래의 운명을 내다본다는 「까울」지방의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습니다.

아내는 제 발치에 엎드려 몸을 맡기고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그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어제밤, 저는 환상 중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물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기드론」골짜 기는 피로 물들어 붉게 흐르고 있었고

「가이사」의 조상(彫像)은 대량학살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중간 기둥들은 퇴락하였고 태양은 무덤 속의 제녀(齊女)처럼

슬픔 속에 면사포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오! 「빌라도」여, 악(惡)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아내인 제 애원을 듣지 않으신다면

「로마」중의원이 받을 저주가 두렵고 「가이사」가 당할 괴로움이

두렵습니다."


이 때는 이미 몰려온 군중들의 무게로 층층대의 대리석 계단이

삐걱거렸습니다.

그들은 그 「나사렛」사람을 다시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재판하는 장소로 나아가서

엄격한 어조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나사렛」사람의 죽음이요."하고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죄 때문인가?"


"그는 참람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황폐를 예언하였으며 그 자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유대인의 왕, 「메시야」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로마」의 법은," 하고 저는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죄는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냉혹한 폭도들이 소리질렀습니다.

분노한 폭도들의 고함소리는 관저의 기초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군중 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침착하게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 「나사렛」사람이었습니다.

무자비한 핍박자들로부터 예수를 보호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헛수고로 돌아가고 저는 마침내 그 순간 예수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즉 이러한 명절에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으므로 저는 예수를 자유롭게 놓아 소위

그들이 일컫는 속죄 염소로 삼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하여서는 하루를 온전히 금식하지 않고서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그들 자신의 법을 들어,

앞뒤가 맞지 않는 그들의 주장의 모순성을 지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죄 선고는 「산헤드린」의 동의를 얻어

의장의 서명을 받아야 하며 또 어떠한 범죄자일지라도

형의 확정 선고를 받은 당일에는 그 형의 집행을 할 수 없으며

다음 날에 집행한다 할지라도

집행 전에 「산헤드린」이 전 경과를 검토해 보아야 하며

또 그들의 법에 따라서 한 사람이 기(旗)를 가지고

재판정 문에 서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말을 타고 좀 떨어진 곳에서

범 죄자의 이름과 죄명과 증인의 이름을 소리 높이 외쳐,

혹시 누가 그를 변호할 사람이 있을 지의 여부를 알아봐야 하며,

형 집행 도중 범인이 세번 뒤를 돌아보아서 새로운 사실로 자신에게

유리한 변호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실을 말해 줌으로써

그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기를 바랐으나

여전히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생각에서 예수를 채찍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군중의 분노를 증가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야를 가져오라고 하여 소란스러운 군중 앞에서

제 손을 씻음으로써

「나사렛」예수를 죽음에 내어 주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만

그것도 허사였습니다.

이 철면피 같은 군중들이 갈구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시민폭동에서 노도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한 폭동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의 모든 유령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과

같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걸어다닌다기 보다는 갑자기 땅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 같았으며

총독 청사의 입구에서부터 「시온」산까지 이르는 군중들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소용돌이처럼 보였고,

「판노니아」의 공회소의 소동이나 폭동에서도 결코

들어볼 수 없는 가지가지의 해괴한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습니다.


겨울날 황혼 무렵처럼 날이 어두워지자,

저 위대한 「줄리어스·시저」죽었을 때처럼 적막하였습니다.

마치 3월 보름날 같았습니다.

모반을 일삼는 이 성을 위임받은 통치자로서,

저는 접견실 기둥에 기대어 서서 그 죄없는

「나사렛」 젊은이를 처형하려고

끌고 다니는 어두컴컴한 지옥의 악마 같은

저들의 무서운 계략을 꺾을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이 황량하게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 주민들을 「게모니카」로 가는

장례(葬禮)문을 통하여 모두 토하여 냈습니다.


