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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燕京)의 위치

작성자박자우| 작성시간11.02.10| 조회수411|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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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0 감숙 성 서북부의 연경을 지금 의 북경으로 알고 있으니 역사공부가 안되는거지요 조선의 중국이 그 곳인데 본회의 몆사람만 그것을 언급 할 뿐 입니다 서하 가 박트리아지역에서 지나남부로 동진하면 동하이며 이 들이 객가이며 지나유태인 입니다 이런 결론 은 본회의 연구결과 입니다 동국조선의 사신들이 찾아간 본조가 연경이며 그곳이 바로 이 글에 나오는 감숙성 서부의 연경 이라고 이해한다면 청조와 이조가 같은 혈족이라는 말도 이해 됩니다
  • 작성자 박자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2.11 제가 고인이 되신 최찬동 선생님께 배운것이 있다면 역사가는 사료로서 말씀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사료가 없는 역사를 논하는 것은 소설이 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1 당 연구회 가 만들어 낸 가설 들은 일본이 감추어 놓은 사서 그리고 영불이 가져간 사서들이 한문실력 좋은 사람들 손에 잡히는 날 타작 이 되겠지요 그 때 되면 알곡은 새푸대에 담기고 껍데기는 버려질 겁니다 그 때 가 올 때 까지는 열렬한 탐구심으로 소설을 쓰는 겁니다 가용한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정황을 추리 하는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박자우 선생님의 견해에 저도 공감합니다.
    근거 사료(史料)를 제시하지 않으며 "역사를 논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사료(史料)를 검토하는 일도 문제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최남석 선생님... 한문(漢文)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일본(日本)이 감추어 놓은 사서들, 영불(英佛)이 가져간 사서들"..... 이게 어떤 책들인지 무척 궁금하군요... 그러한 책들이 "해답"을 제시한다고 보시네요... 기대됩니다.
    이번에 "외규장각"(外奎章閣)의 도서들이 대한민국에 돌아온다고 하는데... 프랑스는 약탈 당시의 "원본"(原本)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겠죠???
  • 답댓글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2 한문실력좋은사람이란 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고득점자 를 말하는게 아니라 고대문집을 보고 한글로 옮기며 그시대 문화를 인용하며 폭 넓은 해설을 할 정도의 사람을 말 합니다 구약성경도 한문으로번역되었다가 다시 한글로 번역 되었는데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 도 지금의 우리는 읽기는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게 많이 있습니다 한문고대문집도 그 당시 문화에 밝지 않으면 번역을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뜻을 모르면 번역도 불완전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최남석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번역자(飜譯者)가 기록 당시의 문화(文化)를 완전히 이해하면 좋겠지요...
    오늘날의 관념과 사고 방식으로 모든 옛 문헌들을 해석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한문(漢文)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어느 정도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겁니다.
    아마추어 선수들 말고요... 프로 선수들...
    기록 당시의 문화(文化)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면서, 한문(漢文) 번역을 전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어느 단체(기관)의 누구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들이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타작"(打作)을 하겠지요...
  • 작성자 박자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2.12 선생님의 견해는 저와 너무 많은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역사는 여기 대륙조선사연구회에 의하여 교열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기 대조연 카페에서 동북공정이 아니라 역동북공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요 결국 역사는 역사가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사실이군요 출처 혹은 고전인용의 출전을 밝히는 것은 연구회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論에서 서술자의 주관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지만 최소화 시킬 수 는 장치를 마련해주기 때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출처 혹은 고전인용의 출전을 밝히는 것은 연구회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작성자 박자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2.12 또 누구나 원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원전에서 2차번역, 3차번역 과정의 글들이 인용되고 제해석을 거치는 동안, 가공 즉 첨삭되어지기 마련이기 떄문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술이부작述而不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옛사람의 글을 서술했을 뿐이지 지어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공자의 말씀은 되집어 보면 좋겠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번역문"(飜譯文)이 아니라 "원문"(原文)을 직접 보려면, 평소에 한문(漢文)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군요...
    원문(原文)을 번역(飜譯)하면서 "첨삭"(添削)과 같은 "가공"(加工)이 이루어지면, "제2의 창작물(創作物) 또는 저작물(著作物)"이 되는 것이고요...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2 역사를 기술할 때는 술이부작 이 좋습니다 기록자의 감정이나 사견이 들어가면 안되니까요 그러나 공정하게 다ㄹ어진 역사서를 보면서 그 행간을 읽는것은 사람의 겉모습 과 행위를 보면서 그사람의 내면세계를 유추하여 그 사람의 과거지사 와 미래행위를 점쳐 보는 거 같습니다 육하원칙 의 역사기술 방식도 중요하지만 행간 의 의미도 중요합니다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2 승자의 역사서를 보면서 패자의 역사가 궁금하다 그런데 승자가 패자의역사를 민멸시키고 패자의 지명까지도 지멋대로 바꾸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눈치 입니다 눈치는 오차가 있지요 그 오차는 오리지널 사서를 입수하게 되면 수정될 겁니다 당연구회의 업적은 최찬동선생님 과 김종윤선생님을 기초 로 하여 중앙아시아 에 있는 우리의 역사까지 손을 뻗친 것 입니다 그 과정에서 너무 지나친 비약이 난무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비약도 약에 쓸 개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스스로 말라죽습니다 지니친 비약은 비약 스스로 자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공부를 왜하느냐 ? 나자신 똑똑해져 교활한 정치인의 먹이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연구자의 논술(論述)에서 "논리의 결함" 곧 논리의 모순, 비약 등이 존재한다면 이를 수정하거나 보완하여야 됩니다.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2 감이 안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국가의 등기 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리한 역사는 모두 찾아서 정리 해놓으면 나중에 쓸데가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역사(歷史)는 "국가(國家)의 등기(登記)"라고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등기(登記)>
    일정한 법률관계를 널리 사회에 공시(公示)하기 위해 일정한 공부(公簿)에 기재하는 것.
    그결과 나타난 공적문서인 등기부(登記簿)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11.02.12 오늘날의 등기(登記)에는 공시력(公示力)은 있지만 공신력(公信力)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대한민국에서...)
    국가 기관에 법률관계나 사실관계를 등록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공신력(公信力)은 100%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부실한 등기(登記)의 존재 때문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같은 정사(正史)는 기록 당시에 공시력(公示力)이 있었을까요? 또한 공신력(公信力)도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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