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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감상[국외작가]

[스크랩] 사실주의와 고흐

작성자딸국질|작성시간06.04.23|조회수142 목록 댓글 0

1830년에서  1860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문학과 회화에 사실주의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실제하는 현실을 문학과 미술 작품의 주제로 삼는 새로운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사실주의는 실증주의 , 사회주의, 자연과학및 기술의 발달과 함께 나타났다.

회화에서 사실주의는 역사적 신화적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시의 미적 기준에 대항해 생겨났다.

그래서 바르비종 화파는 사실적인 풍경을 그렸으며, 쿠르베,밀레 같은 화가들은 노동좌와 농민등 평범한 사람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들은 전통 주의자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하지만 반 고흐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의 소재는 주로 농민들의 삶이었고 그가 가장 존경한 화가는 밀레였다.

 

 

 

고흐의 고향 흐로트쥔데르트와 유년기 시절

1800년대 말 네델란드의 내륙지방은 몇세기 동안 해안도시에서 누려왔던 특징들인 문화적관심, 활기, 관용적분위기, 무역개방 등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이처럼 작고 조용한 내륙지방의 시골 마을에서 반 고흐는 태어났다.

반고흐에게는 그가 태어나기 1년전인 그러니까 1852년 3월30일에 태어난 형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형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였고, 그로부터 만 1년후 같은날 차남인 반고흐가 태어났다.

형의 생일과 같은날 태어난 차남, 이 우연한 날짜의 일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아들에 대한 부모의 집착 때문이었는지 그의 부모는 죽은 장남의 이름 빈센트 반고흐를 그대로 차남에게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 우연한 사실이 반 고흐에게는 평생을 따라 다니는 불운의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1857년5월1일 세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테오이다.

 반고흐는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신념이 매우 깊었으나 훗날 종교에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반고흐가 미술에 열정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친척들과 관련이 깊다.

미술상인이었던 삼촌들과 헤이그 화파의 거장이었던 외사촌 안톤 모베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흐로트쥔데르트에 있는 기숙 학교에 다녔지만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충단하고 일을 시작해야 했다.

 

 

 

 

 

13세의 고흐- 1866년 흐로트쥔데르트 근처 틸뷔르흐에서 찍은 사진으로 반 고흐는 그때 13살의 학생이었다.

몇년후  그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공부를 그만 두었다.


 

 

 

18세의 고흐, 1871년에 찍은 사진이다. 반 고흐는 2년전부터 헤이그의 한 화랑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미술관을 방문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릴수 있었다.

 

 

 

 

 

테오 반 고흐 - 고흐보다 4살어린 테오는 1889년 요한나 봉거와 결혼하고 1890년 아들을 낳아 반 고흐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빈센트라고 했다.
테오는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6새월뒤에 1891년 1월25일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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