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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Secretariat 의전수행(선문대 통역대학원생 이신실씨 글)

작성자권형태|작성시간05.09.06|조회수402 목록 댓글 0
APEC SME MM(중소기업장관회의)에서 APEC Secretariat Liaison Officer(APEC 사무국장 LO)로 4일간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 다녀왔다. APEC 21개국 장관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에 APEC 사무국장 최석영 대사님께서 Observer로 참석하셨다. 나는 이분을 그림자처럼 4일간 영접에서 영송까지 의전수행하는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나는 에이전시를 통해 APEC 장관통역을 지원했다. 국제회의기획 전문 업체에 나를 보내 면접을 보게 했다. 생각과는 달리 이번 통역에 지원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면접을 2틀에 걸쳐서 실시했다. 한 직원에게 도대체 얼마나 지원을 한건지를 물어봤더니, 180명이 지원해서 2차 면접 볼 사람을 추린다고 했다. 갑자기 2차 면접이라는 말에 너무도 황당했다. 이번 통역은 솔직히 pay도 좋지 않아서 정말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국제회의에서 일반통역과는 다른 의전통역분야를 맛보려는 생각을 갖고 자원봉사한다는 느낌으로 온건데, 지원한 사람은 왜 이리 많으며 2차 면접은 무슨 소리랴?

우선, 1차 면접은 정말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우발상황대처법에 관한 질문들로 가득 차있다. 면접관이 이번엔 영어로 이번엔 한국어로 번갈아 가면서 답변을 유도한다. 질문은 대개 이렇다. “장관님을 의전차량에 모시고 가다가 차량사고가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의전차량이 고속도로에서 이동 중인데 장관님의 종교 문제 상 갑자기 기도를 해야 한다며 차를 세우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녁 만찬 전에 다른 장관님들은 모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본인이 모시고 있는 장관님만 로비에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특히, 여성분들에게 많이 했던 질문중 하나는 “하루 일정이 끝나고 장관님이 통역사에게 같이 술자리에 동석해서 통역을 요구함과 동시에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등의 돌발적이고 우발적인 질문으로 순식간에 영어 혹은 한국어로 대답해야 했다.

합격통보를 받고 일주일 후, 2차 면접을 보러 다시 오금동에 갔다. 이번에는 중소기업청에서 한국인 남자분 1명, 외국인 여자분 1명이 면접을 실시했다. 질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무엇이냐? 왜 지원했느냐?“등의 예상 가능한 질문을 영어로 물어보았다. 간단한 영어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인 면접관은 1차 면접과 마찬가지로 우발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끝으로, 2차 합격 통보를 받은 뒤, 2차례의 교육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실내교육으로 이번 회의와 관련된 각종 교육을 받았다. 행사일정부터 행사장 내부 도면파악 및 공항 도면파악 및 의전관련 교육 등을 받았다. 일주일 후, 2차 현장교육이 있었다. 서울 김포공항 의전실(기밀실)을 시작으로 인천공항 의전실, 출국장, 입국장 등등 모든 곳을 파악하고 의전관련 교육을 받고, KTX 서울역으로 가서 교육을 마쳤다.

내가 맡게 될 분은 본래 ASEAN 사무총장 혹은 차장님 (물론 바쁘면 아랫사람들이 나오지만 예우차원에서 장관급 의전을 제공한다.)이었으나 행사 시작 전날 밤에 ASEAN 불참 확정으로 급작스레 APEC 사무국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이미 한국에 하루 전에 도착하신 지라 인천공항에서 영접을 할 필요는 없었고 새벽같이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해 인터불고 호텔로 가서 의전차량을 타고 대구공항으로 가서 영접을 했다. 내심 예상은 했었지만, APEC 사무국장님을 모시면서 4일간의 나의 통역서비스는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국장님께서 4개 국어를 구사하셔서 정말 나는 통역사가 아닌 비서(?)의 느낌이 돼버렸다. 다른 LO(의전수행통역)들은 끊임없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느라 바쁜데 정말 영어 몇 마디 못써보았다. 이런 망연자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자 최석영 대사님(국장님)께서 번역을 부탁하셨다. 국장님께서 회의를 들어가시면 나는 Delegation Room에 가서 그 시간에 번역서비스를 해드렸던 것이다. 통역하러 가서 번역을 하고 온 이상한 CASE다. ASEAN이 불참하면서부터 내심 뭔가 이상하게 진행된다 싶더니, 4일간 통역할 기회가 도통 없었다. 더군다나 일부 외국 장관 분들은 잠깐 시간이 될 때 대구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 하셔서 기본 일정이 끝난 후에도 밤늦께 까지 같이 일을 해야 되는 동료 LO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대사님께서는 회의가 끝난 후에도 80통이 넘는 결제용 이메일을 일일이 검토 및 결제하시고, 연설문을 손보시느라 동료 LO와 비교 시 내가 특별히 고생한 점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나라에서는 DLO (Delegate's Liaison Officer)가 26명이 와서, LO 한명이 26명의 DLO와 장관을 챙겨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들에게 통역해주랴, 의전 예우상 스케쥴 관리 해주랴, 이들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 살이 쪽~! 빠진 LO도 많았을 것이다. 같이 가게된 정혜영씨는 Republic of Philippines을 담당했는데 현장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은 27일부터 와서 7일을 있었다는 듣기 만해도 부담스런(?) 얘기를 들었다.

