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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예문
(1개)------------------------------------------------------------------------------------------------------------
국어사전에 훈고학을 찾으면 위처럼 나옵니다. 한학 즉, 한(漢)대의 학문이 훈고학이라는 거죠.
25사에서 한과 한쌍을 이루는 끼워팔기 짝퉁왕조 당에서도 훈고학은 유행했다고 하네요.
훈고학이 대체 무슨 학문일까요? 중.고등학교 사회시간, 세계사 시간, 윤리시간,철학시간에
내내 훈고학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도 도대체가 훈고학(訓誥學)이라는 학문의 정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본인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으므로, 많은 분들도 저와 같지 않을까 하는,
더불어 모로쇠의 심정으로 이제 훈고학에 대한 썰을 풀어 볼까 합니다.
25史의 각 왕조마다 유행하는 학문이 다르다는 것이 퍽 의심의 냄새가 납니다.
송.원의 성리학이니, 명의 양명학이니, 청의 고증학이니 전부가 학은 커녕 싸는 배설도 못될만큼 경직된
감옥안의 자유와도 같은 화초바둑풍의 논쟁없는 학문이랄까요.
그래도 한.당(漢.唐) 이라는 두 왕조의 시대에 걸쳐, 혹은 한(페르시.인도) 당(티벳.이슬람)이라는
두 개의 지역에 걸쳐 유행한 훈고학은 25史의 기초토대가 한과 당인 만큼, 날조사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학문이라 우기는 내질러 쌈(ture=xure=學)이 아닌가 합니다. 훈고학은(訓誥) 훈(訓)을
일러주는(誥) 학문입니다.
언어학의 기본은 소리(音韻)을 다루는 것인데, 한족(漢族)과 한자(漢字)의 토대를 뿌리내린 25史 최초의 통일제국 한(漢)이
자신들만이 계승해온 소리를 통해 직접적인 의미를 통각(通覺)하지 않고, 간접적인 이미지의 상상을 통한 훈(訓)을 통해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한(漢) 당(唐)대에 사용했던 언어인 한자(漢字)가 사실은 그들이 늘상 사용했던 입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한과 당은 시기적으로도 고대국가가 아니며, 지역적으로도 현 중국대륙을 통일한 왕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페르시아와 중앙아가 한(漢)이요, 티벳(tiviet=끊어 읽어 大唐)이 당(唐=slam)이 되는 것입니다.
한과 당시대에만 파미르 이서의 지역을 가느다란 천산남로를 통해 통치하는 걸로 나오는 까닭은 한과 당이라는 지역이
원래 중앙아의 지역이름인데, 그 지명을 가지고 동아시아다가 카피하여 통일왕조를 만들다 보니, 그런 요상한 왼쪽에 혹이
붙은 혹부리 영감의 지도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당의 시대엔 그들의 동시대의 패자 고구려(高麗=周)가 두루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으로 한자(漢字)의 원래 이름이었을 전 세계의 만국공용어 주자(周字)를 이용하여 그들 지역에서 사용하던
그들 부족의 언어를 연구한 것인 훈고(訓誥)학이라고 봅니다. 고대 고구려의 중앙정부는 전 세계의 그 문화를 두루 미치는 주(周)로
불리워졌고, 근대 고려의 중앙정부는 그 문명이 현저히 개명되고 세련되어 명(明)이라 불린 것입니다.
세계사의 통일제국은 고대의 고려인(高句麗) 주(周)의 천년제국과,
근대의 고려인(朝鮮) 명(明)의 천년제국으로 사실상 정리될 것입니다.
