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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칼럼

황하는 한수(漢水=한강)이며...한성백제가 곧 한(漢나라)여야 역사가 풀립니다.

작성자서정호|작성시간11.05.30|조회수797 목록 댓글 0

황하는 한수(漢水=한강)이며...한성백제가 곧 한(漢나라)여야 역사가 풀립니다.|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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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연구회의 연구 진도는...고구려와 신라까지 치받고 있는 실정이오나...

백제입장에선 대단히 서운하게도...대륙백제는 오간데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조상님들에 대한 평등한 기회부여으 차원에서 지가 오늘 운 좀 띠워 볼라 합니다.

 

 

 

당이 신라였고...신라가 중원 남부 전체다...?

물론, 통일신라기로 보면 대충 맞는 구도이겠으나...당과 신라는 혈연이 같아 보이긴 하나 엄연히 다른 정권으로 보이니...

통일신라는 그 남방...즉,티벳과 동남아 인도 아랍(사로)로 봐야 마땅한 줄로 압니다.

 

그럼, 백제는 어딜 빼앗낀 걸까여...?

당과 신라가 차지한 지역중 유라시아 남방의 전 지역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백제는 부여에서 시작함은 이미 정사입니다.

3천 궁녀님들이 뛰어 내렸다간 300분도 못 돼어 메꿔질 오늘날의 한반도 백마강 부여가 아닌...

전 시베리아(사백력)를 중심으로 세계를 통치했던 부여(불례=북례맥?)의 남방 제후국으로 출발했기에...남부여이고...

그 부여는...환(한)의 후예이기에...한(漢)이라고도 했다 봐야 하는 것이며...

 

고로,부여예서 출발한 백제는 부여의 남방 제후국이자...한(漢나라)이기에...그 도읍지가 부여성...한성..이래 돼는게 아닐까 합니다.

 

비류백제는 뭐냐고여...?

 

몇 년 전부터 누누히 말씀 드리오나...페르샤 지방인 듯 합니다.

오늘날의 티벳과 사천성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한성백제)의 서남방 아프칸 고개넘어 전 아랍(페르샤)지역을 이른다 하겠습니다.

 

제 생각엔...이 아랍지역에 있던 앗시리아가 신라(사로)의 선대문명로 보이며...

이를 중원의 선비계 진나라가 속지로 삼았다가...진이 붕괴후 앗시리아(사로)의 유민들이 고죽국(고리 천축국?)인 현 카자흐일대로 몰리고...

고구려는 이들을 한나라(한성백제)와 첨예하게 접전을 치르고 있던 현 신장성 일대에 풀어 논 것이라 사료됍니다.

 

 

물론,당시의 고구려는 시베리아(사백력)전체의 부예(부여=북례맥)와 동쪽 동부여...선비조선(위구르=왼쪽 고려)...

그 동쪽 동예(동이)지역까지 다 병합한 대제국였을 겁니다.

 

말 그대로 유라시아 남북을 고구려와 백제(漢)가 한수(황하)를 분계선으로 양분하던 남북국시대 같습니다.

 

고 중간에 신라(사로=사라센)이 낑겨 있다가...고구려의 용병 역할을 하다...패하면 고구려가 구해주다를 반복하다가...

고구려의 동서분열을 이용해...서돌궐(서 고구려=괵크 투르크)에 붙어 세를 불리다 백제 고구려를 같이 멸한게 라당연합 같습니다.

 

고로,서돌궐(서 고구려)는...당연히 당나라인 것이고...이들이 당(唐)인 이유는...그들은 한(환+해=하늘)을 "탄"이라 발음했고...

그러기에 한국을 당나라라 발음한 걸..중원 한자문명권이 한과 발음이 다르니...당연히 단(당)이라 표기했던 걸 겁니다.

역시,단군(탱글=텐그리=天고려)를 이르는 서역 고구려 사투리국명 같단 말씀 이지여...

 

페르시아가 사로(사라센?)에게 망한 연대도...비류백제(서남으로 찌그러든 백제)가 망한 연대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남부여(한성백제)가 한나라였을 거란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 국명이 똑 같단 겁니다.