통역 외의 다른 재미있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최대사님께서 언어의 문제가 없으시자 내가 항상 옆에 붙어서 통역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 첫날, 최대사님과 중소기업청장님과 관련 고위관리들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스시집에서 방으로 다들 들어가시는데 내가 같이 들어가면 분위기가 더 이상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때는 알아서 빠졌다. 좀 억울했다. 소외된 느낌이랄까.. 식사는 알아서 눈치껏 해결해야했다.

31일 Innotech쇼가 끝난 후, 패션 센터에서 대구시장 주최로 만찬이 있었는데, 국장님 만찬자리 옆에는 내가 앉을 자리가 따로 있지 않았다. 만약 통역이 필요하다면 의자를 구해서라도 옆에 앉게 될텐데 그런게 아니니 head table(장관을 비롯한 VIP가 앉도록 지정된 테이블)에 내가 뻘쭘히(?) 끼어 있기가 그랬다. 결국 화려한 고급요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다른 LO들은 다들 장관들 틈 사이에서 식사하며 담소 및 통역을 하고 있었다. 순간 배고픔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빈자리를 눈 씻고 찾아봤다. 마침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배고픔에 모든 걸 잊고 그리로 가 무턱대고 앉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 두 분은 모두 가슴에 번쩍이는 금색 lapel pin (각국 head of delegation만 착용할 수 있는 pin, 이 핀 하나로 회의장 출입 등 모든 것이 해결된다)을 달고 있는 페루 및 호주 장관들이었다. (어쩐지 “넌 뭐냐”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시더군~) 일단 앉았는데 어찌하리오. 개인소개 하고 당당히 식사를 했다. 결국 나중에 와인마시면서 편하게 말을 건네주고 받았다.

회의기간 중 거문고의 현대음악 연주, 전통의상 패션쇼, 명성왕후의 이태원씨의 live공연 등 부수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가 있었던 점은 무척 좋았다. 행사장 옆쪽에서 키도 작은 한 아줌마가 classic한 한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오시자 한복입고 인사 및 서빙하는 직원들의 manager나 되나 보다하고 힐끔 보고 말았는데, 그분이 행사장으로 들어가더니 명성왕후를 불러버리는 황당함이 있었다. 바로 만찬장으로 다시 들어가 공연을 보았는데 정말 가슴에 전율이 느껴지는 훌륭한 가창력과 무대 카리스마였다. 각종 공연 및 포스코 견학등 평소 시간 내서 할 수 없었던 부분을 즐기게 되어 좋았던 점은 있었다.

끝으로 장관들의 영어사용법을 언급하고 글을 마치겠다. 국제무대에서 장관급들이 어떻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지를 가만해 보았다. 이들의 영어는 완벽하지도, 화려하지도, 빠르지도, 발음이 좋지도 않다. 이들의 영어는 느리고, 때로는 broken하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고, 천천히 말할지언정 communication은 제대로 한다. 발음이 좋고 빠른 영어가 좋은 것이 아니다.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사용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평소 회화나 대화습관에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지만, 통역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통역은 communication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중간에 교량역할을 하는 것이다. 화려한 표현, 화려한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상호 의사전달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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