황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저의 위병들은 기병과 백부장이 가세한 가운데 무력에 의한

질서유지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홀로 남았으며,

그때 잠깐동안 지나간 그 순간은 마치

저 자신이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결을 타고 「골고다」에서 들려오는 큰 부르짖음 소리는

일찌기 인간의 귀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고통의 소리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구름이 성전 꼭대기 위에 드리워졌으며 마치 면사포를

가리운 것처럼 「예루살렘」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나타난 징조들은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디오누시오」가 "창조주가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우주가 떨어져 나가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다"라고 크게 소리질렀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가공할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동안

애굽에는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으며,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으며 미신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은 거의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안디옥」사람인 나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빌도살」이라는

한 유대인은 이 지진소동이 있은 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놀라서 죽었는지 아니면 슬픔으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그 「나사렛」사람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날 밤 첫 시간이 되기 전에 저는 외투를 걸치고 성안으로 들어가

「골고다」로 향하는 문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 제물은 죽어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아직도 흥분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침울하여,

말없이 절망에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사실은 그들을 공포와 양심의 가책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저는 또 저 의 적은 「로마」병정의 일단이 슬픔에 잠긴 채

지나가는 것을 보았으며 기수(旗手)는 슬픔의 표시로서

독수리표 깃발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또 병정의 일부는 무엇인가 혼잣말을 하면서 지나갔지만

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 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神)들의 뜻을 좇는 「로마」인들을

당황케 하는 기적들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한 무리 의 남녀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되돌아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어떤 새로운 경이(驚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갈보리」언덕을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허탈한 마음과 슬픔에 차서 총독청에 돌아왔습니다.

그 「나사렛」사람의 피가 아직 얼룩져 있는 계단을 오르다가

저는 문득 한 늙은이가 무엇을 탄원하는 듯한 태도로 서있는 것과

그 노인 뒤에서 몇 명의 「로마」사람들이 눈물을 지으면서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내 발앞에 몸을 굽히고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늙은 노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으며,

비록 외국사람이기는 하지만, 함께 있는 「로마」사람과 같이

제 마음은 슬 픔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제가 본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격한 감정을 가져본 체험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반역하여 판 사람들이나 그렇게도 반대 증언을 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그의 피 값을 우리에게 돌리시오."


하고 큰소리쳤던 무리들은 비겁한 똥개같이 쑥 들어가버려,

그들의 이빨을 식초로 씻은 듯 시침을 떼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은 대로 예수가 죽은 후에 부활하리라는

그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이 가르침은 많은 군중 가운데서

실현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영감님," 저는 감정을 억제하고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 시며 바라는 요구가 무엇입니까?"


"저는 「아리마데」 요셉이라고 합니다."하고 노인은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나사렛」예수를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그것을 허락해 달라고 당신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당신 소원대로 하십시오."하고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의 부관 「만류스」에게 명하여

병정 몇 사람을 대동하고 가서 매장하는 것을 감독하고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며칠 후 그의 무덤은 비어 있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각처로 다니면서 예수가 자신이 말한 대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고 전파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보다

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황제께서도 「헤롯」을 시켜 조사하여 보시면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묘실에 예수를 매장하였습니다.

그가 예수의 부활을 예상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묘실을 준비하려던 것인지는 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가 매장된 다음날 제사장 한 사람이 총독청으로 와서

제게 말하기를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 숨긴 후

그가 생전에 예언한 대로 살아난 것처럼 꾸미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제사장을 친위대장인 「말커스」에게 보내어 무덤을

지키기에 충분한 수대로 병정을 대리고 가서 배치하라고 한 후,

만일 무슨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들의 책임이지 「로마」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큰 흥분이 일어났으며

저는 더 큰 근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슬람」이라는 사람을 보내어 자초지종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는 제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상할 수 있도록

자세히 말하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덤 위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여자들이 그들의 풍속 대로 예수에게 발라드릴

