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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의 저자가 누군지 정말 궁금합니다...!!!
* 추신:
밑의 ,이선생님 댓글론
출처는 송동건 저. [광개토대왕 훈적비와 고구려]. 신아사. 2004년 8월 발행이 라시네네요 ...
엄청난 분이십니다.!!!
저 개인적으론...고대사가 한 번에 정리되는 ...느낌 확~! 와닫는 중요한 자료를...
인터넷 검색중 우연찮게 주워 왔습니다.
인테넷 뭔 역사 토론방의 일본방에 있던 글인듯 합니다.
솔렁고(고려)는...항상 "솔롱고 메르키트"로 붙여 불렀답니다...몽골사의 메르키트가 고려족이란 얘깁니다.
무쿠리(몽골) 고쿠리(고려)...모두 고구려랍니다.
고려(무구리)는...유라시아 전체의 황제들을 동맹제에 불러 줄 세워 천제를 지내던...천제(天帝)의 나라랍니다.
현도군은...제 예상대로....현 외몽골이랍니다...요동은 위그르가 있던 우루무치 일대고여...
을지문덕"의 벼슬은...천자의 바로 밑인"가한"이라 합니다.
막리지는 2품 벼슬이고...가한이 1품인것이고...연연으로 예상되는 분국의 가장 높은 황제를 이른답니다.
현재의 "각하(대통령)"....신라의 "각간"이란 벼슬도 이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실위, 읍루(음늬),말갈,고리,거련...이 모두는 역사가 말한 말갈 7부니의 개념같이...
어느 특정 고정지역이 아닌...늘 함께 이동하고 정복활동하고 정착하던 한 덩어리의 다민족 공통체라 봐야 하며...
역시, 그 중심은...영고탑(신장성?) 있었을 알타이를 중심으로 생각됩니다.
행여...또...
이 글 보시고...거 봐라...아발스가 고려니...고구려의 중심은 파미르 이서다...란 주장들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분명, 아발스는...고구려에서 서역에 살림을 꾸렸던 서역 분국인 나라의 상국이라 해습니다.
알타이가 중심입니다...알타이...황금태산.
기존의 고정관념들 다 버리시고...음미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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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알려진 고려=무쿠리=메르키트=말갈-아발스 [1] | hydi95 yudi****
- 번호 58303 | 2008.09.29
- 조회 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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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스(Avars): 서양에 알려진 고려 국명
돈황석실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동양학자 Paul Pelliot는 [Notes on Marco Polo]의 "Cauli"항에서 "그것은 Kao-li, Corea"라 하고, "중앙 아시아에 알려진 고대의 또 다른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무쿠리(Mukuri)라 하고 티베트어로는 무그리그(Mug-lig)"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무쿠리"는 당(唐)의 예언(禮言)이 편찬한 [범어잡명]이란 책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범어잡명]에는 "고려(高麗), 무구리(畝俱理)"로 되어 있고, 그 아래 고대 산스크리트어가 표기되어 있다. 이 "무쿠리"가 후에는 음이 변하여 "메르게드, 메르키트, 또는 메크리트"등으로 변한다. [몽고원류]의 독일어 번역판에서는 "Ssolongos Merged"라는 것이다. 어떤 서양학자는 "무쿠루(Mukkuru)"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틀렸다.(E.H. Parker, [A Thousand Years of the Tartars].) 이 국명은 유연국(柔然國)의 시조라는 "목골려(木骨閭)"의 중국식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ru"가 "려(閭)"의 음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려(閭)"에는 "-ru"가 아니라 "-ri"음니 있다. "유연국"은 실은 고구려의 "무쿠리"국인 것이다. 그 영토는 지금의 몽골에서 서양의 비잔틴제국에 까지 뻗어 있었다. 또한 "말갈(靺鞨)"은 "메르게드"의 한문식 표현이다.