당대 연도가 똑같았던 제국들이...뭔 헐일이 없어 남의나라 국명을 지네 도읍명으로한답니까...?

한(漢나라)=한성백제(漢城百濟)..똑같은 漢"이잖습니까...이건 상식적으로 같은 나라란 얘기밖엔 않 돼는 겁니다.

 

남부여(백제(漢))는... 아주 당연히...부여(부례=부리야트...북 예맥?)의 제후국이니...북방의 천자국 부여에 조공을 했을게 뻔 합니다.

 

그럼,당연히...역사서가 조작됐든 었쨌든...실수로라도 한나라가 부여에 조공했단 기록도 하나정돈 나와야 말이 됍니다.

 

 

제가 찾아 보니...인터넷에 이미 이런 글들이 나동았더군녀...

 

감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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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08.07.07 20:04

    http://cafe.daum.net/s0smindcontrol/EOvG/88 .bbs_content p{margin:0px;}

    1.부여국의 장례풍속을 기록한 <후한서> 동이열전 卷85

     

    夫余國,在玄兎北千里。南與高句驪,東與?婁,西與鮮卑接,北有弱水。地方二千里 本濊地也。

     初,北夷索離國王出行,

     

    부여는 현토의 북쪽 천리에있다. 남으론 고구려와 함께하고 동으로는 읍루와.서로는 선비와 접한다.

    북으로는 약수가 있다. 땅은 약 이천리가 되며 본래 예의 땅이다.초에 북의 색리국왕이 출행하였다.

     



     

    行人無晝夜,好歌吟,音聲不絶。其俗用刑嚴急,被誅者皆沒其家人?奴婢。盜一責十二。 

    男女淫皆殺之,尤治惡?婦,?殺,復屍於山上。兄死妻嫂。死則有幟無棺。殺人殉葬, 

    多者以百數。其王葬用玉匣,漢朝常豫以玉匣付玄兎郡,王死則迎取以葬焉。 

     

    밤에는 다니질 않고,음주가무를 좋아하고,형벌은 엄하고 급하며

    사람을 죽인자는 그 식구들을 전부 노비로 만들며 ,하나를 훔치면 12배로 배상하고,

    남녀가 음탕하면 모두 죽이고,악한처도 죽이며,

    시체는 산위에 놓는다. 형이죽으면 그 처를 맞이하며,

    사람이 죽으면 관을 쓰지 아니하고 깃발을 세우며, 많으면 백여명씩 순장을 한다.

    왕이 죽으면 옥으로된 匣을 사용하며 장례를 치루었으며 한나라때에 일상적으로 이 옥갑을

    현토군에 付했다.

     

    한나라가 부여에 항시 준비하여 가져다 바쳤다는 것,한나라는 황제라는 사람도 정작

      옥갑무덤이 없습니다.

     

    두우의 通典중에서

     

    自後漢時夫餘王葬用玉匣,常先以付玄菟郡,王死則迎取以葬。

    及公孫淵伏誅,玄菟庫猶得玉匣一具。

    晉時夫餘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傳以為寶,耆老言「先代之所賜也」。

    其印文言「濊王之印」。國有故城,名濊城,蓋本濊貊之地" ..

     

    후한이래 부여왕은 장례에 옥갑을 사용하였는데 늘 먼저 현토군에 청(付)하였다

    왕이 죽으면 바로 취하여 맞이하여 장례를 치뤘다.

    공손연이 기복하여 주살하기에 이르자(及公孫淵伏誅?) 현토의 창고에 유일하게 한 구가 전한다.

    진(晉)나라 때 부여의 창고에는 옥벽(玉璧)과 제기가 있었는데

    여러대에 걸쳐 전해진 물건으로 보물이였다.

    장로가 말하기를 선대로부터 하사되었다고 하는데

    그 인장의 글월에 전하기를 "예왕의 인"이라 한다.