훈고학은 고대의 세계제국인 고구려의 중앙공용어인 주어(周語)를 빌어 자신들의 지역의 부족어인
한.당(漢.唐)어를 연구한 것을 뿐입니다. 그 연구를 토대로 당운(唐韻)이라는 것이 정리될 수 있었으며,
제가 볼땐 훈고학을 통해 당운이 정리된 것은 그들 말대로 고구려 시기인 고대가 아니라, 길게 잡아봐야
18세기 후반이라고 봅니다. 백과사전의 편찬사업인 사고전서의 콩고물을 줏어먹은 결과라고나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훈고학은 요렇듯 짧은 역사와 얄팍한 깊이를 가지고 있으나, 고려인들과 그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법 큰 연구가 있어서 그들만의 역사의식의 각성을 이룬 것이 큰 성과라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훈고학이라는 번역사업을 통해서 천려일득이라는 말이 있듯이, 원숭이들도 백번 중얼거리면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는 공자의 말은 어쩌면, 원숭이 들의 문화권인 곤륜산맥이남의
학습법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우리는 한 번 읽으면 알아듣는 말을, 원생이들은 외국어이므로, 더군다나
문명수준이 높은 인간들의 언어이므로,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암송하는 수 밖에 대책이
없었다고 봅니다. 마치 지금 이나라의 백성들이 영어를 달달외며 몰입하며 애쓰는 경지를 넘어서
영어강사에게 몸을 바쳐가며 영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훈고학은 곧 한.당이라는 고대(古代)에 유행했던 학문의 조류가 아니라, 근대에 남방의 잔나비 유태인들이 고려의 인간문명을
원생이들의 역사와 습성에 내면화시키는 작업이며, 그것이 바로 골레스탄(華高麗)궁의 학문을 배우자는
난학(蘭學)인 것입니다. 튤립의 원산지는 흑해연안이며, 유태인들이 사고전서(대륙의 네 곳에 흐트로 놓아서, 현 중국박물관에
보관된 것은 두 곳의 서고에서 보존된 책들만이 있음)를 앵무새처럼 외어 그들 지역의 음(訓)을 정리하고
통일한 것이 그들 부족의 민족어의 시초가 된 것이고요. 그게 전부 학교에서 교육되고 관공서에서 쓰여진 것이 1848년 이후의
일이고요.
지금의 원숭이들은 더이상 독서백편 의자연(讀書百篇 意自然)이라는 공자의 학습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학문을 이미 훈고학을 통해 그들의 언어(입말)로 정리하여 기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훈고학은 세계패권을
지닌 공용어와 자신들의 부족어를 끊임없이 비교.분석.통일.정리의 과정을 통해, 원숭이와 인간이란 종이 다른 피아의
가치체계를 완벽하게 기술해 놓은 원숭이의, 원숭이의 의한, 원숭이를 위한 언어의 가치체계인 것입니다.
작금의 주어(周語)는 영어가 맞습니다. 턱을 깍고 이빨을 뽑아 원숭이들과 같은 웅월거림과 침 튀김을 얻기에
노력을 경주하기 보다는,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를 깊이 연구하여, 원숭이들의 영어에 대비되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언어의 가치체계를 이룩하는 것이 원숭이들이 인간을 넘어서 지배했듯이,
인간들이 인간본연의 자세를 돌아가 원숭이의 목에 개목살이를 걸고, 고삐를 바짝죄어 유치한 주둥이를 함부러 찍찍거리지
못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궐한 작성시간 12.05.05 그게 전부 학교에서 교육되고 관공서에서 쓰여진 것이 1848년 이후의 일이고요. <=== 끝에서 3번째 단락의 글인데 혹시 1948년의 오타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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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티무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5.05 유럽은 혁명이 있었던 1848년 이후에 고려의 삼정의 문란을 틈타 아전들의 말인 변방어들이 역도들에 의해서 교육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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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본향 작성시간 12.05.05 프랑스 혁명이 1948년에 일어난 것으로 아는데...이후 나폴레옹이 유럽의 중소 봉건왕조들을 싹쓰리 청소하고
유다 주인님들께서 좋아하실 공화제라는 것으로 유럽이 바뀌게 된걸로 아는데요,,,혹시 그 당시에 나폴레옹이
싹쓸이 한 유럽의 봉건왕조들이 사실은 고려의 혈통이 남아있던 , 즉 동양 고려황제의 제후들이 아니었을까요?
티무르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답댓글 작성자본향 작성시간 12.05.05 그러고 보니 1848년이 프상스 혁명은 동양에서 1840년경에 아편전쟁으로 서양에 무릅을 꿇고 난 얼마 안된 후이군요,,
즉 그때도 유럽이 동양 고려황제의 지배를 받던 체제였다면 1842년 아편전쟁직후에 유럽에서의 고려치세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겠군요...그 여세를 몰아서 프랑스에 남아있던 고려 황실의 혈통이나 혼혈혈통의
왕가를 무너뜨린건 아닐까요? -
작성자궐한 작성시간 12.05.05 Reich = China = 지나 = 나치 = 독일 = 중국 = 유태인 = 짱꼴라 = 왜노 = 잔나비 = 원숭이 = ... 이런 등식이 성립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