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료

[스크랩] 이스라엘의 가정

작성자사랑 은총 평화|작성시간13.05.31|조회수60 목록 댓글 0
이스라엘의 가정


A. 이스라엘 가정의 구조와 구성

1. 이스라엘 가정의 구조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부모와 한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핵가족(nuclear)제도와는 달리 3대 내지 4대가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extended)제도였다. 이들 대가족에는 삼촌들과 사촌들은 물론 종들도 가족에 포함이 되었다. 대가족제도 하에서의 가장은 한 가정의 ‘가장’(father)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여러 가족들의 우두머리인 경우에는 ‘족장’(sheikh)이 된다. 대가족의 가장이나 족장은 그 가족 식구들 전체의 생사문제에 대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사건(창 22:9-12)이나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 그녀를 죽이려 했던 일(창 38:24-26) 등은 당시에 가장의 권한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그 후 모세 시대에 이르러 가장이나 족장의 권한을 제한 시키는 율법이 제정되었다. 자신의 아들을 제단에 희생물로 바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레 18:21). 불가피한 경우, 가장이 자신의 딸을 파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외국인에게 팔거나 창녀로 파는 일은 금지시켰다 (출 21:7; 레 19:29).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삭, 야곱은 일종의 족장들(sheikhs)이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기른 318명의 전사들을 데리고 있었다 (창 14:14). 요셉과 마리아가 12살 된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도 그와 같은 대가족들과 함께 동행하였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가 동행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고 예수를 ‘친족과 아는 자’(눅 2:44) 중에서 찾게 되었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만드신 사회의 기본 단위이다 (창 2:18-24). 남자와 여자 곧 남편과 아내는 가족의 핵심적 기본 단위이다. 창세기 2:18에 의하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 이 양자의 관계는 인격적 동등성과 더불어 기능적 분담 원칙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부부를 통하여 자녀들이 탄생된다. 부모와 자녀들은 가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2.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대가족제도에서의 가정은 가장에 의하여 지배되는 작은 왕국과 같았다. 가장은 부인, 자녀들, 손자들, 종들 등 가족 내의 모든 사람을 다스렸다. 히브리어로 남편인 '바알'은 ‘주인’이라는 뜻과 더불어 ‘다스리다, 지배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녀들은 이러한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출 20:12). 만일 가장의 권위를 거부하고 이것이 가족 공동체 전체에게 위험이 된다면, 그 아들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신 21:18-21).
가장권은 가장의 죽음과 더불어 장자에게 넘어갔다. 아브라함처럼, 본실의 아들이 없이 첩에 의하여 아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실의 아들이 태어나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장자권은 본실의 아들에게 넘어간다.
이스라엘의 가장은 가족 내의 영적 지도도 담당하였다. 그는 가정 내의 제사장이었다 (창 12:8; 욥 1:5). 그는 유월절 등과 같은 중요한 명절에 각종 종교적 의식을 진행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출 12:3). 또한 아버지는 아내와 더불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 22:6) 고 되어 있다. 또한 부모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만 했다 (신 6:7-9). 아버지는 필요한 경우 자녀들에게 육체적 체벌도 가하였다 (엡 6:4).

성경시대 가장이 가족들의 필요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그러한 사람은 동네 사람들에게 소외되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잠 6:6-11). 그런 점에서 바울은 자기 친족 곧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하였다 (딤전 5:8).  

3. 어머니

여성의 지위는 언제나 남성에 예속적이었다. 여자들은 손님들이 방문하였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했다 (창 18:9). 식사에서도 남자들을 먼저 먹게 하였고, 남자가 나귀를 타고 갈 때에 여자는 걸어갔다. 롯이 그의 아내와 더불어 소돔을 빠져 나올 때에도 롯의 아내는 뒤에 따라갔다 (창 19:26). 바울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 (고전 11:3)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으며,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딤전 2:13-14)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통은, 여자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도 여자는 사랑 받지 못한다거나 존경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잠 31장). 아내가 자신의 임무를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그 집안이 잘 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다 (잠 12:4). 성실한 아내의 역할은 남편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특히 남편이 유력한 지도자적 위치에 있으려면 부인이 현명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잠 31:23).
특히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이러한 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성경은 여자가 남편이나 가족에게 성실치 못하면 사형을 당했다 (레 20:10). 반면에 남자가 아내에게 불성실하여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여자는 남자의 가족에 속하는 식구가 되었다 (신 22:13-30; 22절을 28절과 29절과 비교할 것).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였기 때문에 여자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딤전 2:15). 남편과 더불어 아내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겨졌다 (출 20:12; 신 6:7). 이러한 일을 통하여 여자는 남자와 거의 동등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신약시대에도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종속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남편들이 아내들을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므로 남편들도 아내들에게 예속적임을 보여주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하였다 (신 22:28-29).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임을 보여주었다. 유대인 랍비들도 하나님이 아담에게 오직 한 아내만을 만들어 주셨음을 지적했다. 바울 역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딤전 3:2).
아내들은 자녀를 훈련시키는 일에 남편과 함께 책임을 졌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동안 주로 어머니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자녀들이 나이가 들면, 아들의 경우는 아버지를 따라 들에 나가서 일을 배우게 되거나 다른 직장을 갖게 된다. 과년한 딸에게 현모양처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책임은 다시 아내에게 돌아간다.  