    부여에는 옛 성이 있는데 이름난 예국의 성이다.

    모두 본래의 예맥의 땅이다. " 

     

    (이것이 바로 漢나라가 옥갑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夫餘王이 崩하면

    가져다 바쳤다는것이다. 付라는것이 그 의미인 것이다. 즉,漢은 夫餘의 제후국 !)

    이것이 바로 홍산문화 족장의 무덤에서 발굴되는 옥기를 부장하는 전통을 승계한 것으로 봄

     

    2. 홍산문화의 玉器부장 풍습.

     

    2-1.부장품

     



    2-2.옥기유물



     




    3.1954년 하북성邯鄲市에서 발굴된 <金縷玉衣>는 과연 

       漢代의 유물일까 ?

    3-1.지역적 근접성

     

    한단시는 하북성남부로서 산서성서남부 하남성북부와 산동성 서부와 매우 근접한 거리이다.

    발굴사에 보면 한나라시대의 옥의는 란주산 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볼 때 옥으로 만든 부장품문화는

    하북성 홍산 및 요녕성 릉원지역과 지역적으로 더 가까우며,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부여는 왕의 장례시 玉匣을 사용하여 장례를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한대에는 보통 濊의 지역인 현토군에 付하였다 되어 있다. 

     

    바로 한단시가 옛 현토지역이다.

     

    바로 그 현토지역에서 金縷玉衣가 출토되었다.

    한반도 낙랑에서는 죽은자의 구멍을 틀어막는 데 옥을 사용하엿다고 하며 

    한나라시대의 옥의는 魏나라 문제 황초3년에 페지되었다고 한다.

    옥의와 관련된 기술은 한나라 이후에서만 나타난다.

     

    3-2.하북성 한단시는 어디인가 ? 

     



     

    3.<금루옥의>의 실물사진.








     

     

    <금루옥의 사진은 네이버 cliper님의 사이트참고 -감사를 표합니다> 

     

    운영자 씀.

    출처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 도불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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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습니까...?

     

     

    당대 중원을 ..아니, 서아시아까지 주름잡았단 한나라가...부여에 조공을 했답니다.

    그리고 그를 뭔 자랑이란듯 그 후대인 후한이 기록합니다...?

    아예 조공물품을 미리 만들어 현토(현도)에 보관해 놨을 정도라니...잠시,전란을 피해 고육지책으로 조공한게 아닌...

    아예 속국(제후국)이거나 같은 나라란 얘기밖엔 않 되는 겁니다.

     

    부여를 정식 계승하고 끔찍히 따랐던 나란...국명만 봐도 남부여(백제)가 틀림없는 것이고...그 행적이 한나라와 같으니...

    그 한나의 수도는 한성일수밖엔 없고...그 나란 한성백제란 말이 됍니다.

     

     

    한(한성백제)이 비류백제를 먹음은...앗시리아를 선비계 진이 먹고 망한 공백을 자연스레 침투한 것이고...

    이 진의 유민들은 백제(한)을 피해 동북의 북부여(고구려)에 의탁했을 것이며...

    고구려는 이들을 자신들과 남부여가 천자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신장지구에 떨궈놨을 것이며...

    돈황의 유물유적은...동으로 망명한 앗시리아(아라사=사라=사로)인 실라의 재 발흥지라 하겠습니다.

     

     

    삼국사에...

    근초고왕이 고구려와 대방고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했다 했던 그 "대방"지역은...태본(태봉)이며...토번(티베트)같단 말씀도 덛붙이겠습니다.

     

    동남아 왜놈들이 지들을 자퐁(재본)이라 했음도..이 대방(태봉=토번)에 있지 않을가 예상합니다.

     

     

    고구려도 물론,고조선이전 환국의 후예이라... 한"이라 했고...중원 남부족들은 그들을 훈,훈누(한료=훙노)라 비칭했겠으나...

    고구려는 북한인 셈이고...백제나 통일신라..당나라는 남한이라 봐야 하겠으며...