향유를 가지고 왔는가 하고 추측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여자들이 파수군을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러한 여러 생각이 그의 마음에 스쳐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온 주위가 환하고 밝게 비취고 거기에 이미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의(壽衣)를 입은 채로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충만하여

환호하는 듯 하였으며 동시에 그 주위와 위로부터

그가 들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왔으며

온 누리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가득차고 넘친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 듣 는 동안 땅은 기고 헤엄치는 것 같았고

그는 토할 것 같고 힘이 없어 일어설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대지는 그 아래에서 헤 엄치는 듯하여 그의 감각은 마비되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현기증이 잠에 서 깨어나

너무 갑자기 일어남으로 흔히 있는 것 같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잠들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임무 소행 중에 잠을 잤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아

죽는 경우와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병정들은 서로 교대로 잠을 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광경은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약 한 시간쯤 되지 않았나

짐작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정신이 돌아온 후 그 무덤에 가보았느냐고 물었으나

못 갔다고 대답하였고 그 이유는 교체병이 오자마자

그들이 숙소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당하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제사장은 밤에 일어난 사건이 지진이 었으며

파수군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한 사람의 제자도 보지 못하였으며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으며 누군가의 말을 듣고

후에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같이 대화한 제사장들의

예수에 대한 견해가 어떠하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대답하 기를 제사장이 더러는 예수는 남자도 사람도 아니며

「마리아」의 아들도 아닐 뿐더러 「베들레헴」의 처녀의 몸에서

탄생된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였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만일 유대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따르는 자들이나 배척자들에

의하여 알려지고 증거된 것처럼 그 모든 사실이

그 사람의 생애와 조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던 분입니다.

만일 모든 유대인들이 증거 하는 것처럼 그가 했다고 하는

많은 일들을 그가 할 수 있었다면 그를 대적하게 했던

그의 모든 주장은 사실일 수 밖에 없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 립니다.


그는 범죄함으로, 어떤 법을 어김으로써

또 누구를 그릇되게 함으로써 비난을 싼 적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 그 를 지지하였던 사람 뿐 아니라

그를 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 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여,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안티파터」가 제게 관한

여러 가지 가혹한 평을 하였다고 들었으므로

황제께서 사건의 전모를 아신 후 제가 취한 행동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내려 주시도록 자세히 쓰느라 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각하의 건승(健勝)을 빕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빌라도



 

빌라도에 대하여


빌라도는 로마 황제 「디베료·가이사」치하에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아그립바」 1세가 말하는 빌라도는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고

굽힐 줄 모르는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규탄하였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에는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부터

원한으로 대립되었다.

그는 예수를 재판하기 전에 그의 총독직을 위협하는 민중봉기를

두 번이나 당했 다.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즉각 폭동을 일으 켰다.

빌라도는 5일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두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하라고 민중봉기 를 일으켰다.


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피에 굶주린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아내의 청원은 그로 하여금 예수를 석방시키도록

용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지위 와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사가「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는 이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사도행전의 외경


사도행전 외경도 복음 외경과 비슷한 요소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성서에 명기되지 않은 사도들의 생애 행적 전교 특히,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야화(野話)적인 성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외경들은 열교(裂敎)적 기원 즉 자기들의 종파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된 것들이 많지만, 후일에 이 작품들은 정통교회의 작가들에 의해서 신자들의 교육과 신심을 위해 수정 내지 보완되었기 때문에 이단과 정통의 성격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작업은 초대교회가 지녔던 사도들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외경들 중에 어떤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록으로 학문적 입증자료가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도들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 이러한 외경문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도행전 외경들도 다양하다. 사도 베드로에 관한 것으로 {베드로의 행전} { 두가지 형태의 {베드로의 순교록}이 있으며, 사도 바오로에 관한 것으로는 {바오로행전} {바오로와 데끌라 행전} {바오로의 순교록}이 있고 {베드로와 바오로 행전} {요한 행전} {안드레아 행전} 여러가지 형태의 {안드레아 순교록} {토마 행전} {타대오 행전} 등이 있다. 단편만 전해오는 것으로는 {마태오 행전} {필립보 행전} {바르톨로메오 행전}이 있다. 그리고 사도들의 제자 내지 선교 동반자였던 {바르나바 행전} {디모테오 행전} {마르코 행전}도 있다.