4. 자녀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하여 계속 살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녀들을 큰 축복으로 여겼다 (신 28:4; 시 128:3). 당시 사람들은 자녀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복을 받은 것으로 알았다. 시편 127편 5절에서는 자녀들은 전통에 가득한 화살로 비유하였다.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으로 알았다. 자녀가 없는 것은 곧 가문의 단절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라헬은 야곱에게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겠다고 까지 하였다 (30: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자식이 없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다 (삼상 1:16). 엘리사벳은 자신이 요한을 잉태한 것을 알게 되자 하나님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애주셨다고 고백하였다 (눅 1:24).
이스라엘에서는 자녀들 중에서 아들을 더 선호하였다. 아들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가족 안에 남아 있는 자가 되며, 또한 실제적으로 아내와 아들들을 얻게 됨으로 가족을 증대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반면에 딸들은 결혼 전에 가족을 위하여 일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었으며, 결혼할 때에는 일종의 보상책으로 신부 값을 지불하였다.
성경시대에 부모들이 늙어지면 그 아들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며 적당한 매장지를 준비해야 했다. 이러한 아들의 역할이 아들 선호사항을 낳았으며,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아들들을 두고 싶어하였다 (시 127:4-5). 아들들 중에서 특히 장남은 여러 가지 특혜를 누렸다. 그는 가정 내에서 두 번째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일생동안 자신을 비롯한 동생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지냈다 (창 37: 21, 29). 장남은 아버지의 유산 중 두 몫을 받았다 (신 21:17; 대하 21:2-3).


B. 이스라엘의 집의 구조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안정된 농업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곳 도시들과 성읍들을 점령하면서 거주의 형태도 크게 변화되어 고정된 집이 이동생활의 천막을 대신하였다.
초기의 집들은 햇볕으로 말린 흙벽돌로 지었다.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하게 되었고, 자연석의 돌이나 자갈로 지은 집들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철 도구로 돌들을 다듬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네모난 돌들이 건축에 사용되었다. 갈릴리 지방에서는 검정색을 띈 현무암이 건축에 사용되었고, 해안지방에서는 갈색의 사암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흰색을 띈 석회암이 집 건축에 사용되었다.

1. 단칸방 집

(1) 집의 구조

1) 단칸방 집
이스라엘에서는 집을 짓는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로 여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집을 짓고 나서는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신 20:5). 일반인들의 거주지는 방 하나로 이루어진 단칸방 집이었다. 집의 넓이는 별로 크지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3 평방 미터 정도였다.

2) 벽
집의 벽은 두터운 진흙 벽돌이나 자연석으로 만들었는데, 벽에는 식량이나 부엌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다. 주로 흙 벽돌 혹은 진흙으로 틈새를 메운 돌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둑이 집안으로 들어오기가 쉬웠다. 그래서 도둑을 “밤에 집을 뚫는 자”(욥 24:16)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고 하였다 (마 6:19; 24:43). 돌로 지은 벽은 돌 사이의 틈새가 있어서 뱀이 쉽게 기어들 수가 있었다. 그만큼 벽은 허술하였다. 선지자 아모스는 준비 없이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을 “집에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림 같다”(암 5:19)고 하였다.

3) 창문
창문은 대개 하나가 있었는데, 작도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때로 이런 창문에 안에서 밖을 내어다 볼 수 있도록 나무 격자를 만들어 끼웠다 (잠 7:6). 겨울철에는 이 나무 격자를 가죽이나 다른 형태의 커텐으로 덮었다.                      


4)문                                                                                          
문은 대체로 그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집의 문은 바깥 빛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래서 농촌지역의 단칸방 집은 아침에 해가 뜨면서 문을 열어 놓은 것을 하루 종일 닫지 않았다. 해가 지면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도시 집들의 문은 그렇지 않았다. 주께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집의 문은 도시 집들의 문이다 (계 3:20). 문에는 돌쩌귀가 달려 있었다. 잠언에서는 게으른 사람을 돌쩌귀를 따라 도는 문에 비유하여 침상에서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잠 26:14).

