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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칼럼

살수대첩의 "살수"는...시르다리아 강이 맞을 듯 합니다.

작성자서정호|작성시간11.05.29|조회수1,741 목록 댓글 0

살수대첩의 "살수"는...시르다리아 강이 맞을 듯 합니다.| 자유게시판

홍진영 조회 388 | 08.09.27 01:24 http://cafe.daum.net/chosunsa/POVo/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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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나라가 동쪽을 넘으려면...알타이 남부의 이르티쉬가 아니면...그 남쪽 페르가나 계곡을 넘어야 합니다.

 

고대에는 강줄기나 그 옆의 자연 형성됀 계곡길이 가장 손쉬운 고속도로인지라...

대군이 이동할 땐 어김없이 강길을 탑니다.

 

 

현 카자흐스탄 남서부나...우즈벡,,,흑해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수,당나라는...

요동인 이르티쉬를 타고 우루무치(평양)으로 내리쏘는 한 편...

 

나름대로 엄청난 전략을 써서...험란하긴 하지만 지름길인 시르다리아 상류로 올라가는 페르가나 계곡을 택한 걸 겁니다.

 

 

 

 우리역사가 침이 마르게 칭찬해 대는 살수대첩은...

이 곳 페르가나의 이식쿨 호수가 시르다리야로 유입돼는 길목에...을지문덕이 둑을 쌓고..물장난을 친 겁니다.

 

 

 

시르다리아(살수?) 나 아무다리아(아리수?) 상류의 댐이 터지면..우즈벡은 물란리로 박살이 나기에....

지금도 이 지역 상류댐들은...주변지역 나라들 공동으로 경비를 설 정도랍니다.

 

바보들이 아닌 이상은...적의 수공을 대비해 강의 상류로 정찰병을 보내야 하는게 상식인데...

작전의 귀제인 수양제가...그걸 몰랐을리 없으면서도 당한 이유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고구려로 가는 길을...가로 막은게 살수가 아니라...

자신들의 영토에서 고구려를 가는 거의 몇 않 돼는 길이...고구려에서 수당으로 흘러내리는 살수강변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하는 코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고구려의 내지 깊숙히...

그것도 페르가나 협곡만타야하는 유일한 루트로는...정찰병들이 목아지를 끝까지 매달고 다녀오질 못 했던 것입니다.

 

 

이 살수대첩의 수공은...을지문덕이 최초는 아니라 보입니다.

서역의 흉노를 정벌한 한무제도...이 수공으로 우즈벡일대의 저지대에 위치한 성을 공략해 재미를 쏠쏠하게 봤었고...

징기스칸도...을지문덕의 후예답게...이 시르다리야 강둑을 막고 터트려...우즈벡의 저지대 성들을 수공합니다.

 

카자흐 서남부와 우즈벡 저지대들은...

천산에서 발원한 이식쿨 호수와 이에 발원한 시르다리아 와... 인더스쪽에서 발원하는 아무다리아 강둑이 터지면...

지금도 큰일을 치루기에...삼국이 경비를 서는 거랍니다.

 

 

이 시르다리아가 "살수"란 이야긴...

최두환 선생님이 원조 이심을 밝히며...자료글 하나 퍼 드립니다.

 

 

 

허나,

엄밀히 말하자면...제가 처음 들은건...20년전에 술이 알딸딸한 상태로 뭔 대남방송같은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어느 박사님께서...터키의 역사가들은...살수(정확한 발음...사르수)는 터키에 있었고...수당전쟁은 터키와 고구려의 동족상잔였다.

이래, 틀림없이 들은 적이 있음도 밝힙니다.

 

첨엔 이게 뭔 봉창두둘기는 소린가 했었는데...그 때도 뭔가 느낌이 오더라구여...

그게 시르다리야 였던 겁니다.

 

현재의 터키 지도로만 찾으니...나올리가 없었던 것이져..^. .^

그 당시의 터키는 돌궐이며...동고려와 분열됐다...수당(기자=이집트?)에 정복당한 서 고구려 였던걸 몰랐던 겁니다.

 

제가 돌머리라... 계신력은 엄청 딸리나..

한 번 새기면 지워지질 못 한 단  장점도 좀 있긴 합니다.

