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燕)과 조선의 위치[도역수(渡易水)]

작성자박자우|작성시간09.06.13|조회수1,303 목록 댓글 0

연(燕)과 조선의 위치[도역수(渡易水)]

 

 

 

1)들어가는 말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황제(黃帝)~한나라 무제 태초년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네이버 백과 사전>

강단 사학계의 일부와 “서역조선론”의 일부에서도 사마천이 사기(史記)가 왜곡된 책이라고 한다.

사기(史記)는 사마천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서 지필하다가,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의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옥중에서도 지필을 멈추지 않은 책이다.

사기가 왜곡된 책이라면 사마천이 왜곡했을까 아니면 후대 누가 어떻게 조작하였다는 말인지 본인은 잘 알 수없다.

사기는 역대 수많은 주석서와 사기을 인용한 많은 책 들이 나왔는데 모두가 정확한 고증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모든 책들을 어떻게 다 교열하였을까?

어찌 하였든 본인은 사기를 중심으로 하여, 연의 위치를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

 

 

2) 연과 조선의 위치

 

<사기 蘇秦列傳第九(소진열전제구)>에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地方二千餘里]

(연나라는 동쪽에 조선. 요동이 있으며, 북에는 임호. 누번이 있으며, 서에는 운중. 구원이 있고

남에는 호타. 역수가 흐르며, 영토는 사방 2천여 리이며..)

현재의 주류 학계에서는 연의 동쪽에 조선이 있는데, 연은 하북성 요령성에 있었으므로

조선의 위치도 지금 동북삼성과 반도 북부에 있는 것으로 비정되어 있다.

그럼으로 연의 위치를 다시 고증하면 조선의 위치도 자연히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역수가(渡易歌)의 역수(易水)

 

<전국책(戰國策) 연책삼(燕策三)>에 <도역수(渡易水)>에 대한 시가 있다.

<도역수(渡易水)>1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探虎穴兮入蛟宮 仰天噓氣成白虹

(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혜불부환

탐호혈혜입교궁 앙천허기성백홍)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易水)는 차갑구나!

사나이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호랑이 굴을 찾아서 이무기 궁으로 들어가고

하늘을 우러러 외쳐 흰 무지개를 이루는도다!

 

 

역수는 <네이버 한자사전>에 “중국(中國) 河北省(하북성)에 있는 강 이름“으로 되어 있다.

<百度百科>에는 역수는 지금의 역하(易河)를 지칭하는 강이며 하북성 역현 경내에 있으며,

남역수(南易水)、중역수(中易水) 북역수(北易水) 나눠진다.

연나라 태자 단(丹)이 형가(荊軻)로 하여금 진왕(秦王:진시황)을 암살하라고 보낼 때,

역수에서 형가를 송별을 할 때 위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위는 인터넷 검색시 흔히 볼 수 있으며, 주류 사학계에서 생각하는 일반적인 춘추시대 지도이다.

위지도로 보아도 주나라와 춘추오패를 합해도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4) 연나라 위치

 

연나라에 대한 설명을 보면 <네이버 사전>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허베이성[河北省] 북부에 있던 나라로, 전국칠웅(全國七雄) 가운데 하나이다. 기원전 222년에 진(秦)에 멸망되었다.”고 한다.

연은 지금의 하북성에 있으며, 또 연의 남쪽에 역수가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역수는 하북성에 있지 않았으므로 

이에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한어대사전>에,

(1)주나라 때 제후국으로 북연으로 성은 희(姬)씨이며 소공 석(召公 奭,1057 ~ 996?)이 건국하였으며 지금의 하북성 북부 및 요령성 서단으로 도읍은 계(薊:지금 북경 서남쪽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다. 전국시대에 칠웅의 하나로 후에 진나라에 의하여 멸망했다.

 周 代諸侯國。又稱 北燕 。 姬 姓, 周公奭 之後,在今 河北省 北部和 遼寧省
西端,建都 薊  戰國 時為七雄之一,後為 秦 所滅。

(2)주나라 때 제후국으로 남연이 있는데, 성은 희씨이며, 황제헌원씨 후예로 알려졌다.

지금의 하남성 건성현(延津縣) 동북부에 있다

周 代諸侯國。又稱 南燕 。 姞 姓,相傳為 黃帝 之後,在今 河南省  延津縣 東北部。

(3)동진 때 선비(鮮卑)족 모용씨가  {연성현(延津縣)에서 칭제(稱帝)하고} 연이라 하였는데,

전연 후연 서연 북연으로 나뉘어졌고, 한인 빙발(馮跋)이 나라를 세웠는데

또한 연이라 하였으며 역사에서는 북연이라 부른다.<晉書·載記>

 東晉 時, 鮮卑  慕容氏 稱帝,國號 燕 ,分 前燕 、 後燕 、 西燕 、 南燕 。 漢 人 馮跋 所建國亦名 燕 ,
史稱 北燕

 

 

5)역수가와 병주

 

(1)도역수 2

다음 시는 명(1640)때 <역대산수전원시집수>에 실려 있는 진자룡(陣子龍) 쓴 또 다른 역수가 이다.