5) 방바닥

집안의 바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즉 문 가까이는 땅을 평평하게 다져 놓았고, 방의 안쪽은 돌로 조금 높게 단처럼 만들었다. 방 안쪽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거나 모여 앉아 쉬거나 잠을 자는 곳이다. 빛이 부족하고 땅으로 되어 있는 집 바닥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일을 쉽지 않았다 (눅 15:8). 난방과 요리를 위하여 불을 피우는 일은 낮은 방바닥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비롯한 짐승들을 이곳 낮은 바닥에서 키우며 재우기도 하였다.

6) 지붕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지붕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다목적 지붕의 용도는 성경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에서 지붕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되었다. 그 용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여름철 건조한 계절에는 잠자리로 사용됨; (b) 곳간 혹은 곡식을 말리는 장소로 사용됨(수 2:6); (c) 공지사항을 알리는 장소로 사용됨 (마 10:27); (d) 기도의 장로서 사용됨 (행 10:9); (e) 위급한 경우 도피로로 사용됨 (마 24:17; 막 13:15; 눅 17:31)
                                                                        
(2) 등불

집안을 밝히는 데에는 올리브기름 등잔이 사용되었다. 초기의 등잔은 질그릇으로 된 열려있는 접시 모양이었다. 등잔의 한쪽은 심지가 놓일 수 있도록 접혀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등잔은 심지를 세우는 일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 윗 부분이 덮여 있고 양쪽으로 구멍이 두 개있는 등잔이 바벨론 지방에서 도입되었다. 두 개의 구멍 중 하나는 심지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름을 채우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등잔은 심지를 세우는 관이 막혀있어 기름을 쏟지 않은 채 장소를 옮길 수 있었다. 기름이 잦아들게 되면 심지에서 끄름이 나게 되는데, 이때에 기름통에서 기름을 보충해야 한다 (마 25:8). 기원전 5세기 경 헬라에서 손잡이가 있고 여러 장식이 새겨진 등잔이 수입되었다. 또한 여러 개의 심지를 세울 수 있도록 구멍이 많은 등잔도 있었다. 이러한 등잔은 필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등을 높이 달아 놓을수록 집안을 잘 밝힐 수가 있었다. 그래서 등잔은 벽에 돌출 되어있는 돌 위에 올려놓거나 천장에 끈을 달아 매달아 두기도 하였다. 등잔대를 만들어 그 위에 등잔을 올려놓기도 하였는데, 가장 단순한 등잔대는 흙으로 된 방바닥에 단단한 나무 가지를 꼽아 놓는 것이었다. 등잔대가 없을 때에는 됫박 같은 용기를 엎어놓고 그 위에 등잔을 올려놓거나 아니면 방바닥에 등잔을 놓기도 하였다. 이런 당시 생활상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는”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마 5:15) 라고 하였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사 42:3)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등잔에 기름이 다 타버리면 심지에서 심한 연기가 나온다. 이때에 사람들은 기름을 보충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타버린 심지를 갈아 끼우게 된다. 여호와의 종은 기름이 없이 타버리는 심지와 같은 약한 자들을 버리지 않고 심지를 갈아주고 기름을 보충해 주는 분이다.

(3) 땔감

유목민의 천막생활과 같이 단칸방 집에 살았던 일반인들은 일기가 허락하는 한 밖에서 음식을 요리하였다. 그러나 겨울철이 되면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화덕을 사용하였다. 농촌에서는 짐승들의 배설물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성서시대 널리 사용되었던 땔감이었다 (겔 4:15). 사람들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왕상 17:10). 땔감이 많이 부족하였던 이스라엘에서는 마른풀이나 시들은 꽃도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마 6:30). 이스라엘에 흔한 가시덤불은 중요한 땔감이었다 (삼하 23:7; 시 118:12; 전 7:6; 사 9:19; 10:17). 아마도 숯불은 고급 연료이었을 것이다 (요 18:18; 21:9).  