 

 

자료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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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Tashkent)와 천마(天馬)의 산지 페르가나(Ferghana)

  • 글쓴이: 김규현
  • 조회수 : 58
  • 08.08.01 15:42
http://cafe.daum.net/tibetsociety/LFx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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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Tashkent)와 천마(天馬)의 산지 페르가나(Ferghana) 
 
  
 
27-3)  반월도(半月刀)를 휘두르며 몰려온 이스람 세력의 침입에 이어진 타라스 강의 대결전이 지나고 수백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징기스칸의 검은 회오리바람이 지나가고 그리고 다음으로 티무르제국이 건립되어 한 세기가 지날 때, 14세기가 되어서야 현재의 우즈베크 민족이 속디아나로 이동해 들어왔다. 원래 우랄산맥에 남단에 살던 투르크계의 유랑민이었던 이들은 풍요로운 땅으로 밀려 들어와 농경민으로 정착하면서 ‘우즈베크 칸’이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름 아래 모여들어 ‘우즈베크’ 민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투르크계의 여인들

그러다가 티무르 제국이 연이은 내분으로 쇠약해지자 황실의 용병의 자격으로 제국의 심장부에 다가가 1,500년 마침내 티무르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로 무혈 입성하여 우즈벡 민족의 나라를 세우지만 통일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지역별로 부하라, 키바, 코칸트란 이름의 ‘칸국(汗國)’이란 이름으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이란 이름은 “우즈베크 칸의 자손의 땅”이란 뜻으로 그곳에서 찬란했던 문화를 이룩했던 고대 원주민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냥 흘러 들어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일 뿐이다.  
 
  그렇게 별 볼일 없이 지내다가 19세기를 맞이하여 러시아가 영국의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차례차례 군소 칸국들을 병합하기 시작할 때, 1925년, 공산화된 소비에트공화국의 일원이 되기에 이른다. 붉은 러시아 땅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기에 들어서서 구 러시아가 개혁, 개방정책으로 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1991년 9월에는 우즈베키스탄 이름의 공화국으로 본의 아니게 자립하여 현재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이 되었다. 

*타슈켄트의 티무루상

 이 나라의 수도가 타슈켄트(Tashkent)이다. 혜초사문이 석라국(石?國)이라 불렀던 바로 그곳이다. 혜초는 이 나라에 대해서 특별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호국 6개국으로 묶어서 공통적 사항만 몇 가지 기록했을 뿐이다. 사마르칸트에 비해 별 특징도 없는 곳이기에 나그네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지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전에 혜초사문이 갔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페르가나국(跋賀那國), 즉 현재의 페르가나(Fergana)는 꼭 다녀와야 했기에 버스를 타고 유서 깊은 나라로 향했다. 훼르가나 계곡은 현재는 한 마디로 복잡한 지형으로 우즈벡, 타지키스탄, 키르기스탄 세 나라의 삼각지점이다. 그래서 타슈켄트에서 기차를 타면 키르기스탄의 호젠트(Khojent)란 도시를 거쳐서 가야한다. 그 이유는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제국이 분리될 때 민족별로 국경선을 그었기 때문에 생 긴 결과라고 한다. 

 
 
국경선이 그렇게 복잡하게 섞여 있는 지형 속에 있지만 페르가나는 지형적으로는 천산산맥과 기사르산맥 사이의 거대한 삼각형의 분지로 천산에서 발원하는 시르다리아(Syr Darya)강의 상류 지역으로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토지로 인해 예부터 목화를 비롯한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곡창지대로 이름이 높았다. 이 지방이 예부터 동서양의 사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천마(天馬)라는 별명의 명마의 산지이고 다음으로 대 실크로드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타슈켄트의 중앙광장의 티무르기마상

 한(漢)대에는 페르가나를 대원(大宛) 또는 발한나(拔汗那)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대 여행가 장건(張騫)이 다녀가면서부터였다.  한 무제(武帝)는 월지족과 손을 잡고서 흉노족을 쳐서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해 장건을 서역으로 보냈다. 장건은 B,C 139년 중원을 출발하였으나 도중에서 흉노에게 사로잡혀 10여년을 지내다가 감시가 느슨해지자 탈출을 감행하여 서쪽으로 길을 재촉하여 마침내 대원국- 페르가나에 도착하였다. 그 뒤 대원국의 도움으로 강국-사마르칸트로, 다시 월지-속디아나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이미 새 땅에서 정착한 월지족은 그곳의 비옥함에 만족하여 흉노에의 원한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던 그는 빈손으로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귀로에 다시 흉노에게 잡혀서 죽음 직전에 내분을 틈타 달아나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타슈켄트의 무희들
그의 견문에 의해 대원국의 천마가 한나라에 소개되었다. 이에 한 무제는 B.C 102년, 이광리(李廣利)장군으로 하여금 변방의 기병 6만 명과 불량배 소년 및 시종들 그리고 소 10만, 말 3만, 당나귀, 낙타 1만 필을 주면서 대원국을 정벌하고 천마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이광리는 많은 고생 끝에 대원에 도착하였으나 성이 견고하여 깨뜨리기 어렵게 되자 시르다리아 강물을 막아 수공(水攻)으로 성을 함락하고는 3천 필의 명마를 데리고 귀환하였다고 한다. 이에 한 무제는 명마를 얻은 기쁨에 겨워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천마가 오네. 서쪽 끝에서 오네. 만 리 먼 곳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네.
 영특한 위풍을 이어받아 외국을 굴복시키니 
 대 사막을 건너와 사방의 오랑캐가 이에 복종하네.』

  그 이후 페르가나와 장안 사이에는 사신이 끊이지 않았던지「史記」대원 조를 보면 얼마가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포도주에 대한 기록도 나타난다.