원(元)의 쿠릴라이칸(世祖) 시대에 몽골의 일부였던 패르시아의 역사학자 라시드 앗딘(Rashid al-Din)은 백과사전적 세계역사를 저술한 학자다. 그의 책 가운데 [부족지]가 있다. 그 내용중에 "메르키트 종족"이란 항목이 있다. 메르키트는 일명 "메크리트(Mekrit)"라고도 한다면서, 그 종족을 구성하는 부족으로 네개를 소개하고 있다. "아우할(Auhar), 무단(Mudan), 투다크린(Tudaqlin), 지운(Jiun)"등이다. (최근 이 책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는데 "아우할(Auhar)"을 "우하즈(Uhaz)"라고 적고있다. 아마 다른 필사본을 근거로 한 것 같은데, 라시드 앗딘의 책은 19세기말 러시아의 Berezine가 석문하고 러시아어로 번역한 것이 가장 권위가 있고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이것을 근거로 한다.) 러시아의 학자인 미놀스키(Minorsky)가 고대 페르시아의 지리서를 번역, 주석한 책이 있는데 그 중에 "사릴(Sarir)"이란 나라에 관한 설명이 있다. "사릴"은 "산상의 황금 보좌의 군주"란 뜻의 아랍어를 줄인 말이다. 그리고 이 사릴국은 "위대한 정복민족"인 "아발스(Avars)"가 지배하는 나라다. 지금의 코커서스 지방의 다게스탄(Daghestan)에 있었다. 그의 고증에 의하면 "아우할"이 고대 아르메니아어를 거치면서 음이 변하여 "아발"이 되었다고 한다. 민족을 뜻할 때는 복수어미가 붙어 "아발스(Avars)"가 된다. 서양학자들 간에는 오래 전 부터 유연국이 아발스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랍인 기록에는 "아바레스(Abares)"라고도 하고 러시아 최초의 [편년기]에는 "오브리(Obry)"로 표현되기도 한다. [몽고원류]의 몽골어 원문을 독일어로 번역한 책에서는 "소롱고스 메르게트 (Ssolongos Merged)"가 바로 "메르키트 종족"인 것이다. [원조비사]에서는 메르키트 앞에 "소롱가", 한문본에는 "고려"가 빠져있다. 몽골어의 원본을 없앴다가 후에 몽골이 망한 후에 재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몽고원류]나 [몽고황금사강]등에는 모두 메르키트 앞에 고려 또는 소롱가란 표현이 있다.
[부족지]에 의하면 징기스칸의 두번째 황후이고 서역 원정에 동행한 "쿠란(忽蘭) 카툰"은 고려 메르키트족의 왕인 "다일 우순"의 딸이다. 징기스칸은 후에 쿠란 카툰의 아버지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죽여 버리고 그 부인을 징기스칸의 아들인 "오고타이 칸"에게 준다. 그 녀가 "투르게네 카툰"이다. 딸은 아버지인 징기스칸이 차지하고, 그 딸은 징기스칸의 아들에게 준 것이다. 그들사이에서 네명의 자식이 태어나는데 첫째가 세번째 칸이되는 "구육 칸"이다. 그의 황후도 역시 메르키트 출신의 "오굴 카이미시 카툰"이다. 적어도 라시드 앗딘이 죽기 전 까지의 몽골 칸의 황후(카툰)은 대개가 "소롱고스 메르키트 종족" 출신이다. "소롱고스(Solongos)"는 물론 몽골어로 고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어의 [고어대사전]에는 "무쿠리고쿠리"란 단어가 있다. 그 설명에는 "무쿠리"는 몽고(蒙古)를 뜻하고, "고쿠리"는 고려(高麗)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이 생긴 시기는 몽골군이 일본을 침입할 때 생긴 말인데, 보채는 아이를 달랠 때 "무쿠리고쿠리"가 온다고 하면 어린애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몽골"이 실은 "무쿠리"에서 유래한 국명이라는 증거다. 그 뿐이 아니다. 요(遼)와 금(金)이 모두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했다. 중앙 아시아에서 몽골이 망한 후에 티물(Timur)이 몽고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제국을 건설했으며, 그 후손이 인도에서 "무갈 제국"을 새운다. 영국의 식민지가 될 때 까지 존속한다. 고구려가 얼마나 위대했으면 그 정통을 이어 받았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거의 20세기에 까지 있었겠는가.