2. 두 칸 방 이상의 집

(1) 집의 구조

두 칸 이상의 방을 갖고 있는 집을 지을 때에는 방을 나란히 짓지 않고 두 방 사이를 방 하나 정도 넓이로 떼어서 지었다. 방과 방 사이의 공간은 앞이 트인 안뜰이 되었다. 세 개의 방이 있는 집의 경우에는 안뜰을 삼면에서 싸고 있는 모양을 하였다. 세 칸 이상의 방을 지을 때에는 옆으로 잇대어 짓기 때문에 안뜰은 더욱 넓어졌다. 이런 안뜰은 나무나 꽃을 심어 가꾸기도 하였다. 실제로 성전 안뜰에는 나무가 심겨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집 뜰에 심긴 나무에 의인을 비유하였다 (시 52:8; 92:13)

(2) 안뜰의 용도

안뜰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제적인 활동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안뜰의 저수조

이스라엘집의 안뜰에는 빗물을 받아 두는 저수조가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런 저수조를 ‘우물’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빗물을 받아 두는 물통에 불과하다. 주로 바윗돌을 깍아 만들고, 내부를 물이 새지 않도록 방수 처리한다. 예레미야는 이런 저수조를 ‘웅덩이’라고 표현하였다 (렘 2:13). 건조한 여름철이 끝날 때 즈음에는 저수조의 물이 모두 마르게 되어있는데, 이런 마른 저수조는 숨어 있기에 적합한 곳이다 (삼하 17:18). 물통의 입구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뚜껑을 덮고 그 위에 곡식단을 놓으면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는 은신처가 될 수 있다.    

2) 날씨가 추울 때는 불을 피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요 18:18)                    

3) 목욕 장소

다윗이 내려다보는 중에 밧세바가 목욕하였던 것은 밧세바의 안뜰이었다. 비록 밧세바는 자신의 집안에 있었지만 보다 높은 궁전의 지붕 위에 있었던 다윗은 안뜰에서 목욕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삼하 11:2).

4) 식사의 장소

오늘날도 옛날과 같이 안뜰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이 되었을 때 그 집의 안뜰에서 식사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눅 7:36-50).

(3) 문

문은 집 앞면 중앙에 위치하였다. 이 문은 교묘하게 만들어져서 길가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큰집의 경우에는 대문이 있었고 작은 문이 달려있었다. 작은 문은 평소에 쓰이는 것이고 큰문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베드로가 두드린 대문은 큰문에 달린 작은 출입문이었을 것이다 (행 12:13).
큰문이 있는 집에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나 하인이 있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장소도 이런 대문이 있었던 곳이다 (마 26:71; 막 14:68). 문지기는 집을 방문한 손님의 신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데 신분을 확인하는 방법은 주로 방문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행 12:13-14; 계 3:20).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늘날의 것과 같이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장정이 어깨에 멜 정도로 큰 열쇠가 사용되었다 (사 22;22). 열쇠는 보통 나무로 만들지만 쇠로 만든 것도 있다. 자물쇠는 대문의 안쪽에 달려 있는데, 주인은 밖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문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 구멍으로 팔을 집어넣은 다음 열쇠를 끼워 열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만나러 오는 모습을 겞だ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아 5:4) 라고 하였다.

3. 이스라엘 집과 지붕의 중요성

(1) 일반 주택의 구조와 지붕

신명기 22:8에 의하면, 새로 집을 지을 때 지붕에 난간을 만들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에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난간이 없는 지붕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게 되면 그 죽은 사람의 피가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왜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권 속에서 지붕은 사람의 접근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지붕은 형태와 용도에서 오늘날과는 전혀 달랐다. 과연 사람들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난간이 필요했던 당시의 집 구조와 지붕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시대 일반 보통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주택은 방 하나로 된 단칸 집이었다. 당시 생활은 주로 집 밖에서 이루어지고 집에서는 단지 저녁에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는 휴식지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한 용도의 집에 대하여 당시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외부를 치장하는 일도 없었다. 집안의 바닥은 땅을 골라 다진 정도였고,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은 진흙에 석회와 자갈을 섞어 바닥을 만들기도 하였다. 로마시대에 이르러서는 호화스러운 모자이크 바닥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장식 바닥은 부유층에 국한되었다. 집의 벽을 만드는 데에는 진흙을 햇볕에 말린 흙 벽돌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욥기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을 “흙 집”(욥 4:19)이라고 하였다. 때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사암으로 벽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사암은 겉모양이 거칠어 이음새가 넓고 벽면이 거칠었다.
단칸방으로 이루어진 보통 집의 지붕은 맨 밑바닥에 벽과 벽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놓고 그 위로 갈대나 가시덤불을 깔았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흙이나 진흙으로 덮었으며, 마지막으로 모래나 자갈을 뿌린 다음 굴림대로 평평하게 다져 비가 새는 것을 막았다. 이 굴림대는 지붕 위에 그대로 두고 있다가 비가 내리고 나면 다시 그것을 굴려 지붕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지붕 위에는 겨울철 비가 내리면서 잡초들이 자라게 된다. 그러나 이런 풀들은 햇빛이 조그만 쬐어도 금방 말라버리게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온을 미워하는 자를 자라기 전에 마르는 지붕의 풀에 비유하고 있다 (시 129:6). 지붕을 아무리 단단하게 다져 놓았다 하더라도 비가 많이 내리면 빗물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잠언에서는 다투는 아내를 집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에 비유하였다 (잠 19:13; 27:15).  