열거한 행전들중에 몇가지 흥미있는 내용을 소개하겠다. 180-19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 행전}은 41장으로된 방대한 작품으로써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선교하던 과정에 마술사 시몬(사도행전 8,18-25 참조)과 대결하여 그의 허위와 가면을 폭로하는 이야기, 유명한 {쿼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Domine, quo vadis)이야기, 그리고 베드로가 순교할 때에 감히 주님처럼 바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으니 거꾸로 달려 죽게 해달라고 자청한 이야기 등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오로에 관한 행전 중에서 {바오로와 데끌라 행전}은 전기체적 소설 형식을 띠고 있는데, 이꼬니움 출신의 소녀 데끌라는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서 약혼을 파기하고 바오로를 따라 나선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그의 약혼자 타미리스가 총독에 고발하여 데끌라는 화형의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으로 벗어난 다음 바오로를 만나 서원을 발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성실한 삶을 마쳤다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문헌에서는 인물의 신체적인 묘사가 없는 것이 상례인데 제3장에 묘사되어 있는 바오로에 관한 묘사는 후대에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암시적인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작은 키에 대머리, 다리는 약간 구부러졌으나 건장한 모습이다. 곧은 눈썹에 오똑한 코, 한마디로 품위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사람같고 때로는 천사같은 그런 모습이다} {바오로의 순교록}에서는 바오로가 동쯕을 향해서 손을 펴들고 기도하고 있을 때에 포졸들이 그의 목을 베니 붉은 피가 아니라 우유빛의 액체가 군인들의 옷에 튀었으며 이를 본 군인들은 놀랍고 이상한 마음으로 바오로의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고 전한다. {토마 행전}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는 인도에까지 가서 전교하였으며 인도의 왕 군다포루스를 개종시킨 후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타대오 행전}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에데싸의 왕 압가르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고질적인 병을 치유해 달라는 편지를 예수께 보냈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곳에 가지는 못하고 후에 적당한 기회에 제자 한사람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부활하신 후에 사도 토마스가 성신의 영감을 받아 타대오를 그곳에 보내 왕의 병을 고쳐주었으며 그래서 에데싸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묵시록의 외경


묵시록 외경으로는 [베드로 묵시록} {바오로 묵시록} {토마 묵시록} 성서정전에 들어있는 것과는 다른 {요한 묵시록} [동정녀 묵시록} 등이 있다. 이 외경류의 묵시록은 엄격한 의미에서 묵시록으로 분류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묵시와 환시들을 다루고 있다. 이 묵시록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베드로 묵시록}인데, 125년과 15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한때는 신약성서의 정전목록에 들기도 하였다. 이 묵시록에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혹독한 형벌에 대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특별히 지옥의 형벌에 관해서는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나는 다른쪽에 소름끼치도록 슬픈 모습을 보았다. 벌받는 곳이었다. 벌받는 이들과 그들을 고문하는 천사들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곳의 공기조차 검은 빛이었다. 그들중에 어떤 이들은 혀에 매달려 있었은데 이들은 의로움의 길을 저주했던 자들이며 그들 아래에 있는 뜨거운 화염이 그들을 괴롭혔다} 이와같이 벌받는 자들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들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묵시록은 중세의 문학 특히 단테의 {신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바오로의 환시}라고도 불리우는 {바오로 묵시록}은 {베드로 묵시록}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사람마다 호수(護守) 천사가 있는데, 이들은 사람들이 낮에 행한 모든 일을 자정에 하느님께 가서 보고드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선한 이는 천국문을 지키는 미카엘 대천사에게 인도되고, 악한 이는 지옥문을 지키는 사탄 즉 탈타루스에게 인도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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