아발스로 알려진 고구려는 A.D. 461-5 년에 비잔틴제국 인근의 "사빌족(the Sabirs)"를 서쪽으로 몰아 내기도 했다. A.D. 551 년에 다시 비잔틴제국을 공략한 적이 있는데 배후에서 나타난 돌궐족(T'u-chueh)의 공격을 받아 공격은 실패로 끝난다. 비잔틴제국의 역사학자 테오피락트(Theophylactus Simocatta)가 613년에 저술한 [역사]란 책에 의하면 "일부는 무크리(Mouxri, Mucri)국으로 도주하고 다른 일부는 탁발씨(拓跋氏-Taugast)에게로 도망한다." 즉 유연국과 북위(北魏)로 갔다는 것이다. 테오피락트의 "무크리"가 무엇이냐에 관해 오랫동안 서양학자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역사]를 영어로 번역한 책에서 "Mucri는 반도 고려"라고 주석하고 있다. 즉 Mukuli가 Mouxri(Mucri)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유연국에서 야장으로 지내던 신라가 반란세력을 모아, 고구려에 저항하면서 돌궐이 성립한 것이고 보면, 두 나라의 전쟁은 서양에서 까지 진행된 샘이다. 번역의 주석이 "반도 고려(peninsula Korea)"라 한 것을 보면 고대 삼국이 반도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고정 관념은 쉽게 깨지 못할 것 같다. 테오피락트의 기록이 갖는 또하나의 의의는 중국정사가 "북위(北魏)"와 유연국이 서로 적대 관계인 것 처럼 기술해 놓았지만 실은 두 나라는 같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이란 것이 명백해 진다. 실제로 유연국의 공주가 북위로 시집 온 사실은 있다. 그러나 테오피락트의 책에 의하면 그런 관계는 일회성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騎兵)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의 경내에 침입했다가 백제의 왕이 이끄는 장군들에게 대패한다"는 기록이 있다. 보병도 아니고 기병이 백제를 공격할려면 고구려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백제는 반도에 있는 백제가 아니다. 그 때에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점거하고 있다는 때이다. 따라서 백제는 대륙의 서북에 있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는 [위서.서역전]에 있다. "무령왕"의 능이 발국되었는데 그 안에 있는 지석들 어디에도 "무령"이란 이름은 없다. 어릴 때 이름인 "사마왕(斯麻王)" 이라고만 되어 있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장군들 성 가운데 "동성자(東城子)"라는 석자의 성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현행의 표주교감본 25사의 [위서]에는 "동성자우량(東城子于亮)"이란 이름이 보인다. 고유명사는 모두 옆줄을 그어 표시를 하고 있는데 현행 [위서]에는 "동성자"와 "우량"에 각각 옆줄을 그어 놓았다. 다시말해 "동성자우량"은 백제인이란 뜻이다. [일본서기]에 보이는 "동성자"란 성이 여기에도 쓰여 있기 때문이다. 동성자를 일본어로 읽으면 "히가시기시"가 된다. "키르기스"와 매우 음이 가깝다. "무령(武寧)"은 "우량(于亮)"과 음이 비슷하다. 둘 다 "우링(U-Ling)"으로 읽었을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성립한다면 "무령왕능"의 백제왕과 실제의 "무령왕"은 다른 인물이다. 동성자우량과 무령왕(시마왕)의 시기는 513년 경으로 시기도 일치한다. 두 왕을 [삼국사기]는 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뿐더러 능에서 발견된 기록에 죽고나서 추증하는 시호인 "무령왕"이란 이름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서 사마왕의 능에서 나온 지석에는 황제가 죽었을 때나 사용한다는 "붕(崩)"이란 자가 쓰이고 있다. 키르기스는 당에 의하여 견곤도호부가 설치되는 곳이다. 백제가 서역에 있었다는 것은 중국 학자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어석]이란 금석문의 고전을 쓴 엽창치가 백제승려가 기증하고 갔다는 불경을 봉안한 탑에 쓰인 내용의 진위를 고증하면서, 백제승려의 귀국길이 장안에서 옛 고창국이었던 서주(西州)를 거쳐 "서쪽으로 간다"고한 것을 두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백제인이 맞다고 결론 지은 글이 있다. (엽창치, "香泉寺經塔跋," 顧燮光 著. [몽벽이석언]권5.)