(2) 지붕이 사용되는 용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오늘날도 지붕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다목적 지붕의 용도는 성경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에서 지붕이 사용되는 용도는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살펴 볼 수가 있겠다.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지붕에는 사람들의 접근이 잦았고, 그런 지붕에 안전을 위하여 난간을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될 것이다.

1) 잠자리로 사용되는 지붕

비가 내리는 겨울철에는 날씨가 춥고 비가 내림으로 지붕에서의 잠자리는 불가능하지만 고온 건조한 여름철 동안 지붕은 좋은 잠자리를 제공한다. 특히 습기가 적기 때문에 시원하고 쾌적한 저녁과 아침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 사무엘과 지붕에서 담화를 나누었던 사울은 이곳 지붕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이 있다 (삼상 9:25-26)

2) 곳간으로 사용되는 지붕

이스라엘의 지붕은 통풍이 잘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기 때문에 곡식이나 과일을 익히거나 말리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라합은 자신의 집 지붕에 벌려 놓았던 삼대 속에 여리고를 살피러 온 이스라엘 정탐군들을 숨겨 주었다 (수 2:6).

3) 공지사항을 알리는 장소로서의 지붕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 공지사항이 있을 경우 전달 책임을 맡은 사람은 그 마을에서 제일 높은 지붕에 올라가 큰소리로 그 내용을 알렸다. 때로는 나팔을 불어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공지사항은 주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나절에 있었다. 이러한 관습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고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 10:27) 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서는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하였다.

4) 기도의 장로서 사용되는 지붕

지붕이 기도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구약시대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바냐 선지자는 “지붕에서 일월성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멸절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습 1:5). 베드로가 환상을 본 것도 제 육시 기도를 위하여 올라갔던 지붕에서였다 (행 10:9). 지붕이 기도의 장소로 선호되었던 것은, 마치 산 위가 예배의 장소로 선호되었던 것과 같이, 지붕은 곧 그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5) 위급한 경우 도피로로 사용된 지붕

성경시대 집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이어 지어졌기 때문에 지붕과 지붕을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예루살렘과 같이 인구가 조밀한 도시지역에서는 집과 집을 이어 연결되는 ‘지붕길’이 있었다. 맨 마지막 집에는 밑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음으로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통행할 수가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마 24:17; 막 13:15; 눅 17:31)고 하셨을 때 ‘지붕길’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3) 다락방

여유가 없는 서민들은 지붕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때로는 이곳에 천막 혹은 움막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지붕 위에 항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락방을 짓기도 하였다. 다락방은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휴식처가 되었고, 종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명상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는 그를 접대하는 장소가 되었다. 주로 여름철에 사용되는 다락방이기 때문에 지붕 위의 다락방을 ‘여름방’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다락방은 밖으로 통하는 통로 계단이 있기 때문에 집안 사람들에게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고 드나 들 수가 있었다.

수넴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위하여 담 위에 작은 방을 지었는데, 이것이 지붕에 지은 다락방이다. 이 방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 등의 기본적인 가구가 마련되었다 (왕하 4:10).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갖은 곳도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매년 절기 때마다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순례객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러한 다락방을 많이 이용하였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던 다락방은 그 후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기도의 장소가 되었다 (행 1:13).

(4)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 (막 2:4)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온 네 사람은, 예수가 계신 그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다. 여기에서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당시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갈대 혹은 나무 가지 위에 진흙을 바르고 모래나 자갈을 덮은 당시의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간단했을 뿐만이 아니라 원상대로 복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일은 집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지붕 위에 있는 곡식이나 물건을 내려놓기 위하여 지붕을 뜯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붕을 뜯어내는 일은 예수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에게 큰 방해가 되었을 것이고 또한 몸이 불편한 병자를 그렇게 달아 내리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마가복음 2장에서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만든 것은 집의 본 지붕이 아니라 비상 통로로 사용하는 지붕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집안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고, 다른 하나는 집 밖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후자의 경우는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노출되어 있었지만, 전자의 경우는 비상시를 위한 계단으로서 평상시에는 본 지붕처럼 덮어두었다. 이들 네 사람이 뜯어낸 지붕은 집안으로 통하는 비상용 통로로서의 지붕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지붕을 벗겨내는 일은 쉬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성경스케치선교회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