 

并刀昨夜匣中鸣,燕赵悲歌最不平。

易水潺湲云草碧,可怜无处送荆卿

병도작야갑중명,연조비가최불평。

역수잔원운초벽,가령무처송형경

 

병주에서 어제 밤 작은 상자에서 소리가 나는데,

연(燕) 조(趙)의 슬픈 노래 높낮이 고르지 못하도다.

역수에 푸른 풀이 잔잔히 흘러내리고

슬퍼할 곳 없이 형가를 보내도다.

 

병도(並刀) 주(注)에,

“병도는 병주(并州)이며 산서 대부분과 내몽고 하북 일부를 포함한다..., 연(燕)과 월(越) 자고이래 의사가 많아었다 …….,”

 

(2) 9주와 12주

연의 지역이 병주의 지역과 관계 되어 있다면, 그럼 병주를 다시 찾아보면,

<사기 집해>에, 마융이 이르기를 우임금이 물과 땅을 다스린 후 구주(九州)를 두었는데, 순임금이 기주(冀州)의 북이 광대하여 병주(并州)로 나눴고 연과 제(齊)는 멀어서[燕齊遼遠] 연에 유주(幽州)를 두고, 제齊를 나누어 영주(營州)를 두었다. 이로 인하여 12주가 생났다.

禹平水土,置九州.舜以冀州之北廣大,分置并州.燕、齊遼遠,分燕置幽州,分齊為營州.於是為十二州也

(燕齊遼遠:연과 제과 요원하다는 것은 당시에는 지금의 발해만보다 넓어서 연나라 제나라 사이에 바다였기 때문이다.)

<상서(尙書) 우공(禹貢)>에는 우임금 정한 9주(九州)가 있는데,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이며

 여기가 3개주가 많은 병주(幷州) 유주(幽州) 영주(營州)로서 12주가 된다.

<周禮 職方氏>에는 우공(禹貢)의 9주와 7개가 동일하지만, 서주(徐州)와 량주(梁州)가 빠지고, 유

주(幽州) 병주(幷州)이다.

<이아(爾雅) 석지(釋地)>에는, 청주(靑州)와 량주(梁州가) 대신에 영주(營州)와 유주(幽州)이다.

 

황제헌원씨 때 최초 구주(九州)가 있었으므로 정리 요약하자면,

9주(황제헌원)->12주(순임금)->9주(우공)이 된다.

 

 

(3)분수(汾水) . 진수(晉水) .  호타수(沱水). 항산(恒山)

<사기 정의 괄지지>에

분수(汾水)는 남주(嵐州) 정악현(靜樂縣) 북 30리 관잠산 북에서 나오며, 동남으로 흘러 병주로 들어가다가

서남으로 흘러 강주(絳州)﹑ 포주(蒲州)에 이르러 황하로 들어간다.

<산해경>에,

“현옹지산(懸壅之山)에서 진수(晉水)가 나온다“고 하였고,

<정의 괄지지>에도 진수(晉水)는 “병주 진양현(晉陽縣) 서쪽 현옹산(懸壅山)에서 나온다” 되어 있다.

<사기 집해(集解)> 周禮에서 말하기를 정북은 병주라고 이며, 그 천(川)은 호타(滹沱)이며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타는 함성이다.(沱出鹵城). 

<색은>에 타(沱)는 물의 이름이요, 병주의 천(川)이다.

 

<지도의 이미지가 크므로 일부만 올렸다. 동경 113도와 114도 사이에 "호타하"라는 글자가 보인다.>

 

또 지리지에서 함성(鹵城)이며 현명(縣名)으로 대군(代郡)에 속한다.

호현(滹縣) 동쪽에 이르러 합해졌다가 바다로 들어간다.

<사기 정의(正義)>에 타는 대주(代州) 번치현(繁畤縣)에서 동쪽에서 근원한다.

<주례직방씨의(周禮職方氏>에서 병주에 항산(恒山) 있다고 하는데,

항산(恒山)은 대륙의 오악(五岳)의 하나인 북악(北岳)으로서 높이는 2,052m으로서 위치는

산서성(山西省) 혼원현(渾源縣) 남동 10km 지점에 있는 산이다.

 

 

 

6) 결어

이상으로 볼 때 燕의 위치는 "하북, 요령성 일대 지역"이 아니라,

 병주, 분서, 진수 등의 위치를 고려할 때,

 "산서성 중심으로 한 하북성 일부지역"에 있었다고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현재의 구도에 맞게끔 하기위하여 연이 동쪽으로 

당겨졌음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연나라가 산서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는 것이 맞다면 

 “연동유조선(燕東有朝鮮遼東)” 연나라 동쪽에 조선 요동의 뜻은 다시 고증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의 조선(朝鮮)은 천자(天子)국이며, 섬서 장안. 영고탑의 단제조선(檀帝朝鮮)이 아니다. 제후로서

조선후(朝鮮候) 또는 조선왕(朝鮮王)이라 할 수 있다. <동이한족오천백년왕통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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