이 아발스(the Avars)는 일부가 카스피해 연안 에서 "사릴"이란 국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후에 도착한 아발스는, 지금의 헝가리가 있던 고대의 로마 속주였던 "파노니아(Panonia)"에서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 제국은 유럽을 통일한 샬르르 마뉴 대제에 의해서 정복당한다. 신성로마 제국의 샤를르 마뉴 대제는 파노니아의 아발스 제국을 정복한 것이 유럽통일의 마지막 정복사업이었다. 그것이 A. D. 795년이고 A.D. 800년에는 신성로마재국의 황제로서 로마에서 대관식을 거행한다. "아발스 제국"을 멸망시키고서야 비로소 "신성 로마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고구려가 언제 부터 "유연국"을 가졌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도 있다. 이 점은 [삼국지.위지.고구려전]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 건안중(建安中- A.D. 196-219 년)에 고구려왕 이이모(伊夷模)가 작은 아들이면서도 큰아들 발기(拔奇)가 불초(不肖)하다고 나라사람들이 형을 두고 동생인 이이모를 왕으로 추대했다. 마침 그 때 공손강이 군대를 출격시켜 고구려를 파괴하고 읍락을 불태워 버린다. 형인 발기는 형이면서 왕이 못된 것을 원망하던 차라 공손강에게 가서 항복하고 비류수에 돌아가서 산다. 즉 "홀본"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 때 이이모는 "다시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 (更作新國).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발기도 결국엔 요동으로 가서 사는데, 구려에는 그 아들을 남겨 두었다." 맥락으로 봐서는 이이모가 "갱작신국"했다는 곳이 요동이고, 발기도 마침내 그 동생인 왕에게 가서 동생인 왕에게 승복한다. [남사]등이 고구려가 "요동을 점거했다는 것"이 이 요동일 것이다. 요동은 지금의 요동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삼조북맹회편]에 의하면 송의 두 황제가 금(金)나라에 잡혀갔을 때 "오국성(五國城)"일대를 요동이라 했다. 여기는 위굴이 있던 곳이다. 명의 도종의가 쓴 [철경록]에는 "고려는 북(北)을 별십팔(別十八)이라 한다. 중국말로는 연오성(連五城)이다."라 한다. "오국성"이나 "연오성"은 "베시바리크(Beshibalik)"를 말한다. 한문으로는 "別十八"이라고도 표현한다. 같은 곳이다. 다시말해 이이모가 "갱작신국"한 "요동"은 대륙의 서북이다.
이병도는 이 "갱작신국"을 평양으로 천도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오다. 분명 "갱작신국" 즉 "다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고구려 삼경(三京)의 하나인 평양으로 천도한 것을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겠는가. 또한 그 표현도 "다시(更)" "새로운 나라(新國)"를 "만들었다(作)"고 했다. 마치 주몽이 홀본에 건도하여 나라를 새운 것과 같은 것이다. 고구려가 새로운 나라를 정복했으면 새로운 영토를 얻은 것이지, 어째서 나라를 아예 새로 만든 것이라 표현했겠나. 예컨데 [위지.동옥저전]의 경우는 분명 새로 영토를 획득한 것이었다. 전 중국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가 크기에 있어 그에 못지 않는 "새로운 나라를 다시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위서(魏書]]의 표현에 의하면 그 나라는 군장을 "카칸(可汗)"이라 하는데 중국의 "황제(皇帝)"와 같은 것이라 했다. 또 [구당서]에 의하면 고구려는 제사가 많은데 "카칸신(神)"의 제사도 모신다고 한다. [한원]에는 "황제들을 동맹의 사당에 줄 세워 놓고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낸다(饗帝列東盟之祠)"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연국이 304년에 사륜(社崙)이 왕이 되어 서역 원정을 떠나 "이스텔(the Ister)강" 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7년 만에 돌아 와서 처음으로 "카칸"이 된다. 이스텔강은 카스피해로 흘러 드는 강의 지류다.