    한을 계승한 부예(북예맥?)를 정통계승했던 백제(한성백제)가 명실상부한 한이니...한나라란 지명을 애용했을 것이라 사료돼기도 합니다.

     

     

    윗 글에서 재미있는 하나는...현토(현도)입니다.

    왜 부여에 바칠 소중한 보물을...자신들의 영토 깊숙히 박아 놔야지...변경 접경지인 현도(현토)에 보관해 놨을까여...???

     

    *나름대로의 정답) : 현도(현토)는...오늘날의 몽골 동부 헨티일대로...고대엔 현 만주와 몽골 동부를 현도(현토)라 했다.

    이곳은 대륙의 천자국 북부여도 손을 못 대는 신성한 소도이다...환국의 선대인 예맥(례)의 발원지다.

     

     

     

    우리가 알고있는 고조선도...동과 서에 두 개라 보입니다.

    이조(차이나)와 그 전신인 지나(쉬나=신라)가...서북방 흉로..구리(고구려)가 계승한 고조선은 앗시리아(앗센,에센,아이신)이시고...

    교황이나 유다들이 쓰던 베레모를 쓰신 분으로...

     

     

    원 조선인 선비조선의 단군님은...근세 이전에는 텐군(천군)으로 발음돼시며...역시,종국의 공통발음은 "탱글이"가 돼고...

    텐그리(탱글)은...서고려인 "돌궐"이 한(하늘님=황제)인 임금(신)을 이른 변음이라 하겠습니다.

     

    탱그리(텐고려)"의 임금은...태인(대인=大人)이며...

    그 영향은 유라시아 극서까지 미쳐..북유럽의 대인족들도 이들의 혼혈일까 합니다.

    국명에 대(태)자가 앞에 붙는 상당수의 나라는...차가타이몽골계(서몽골) 문명권으로 봄도 어떨까 싶습니다.

     

     

    어쨋거나...

    漢은...고구려도 맞겠으나...역사가 말한 전통적인 중원남부를 중심으로 중앙아도 다스렸던 그 한나라는...한성백제가 분명할까 합니다.

     

     

    그분들(고 삼국의 영령님덜...)께서

    너무 많은 말씀들을 서로 먼저 하셔서...제 머리가 지금 난장판이라서...

    넘 시끄러운 상태로 글을 올려...논점이 정리가 않되고 어수선한 점 사과드리옵니다.

     

     

    반대의견이 있으신 선생님들께선...

    그럼,왜 백제가 현 황이 이남 티벳과 사천성...비류(페르샤)에 없었는지를...자상히 지도해 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  
     
    무플방지...ㅡ. .ㅡ 08.11.29 10:06
     
    오랜만에, 또 한번의 놀라운 접근을 보이시네요.... 백제가 한나라일 수 있다...이것입니다.... 저도 유사한 접근을 하였습니다....동양의 당제국시절 아바르라는 유목민은 현재의 헝가리부근에서 세력을 떨칩니다... 그러나, 그곳은 불가의 전설이 있는 부여족의 근거지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저의 의문은 아바르가 신라의 세력인지 아니면, 불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세력인지 혼란스러웠었거든요.... 08.11.29 11:50
    집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인가 제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풀수 있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08.11.29 11:51
    네...저도 요즘 그 아바르(아불?=아파치?)문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유연의 유민들이고...정확히 몽골로이드들이란 분석들이 압도적이더라고여... 08.11.30 23:32
    백인+황인+혼혈등이죠.... 이 것을 풀면, 한->당->송 등의 근원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8.11.30 15:41
    서구인들 자신들이 몽골로이드라 하는데 궂이 황백혼혈이라 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물론,그 주체 지배세력과 문명이 그렇단 얘기고...속민(백성)들은...백황 혼혈의다민족 이였을 겁니다...삼국과 고려,흉로(훈누)한(훈)...킾차크한국...글안,야인여진... 모두 그랬으리라 보입니다...중요한 건...때마다 더 동쪽에서 더 황인종 스런 문명들이 이들을 밀어낸단 겁니다...^. .^ 08.11.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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