*요리를 위한 화덕

『한 무제가 대원의 말을 좋아하여 사자가 길에서 마주칠 정도로 빈번하게 오갔다. 이러한 사절단은 한 무리가 큰 것은 수백 명이고 작은 무리는 수십 명이었다. (중략) 이런 무리는 많을 때에는 해마다 수십 회 적을 때에도 5~6회 씩 파견되었다. 가까운 곳도 수년이나 걸리는 여행이었다. 』


 우리의 혜초사문은 이 나라를 ‘대원국’으로 부르지 않고 페르가나로 불렀다. 혜초는 아마도, 중국으로의 귀향길을 모색하고 싶어서였던지, 아니면 단순한 순례였는지, 강국- 사마르칸트에서 동쪽으로 이 나라에 들어와 다시 쿠탈국으로 넘어가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또 강국으로부터 조금 동쪽은 페르가나국이다. 이 나라에는 왕이 두 사람이 있다. 시르다르야[縛叉大河 Syr Darya]강이 나라의 중앙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는데, 강 남쪽에 한 왕이 있어 대식국에 속해 있고, 강  북쪽에 한 왕이 있어 돌궐에 속해 통제를 받고 있다.』 

*시시카바브를 굽는 모습
또한 쿠탈국(骨?國), 즉 현재의 타지기스탄의 쿠탈(Khuttal)에 대하여도, 
『또 페르가나국의 동쪽에는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쿠탈국이다. 이 나라 왕은 본래 돌궐의 종족이고 백성의 반은 호족이고 반은 돌궐족이다.(중략) 주민의 절반은 토화라 말을, 절반은 돌궐 말을, 절반은 본토 말을 한다. 왕과 수령과 백성들은 삼보를 공경하고 신봉하여 절도 있고 승려도 있다.… 』

 위 구절에서 암시되듯이, 언어에 대한 명확한 구별도 그냥 주워들은 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내용으로, 혜초사문이 직접 답사한 기록이라고 추정되는 근거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종전에는 학계에서도 이 ‘호국’을 완전히 전문국으로 분류하였으나 최근에는 일부 학자들이 선별적으로 검토할 필요를 느낀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혜초의 다음 기록은 돌궐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은 호밀국으로 아프간의 북부 와칸계곡의 입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혜초사문은 도로 남으로 내려갔다는 말인데, 이 대목은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주벡의 명물 인리피오쉬카 빵

왜냐하면 페르가나에서 중국의 서역도호부의 관할인 카슈카르는 천산(天山)산맥만 넘으면 쉽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남으로 내려갔다는 말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 길깃트에서 바로 파미르 고원을 넘지 않고 빙빙 둘러서 왔던 여러 번의 경우처럼, 당시 천산산맥을 넘지 못할 무슨 말 못할 정세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할 수없이 도로 다시 남으로 내려간 것일까? 


*노상식당

//
 

오늘따라, 여러분들 뛰어난 글들 많이 올리시네요... 그렇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도 이 청천강을 따라서 계속 적들이 칩입을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08.09.27 01:34
청천강, 살수 등은 시르다르여가 적절한 곳입니다. 당신라, 송고려 등의 설이 있지만, 수당은 이란 북쪽 아랄해 남족에 있었던 나라로, 천산서쪽의 고구려 땅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08.09.27 01:38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양제의 운하는 시르강과 아무강을 연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구 소련에 의해서 현재 두 강은 이미 운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르강은 또한 수많은 운하가 연결되어 농업용수로 역할도 합니다. 중국의 회하보다, 시르강과 아무강은 인력으로 운하를 뚫을 수 있을 정도로 표고차가 낮습니다. 회하 운하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08.09.27 01:41
고맙습니다...이 살수(사르수)는 터키의 역사에도 나오는 얘기란 것을...한 20년에 들었단 글을 방금 오타 교정중에 첨가했습니다...다시 한 번 만 봐 주십시오... 08.09.27 01:41
수양제의 수로 대공사는...제 생각엔 현 흑해함대의 핵심루트인 흑해와 모스크바 인근 볼가강(?)을 잇고 발트해까지 이어지는 루트의 공사같습니다....수양제가 이 수로로 고구려를 공략했단 정확한 역사는 못 본 듯 합니다...공격전에...북쪽의 고구려 거수국들인 말갈,흉로등의 수당 후방공략을 저지키 위한 ..후방 본거지를 동북방으로부터 방어하자의 개념이 더 확률이 많아 보입니다. 08.09.27 01:46
페르가나가 해발 621미터 그 윗쪽 여기를 말하는 것이죠?..toktogul reservoir(이름이 좀 이상합니다.) 여기가 해발 1100m정도.. 이강은 현재는 Naryn강이라고 표현됩니다.. 여기를 올라가야 이식쿨 부근으로 올라갈 수가 있죠..... 100% 당할 수 밖에 없는 지형이 됩니다.. 08.09.27 01:48
볼가강 지역의 운하는 수당시대에 인력으로 충분히 건설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구소련은 북극에서 중앙아시아 전역을, 카스피해,아랄해 등 모두 이미 운하로 연결했더군요. 08.09.27 01:48
독도굴(Toktogul) 저수지, 독도굴의 의미를 좀 풀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말, 한자말 같습니다. 08.09.27 01:49
독도(듁토,죽도)=우뚝솟은 땅+굴(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08.09.27 02:12
 