고구려가 망한 곳도 유연국에서다. 수양제가 남조의 진(陳)을 멸망시켰을 때 고구려는 북으로 간 것이다. 따라서 을지문덕은 유연국의 카칸이다. [통감고이]에 의하면 "을지문덕"의 성은 "위지(尉支)"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위지(尉遲)씨"이다. 중아아시아의 "코탄(Khotan)국"의 왕이다. [수서]에 의하면 수고조가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떠나기에 앞서 장문의 조서를 내리는데 그 내용중에 "지난 해에 리찰계대(利察稽大)는 고려(高麗),말갈(靺鞨)에게 격파 당했고, 사비설(娑毘設)은 또한 흘지카칸(紇支可汗)에게 피살 당"했다고 한다. 고려와 말갈이 같은 나라이고, "흘지카칸"은 [수서]와 [삼국사기]가 말하는 "을지문덕(乙支文德)"일 수 밖에 없다. 고구려의 관등은 9 품까지 있는데 말년에는 2 품의 막리지인 연개소문만 등장한다. 1 품은 "토졸(吐拙)"이란 명칭만 있지 역사에는 한번도 누구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연국의 "카칸"이기 때문에 고구려와 결부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장군 이적(李勣)은 본성이 서씨(徐氏)다. 그가 죽고 나서 당 고종은 그의 공을 높이 사서 생전에 전공을 세운 세곳의 산 모양으로 그의 묘역을 조성했다. 그 산들은 철산(鐵山), 음산(陰山), 그리고 울독건산(鬱督건山)이다. 고종이 죽고 나서 무후(武后)가 제위를 차지하자, 이적의 손자는 본성을 회복하여 서경업(徐敬嶪)으로 행세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화가 난 무후는 그 할아버지 이적의 묘총을 파 없애게 했다. 그러나 깊은 안개가 3일 밤낮을 걷히지 않아 묘를 굴착하는 것을 중지했다. 송(宋)의 왕당이 저술한 [당어림]에는 이 사실을 기술하면서 이적의 묘에 조성한 세개의 산은 모두 고구려의 산들이라 한다. "울독건산"의 "-건산"은 두 개의 한자가 모두 산을 의미한다. 한사군의 하나라는 현토는 "원토(元兎)"라고도 쓴다. 여기의 "원"자는 고음이 "원"이 아니다. [설문]에 의하면 "울(亐)"로 발음하라고 한다. 고구려는 오음(吳音)의 원칙으로 한문을 읽었으니까 "L"로 끝나는 종성은 "T"로 발음한다. 따라서 "元兎"는 "웃토(Ut-to)"가 된다. "울독"도 "웃도(Ut-to)"이다. 두 단어는 같은 음인 것을 알 수 있다. [한서.지리지]는 고구려현을 현토군의 속현으로 편입했다고 했으니 결국 "홀본"과 "현토"는 같은 곳이란 뜻이다. 즉 "울독건산"은 고구려의 "현토산"이란 의미다. 학자들은 이 산은 현재 몽골의 북쪽에 있는 항애산(杭愛山)으로 비정한다. 이 산의 남에는 "세렝가(Selenga)강"이 흐른다. 이 강은 카라코룸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가다가 바이칼호수 부근에서 북상하여 동쪽에서 바이칼호로 유입한다. 수양제의 "살수(薩水)"는 당 시대에는 "살하수(薩賀水)"로 나오고, 돌궐전에서는 "사릉수(沙陵水)"로 나온다. 모두 같은 강을 지칭하는 것이며 바로 "세렝가강"을 의미한다. 수양제의 백만대군이 몰살했다는 강은 바로 이 "세렝가강"에서 였다. Selenga강이 "살수(薩水)"인 것이다. 수양제의 100만 대군을 수장시킨 장군은 "을지문덕"이 아니라 "위지문덕(尉遲文德)"이며 "흘지카칸(紇支可汗)"이며 중국의 황제와 동격인, 고구려의 1 품이었다. 막리지인 연개소문 보다 지위가 높은 장군이다. [한원]에 인용된 [고려기]에 의하면 막리지는 "마하하라지(莫何何羅支)"라고 읽었다.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마하(Maha) 라지(Raj)"를 강한 후음으로 읽었다는 뜻이다. "마하라지"는 "대왕(大王)"을 의미한다.
아발스가 서양으로 진출하여 현지에서 식민 국가를 건설했다면 그 후손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전에 체코인의 DNA를 검사한 결과 상당수가 아발의 DNA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릴"을 차지했던 아발스는 처음에는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후에는 이스람교로 개종했다. 그들의 언어는 한 때 다게스탄 일대의 국제 공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사릴의 아발스는 비록 독립국가는 없어 졌지만 그 인근에서는 대대로 사회적 지도계급으로 대접 받았다.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대제가 남으로 훅해를 확보하고저 한 시기를 역사소설로 저술한 책이 있는데, 그 내용중에는 여전히 아발스는 귀족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Lesley Blanch. [The Sabres of Paradi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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