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말
현재 계주와 연경은 하북성에 있는 곳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조선사 문헌에 계주에 공동산이 있다고 하는 기록이 너무 많다.
현 대륙에서 공동산은 옛 섬서지역(섬서성, 감숙성)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모순된 이야기 아닌가(?)
<고전번역서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중에서
薊州本秦漢漁陽郡。彭寵,祿山之反。皆在此地。
계주(薊州)는 본래 진(秦), 한(漢) 때 어양군(漁陽郡)이니, 팽총(彭寵)과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킨 곳이 모두 이곳이다.
薊州西數十里有山。名盤山。甚奇崛。 一統志稱盤龍山。 曾往燕京時。閭嶽千山。皆能遍踏。此山最邇。而不免蹉過。至今有遺恨。仍勸余探歷。而曾見袁中郞遊記。頗險絶。非老脚所宜行。且忙不得往見。可歎。州城之北有山。曰府君山。卽古所謂崆峒山。是北方名山。而亦未能歷見。尤可恨。
過高麗堡。水田之開墾者。可數十餘頃。土甚膏沃。宜於種稻者。不特此地爲然。而唯此堡爲我東人所居。故獨爲水田。
“계주(薊州) 서쪽 수십 리 되는 곳에 반산(盤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몹시 기이하고 웅장하다. 《일통지(一統志)》에서는 반룡산(盤龍山)이라고 했다. 일찍이 연경(燕京)에 갔을 때 여악(閭嶽)과 천산(千山)을 두루 보았지만 이 산이 가장 가까운데도 그대로 지나쳐서 지금까지 한이 된다.”
하며 나더러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내가 전에 《원중랑유기(袁中郞遊記)》(명 나라 원굉도(袁宏道)가 지은 유기)를 보니, ‘꽤 험절(險絶)해서 늙은 사람은 가 볼 수 없는 곳이다.’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바빠서 가 보지 못하니 한탄스러운 일이다. 주성(州城) 북쪽에 부군산(府君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바로 옛날에 이른바 공동산(崆峒山)이다. 이 산도 북방의 명산인데 두루 보지 못했으니 더욱 한스럽다.
고려보(高麗堡)를 지나니 개간한 논이 10여 경(頃)이나 된다. 땅이 몹시 기름져서 벼 심기에 알맞은 곳이 이곳만은 아니지만, 이 보(堡)만은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유독 논을 만든 것이다.
<바이두 백과>에서,
薊州
蓟州,在天津市之北,燕山脚下,有一个历史悠久的古城,春秋时期称无终于国,隋代为渔阳郡,唐代称蓟州,1913年改为蓟县。
계주는 천지시 북쪽에 있다. 연산은 그 기슭에 있고, 유구한 역사를 가지 고성 중 하나이며. 춘추시 나라로 칭하였음이 끝이 없으며, 당대 계주라 하였고, 1913년에 계현이 되었다.
<바이두 백과>에서,
崆峒山
地理位置
崆峒山位于甘肃省平凉市城西12公里处,东瞰西安,西接兰州,南邻宝鸡,北抵银川,是古丝绸之路西出关中之要塞
공동산은 감숙 평량시 성 서쪽 12KM 밖에 있으며 동쪽으로 서안을 마주보며 서쪽으로 란주와 접하며 남쪽으로 보계와 이웃하며 북쪽으로 은천이 이르며 예로부터 서로 통하는 "실크로드"로서 관중의 중요 요충지였다.
被中華民族尊爲人文始祖的軒轅黃帝親自登臨崆峒山,向智者廣成子請教治國之道和養生之術 ,黃帝問道這一千古盛事在
공동산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인문 시조 황제 헌원이 친이 공동산에 올라 지자 광성자에게
치국지도와 양생지술을 물은 곳으로 천고의 역사적인 곳이다.
현재 대륙에서 공동산이 있는 곳은 몇 곳이 보인다. 하지만 황제헌원이 광성자에게 도를 물은 곳은 감숙성 평량시 한곳이다.
다시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를 보면,
薊州有崆峒山。卽黃帝見廣成處
계주에 공동산(崆峒山)이 있으니 곧 황제(黃帝)가 광성(廣成 중국 고대의 신선)을 만나 본 곳이다.
<구글지도에서 공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