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력사지명대사전>에서
北京
唐以太源府為北京,後改北都,五代後唐為西京,尋複為北京,即今山西太原縣。
宋慶歷二年,以大名府為真宗駐蹕之所,建為北京。
金天眷初改遼上京臨潢府為北京,金亮天德二年廢北京,止稱臨潢府,又金亮貞元初改巡中京大定府曰北京。
明洪武元年,詔以應天為南京,大梁為北京,成祖由應天遷都北平後,遂稱應天為南京,北平為北京,世俗相沿,至今未改。
1)당唐이 태원부太源府을 북경北京으로 삼았으며, 뒤에 고쳐 북도北都로 하였으며, 오대五代 때 후당後唐이 서경으로 하였으며, 다시 북경으로 하였으니, 곧 지금의 산서 태원현太原縣이다.
2)송 경력2년, 태원부大名府은 직종真宗이 주필駐蹕하던 곳으로 , 북경을 세웠다.
3)금金 천권天眷 초에 요遼 상경 림황부臨潢府를 북경으로 고쳤다가, 금 [완안부完颜亮] 천덕 2년 북경을 폐하여, 림황부라고 칭하던 것을 그만두었으며, 또 금金 [완안부完颜亮] 정원貞元 초에 중경 대정부大定府을 순행하다가 북경北京으로 고쳤다.
4)명明 홍무洪武 원년 조칙을 내려 응천을 남경으로 하였으며, 대량大梁을 북경으로 하였으며, 성조가 응천應天을 북평후北平後로 천도한 까닭으로, 이에 따라 응천은 남경南京이 되고 북평北平은 북경北京이 되었는데, 세속에서 답습踏襲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다.
大梁
今河南開封縣,戰國魏所都,《史記魏世家》:惠王三十一年,徙都大梁,又《秦紀》:始皇二十二年,王賁攻魏,引河流灌大梁,大梁城壞,其王請降,盡取其地。
대량 지금의 하남 개봉현開封縣으로 전국 시대 위魏나라 도읍이었다. <사기 위세가> 혜왕 31년 도읍에 황하의 물을 끌어 올려 대량을 치니, 대량성이 붕괴하게 되어, 그 왕이 항복을 청하게 되었으므로, 그 땅을 뺏게 되었다.
梁
周國名,(甲)嬴姓,伯爵,春秋時為秦所滅,《左傳僖公十九年》「秦遂取梁,」今陝西韓城縣南二十裡有古少梁城,即其都,(戰國七雄之一)即魏也,因徙都大梁,故稱梁,詳魏字注。
주나라 때 제후국 이름, 성은 팽, 백작, 춘추시 진에 소멸되었다. <좌전 희공 9년>에 진이 량을 취하였는데, 지금의 섬서 한성현韓城縣남쪽으로 20리에 옛 소량성이 있었으니, 그 도읍이며, 전국시대에 칠웅 가운데 하나로서 즉 위이고, 도읍을 대량으로 옮긴 까닭으로, 고칭故稱 량이라 하였으니, 상세한 것은 위魏 자字 주注를 보면 된다.
魏
戰國時國名。春秋時晉封畢萬於魏,故城在今山西芮城縣東北。其後世為大夫。周威烈王二十三年,與韓趙分晉列為諸侯,都安邑,故城在今山西夏縣北。惠王徙大梁,今河南開封縣,因稱梁。
전국시대 나라 이름. 춘추시대에 필만을 위에 봉하였는데, 고성故城은 지금의 산서 예성현 동북에 있다.
그 후 세대를 전하여 대부大夫를 하였는데, 주 위열왕 23년, 한 조와 더불어 진을 나누어 제후의 반열에 섰으며, 도읍은 안읍安邑으로 옛 성城은 지금의 산서 하현 북쪽이다.
혜왕이 대량으로 옮거니 지금의 하남 개봉현이며, 이런 까닭으로 량으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