당신라, 송고려, 청조선 여부를 떠나서,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지로 적합한 곳은 천산서쪽 지역입니다. 천산서쪽이 얼마나 비옥한 지를 자주 간과하는 것 같은데, 위 내용은 설명이 잘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번 이야기 했는데, 푄 현상, 높새바람입니다. 비구름은 높은 천산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대부분 천산 서쪽에 쏟아붓고, 천산 동쪽 신강성은 건조한 공기만 들이 닥쳐 사막이 된 것입니다. 즉 늘 천산 서쪽이 동쪽보다 강수량도 많고 비옥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주 전쟁 무대는 천산 서쪽입니다. 08.09.27 01:46
 
대수로 공사는 흑해와 카스피해를 이어주는 물길의 연결도 해당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수로를 만들게 되면, 지중해로부터 흑해를 지나, 아조프해를 거쳐->운하를 지나->카스피해를 지나 지금의 사마르칸트까지 배로 직접 이동이 가능하여, 물류의 혁명을 이루는 대공사가 되죠... 그만큼 상업적 가치도 높구요...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의 벽란도까지 배로 왔다는 이야기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08.09.27 02:08
현재도 여기는 연결이 되있고, Khazaria멸망시에도 북해의 바이킹이 배를 타고 카스피해까지 온 물길이기도 합니다... 08.09.27 02:09
네.카스피해까지 당태종과 흑해함대 루트입니다...제가 전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음...ㅡ. .ㅡ 08.09.27 02:14
카스피해, 아랄해, 흑해, 볼가강, 돈강, 다뉴브강, 북해 등은 현재 이미 운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쟁점은 당나라시대에 위와 근접하게 운하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상당히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중앙아시아는 현재보다 훨씬 강수량이 많았습니다. 08.09.27 02:18
결국은 수나라와 당나라는 이 지역에 있었던 나라라는 것이죠... 자신들이 황제라고 칭하는 나라들인 것이죠...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대치되는 세력이 되는 셈입니다...08.09.27 02:22
엄밀히 보면...수나라는 서역(이집트)에서 요단을 넘어...서고려(돌궐)와 통합됀 세력으로 커진 듯 합니다...이세민과 고구려 황실과는...넓게 보면...같은 단군조선의 혈통일 확률이 많아 보입니다. 08.09.27 02:28
지배층은 고려인 계열이 맞을 것입니다... 08.09.27 02:34
 
수당이 이란 지역, 아랍지역에 있었다면 한자를 쓰는 수당이 아니라고 봅니다. 즉 이 지역에 있었던 어떤 나라를 수당으로 둔갑시켜 고구려와 대치한 역사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08.09.27 02:27
남서로 밀린 스키타이족인 이집트 황가의 파피르스 문자를 쓰는 자들과...한자를 조금 쓸 줄 알았던 돌궐(서고려)황가의 결합이 수당같습니다. 08.09.27 02:31
당시는 비쟌틴제국이 되겠죠... 08.09.27 02:34
돌궐과 고구려의 대결을 수당과 고구려의 대결로 왜곡시킨 것 같습니다. 포멘코가 말하듯이 아랍사와 중국사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서, 당서의 일부 내용은 당신라가 될 만한 것도 있다고 보겠습니다. 08.09.27 02:36
역사는 우리가 쓰는 것이므로, 우리의 선조들이 그들을 수나라 또는 당나라라고 부른 것이 아닐런지?..... 08.09.27 02:48
하(해=日)를 뜻하는 한(환.힌)이...변음됀 게...칸...탄...단...탕...당..일까 합니다...수"는..사로(신라)와 비슷한 음 같고...스키타이를 뜻함은 다 아실 테시고여... 08.09.29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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