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 위치(位置)의 중요성(重要性)
○ 아래의 신당서(新唐書) 지리지(地理 志) 중에서 『기미(羈靡)주』 관내도(關 內 道)속의 <하주(夏州)도독부>편을 보면 지명(地名)과 종족(種族) 또는 나라이름을 설명하고 해설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대륙(大陸)의 역사서(歷史書)는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대륙조선(大陸朝鮮)이다』라는 것을 고증(考證)해 주는 자료(資料)라고 확신(確信)한다. 【기미(羈靡)란 종속(從屬)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복속된 자들을 끌어들여 만든 고을이란 뜻이다.】
● 新唐書卷四十三下.志第三十三下.地理七下
《關內道 / 羈 縻 州 : 唐興,初未暇於四夷,自太宗平突厥,西北諸蕃及蠻夷稍稍內屬,即其部落列置州縣.其大者為都督府,以其首領為都督,刺史,皆得世襲.(中略).突厥,回紇,黨項,吐谷渾隸關內道者,為府二十九,州九十.突厥之別部及奚,契丹,靺鞨,降胡,高麗隸河北者,為府十四,州四十六.突厥,回紇,黨項,吐谷渾之別部及龜茲,於闐,焉耆,疏勒,河西內屬諸胡,西域十六國隸隴右者,為府五十一,州百九十八.羌,蠻隸劍南者,為州二百六十一.蠻隸江南者,為州五十一,隸嶺南者,為州九十三.又有黨項州二十四,不知其隸屬.大凡府州八百五十六,號為羈縻雲.》
《관내도 / 기미주 : 당(唐)이 일어나, 처음 사이(四夷)를 평정할 겨를이 없었으나, 태종(太宗)이 돌궐(突闕)을 평정하고, 서북(西北)의 여러 이(夷)와 만이(蠻夷)들을 하나하나 내속시켜, 곧 그 부락들에 주현(州縣)을 설치, 큰 곳을 도독부로, 그 수령은 도독, 자사로 모두 세습(世襲)토록 하였다.(중략). 돌궐(突闕). 회흘(回紇). 당항(黨項). 토 곡 혼은 관내도(關內道)로 예속(隸屬)시켰는데, 부(府)가 29, 주(州)가 90개였다. 돌궐(突闕)의 별도 부락과 해(奚). 글란(契丹). 말갈(靺鞨). 항복한 호(胡). 고려(高麗)는 하 북(河北)에 예속시키고, 부(府) 14, 주(州)가 46개였고, 돌궐(突闕). 회흘(回紇). 당항(黨項). 토 곡 혼(吐谷渾)의 별도부락과 구차. 우전. 언 기. 소 륵의 하서(河西)에서 내속(內屬)한 여러 호(胡)는 서역(西域)의 16 개 나라는 농우(隴右)에 예속시켜, 부(府) 51, 주 198 개였다. 강(羌)과 만이(蠻夷)는 검남(劍南)에 예속시켜, 주 261개였다. 만이(蠻夷)는 강남(江南)에 예속시키고, 주(州)가 51 개였는데, 령 남(嶺南)은 93 주(州), 또 당항(黨項)의 주(州)가 24 개인데, 예속된 것은 알지 못하는데, 크게 무릇 부주(府州)가 856개였으며, 칭하기를 기미(羈靡)라 하였다.》
● 위 글 <突厥之別部及奚,契丹,靺鞨,降胡,高麗隸河北者,為府十四,州四十六>에서 “모두를 하 북(河北)도에 예속했다”>는 기록을 보아야 한다. 『 하 북(河北)이란 하(河)의 북쪽지방 』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하 북 성(河北省)지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河)의 북쪽이란 역사서에서 말하기를, 청해(靑海)성으로부터 감 숙(甘肅)성. 영하(寧夏)성. 섬서(陝西)성 북방지대를 일컫는다.』
시대적으로, 또는 왕조(王朝)에 따라 “하 북 (河北)”지방은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였으나, “하 북(河北)”은 청해(靑海)성 북방으로부터 감 숙(甘肅)성 북방지대를 일차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고려(高麗 : 고구려)”는 하 북(河北)도에 예속시켰다는 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突 厥 / 右 隸 夏 州 都 督 府 : 雲中都督府,貞觀四年析頡利右部置,僑治朔方境.領州五:貞觀二十三年分諸部置州三.捨利州以捨利吐利部置.阿史那州以阿史那部置.綽州以綽部置.思壁州白登州貞觀末隸燕然都護,後復來屬. 桑乾都督府,龍朔三年分定襄置,僑治朔方.領州四:貞觀二十三年分諸部置州三.郁射州以郁射施部置,初隸定襄,後來屬.藝失州以多地藝失部置.卑失州以卑失部置,初隸定襄,後來屬. 叱略州呼延都督府,貞觀二十年置.領州三:貞觀二十三年分諸部置州三.賀魯州以賀魯部置,初隸雲中都督,後來屬.葛邏州,以葛邏,挹怛部置,初隸雲中都督,後來屬跌州初為都督府,隸北庭,後為州,來屬. : 돌궐 / 우례(右隷) 하주도독부 : 운 중(雲中)도독부는 정관 4년 힐 리(頡利)부를 쪼개어 그 우(서)부에 설치하였으나, 임시로 삭방(朔方)지경에서 다스렸으며, 다섯 주를 거느렸다. : 정관 23년에, 여러 부(部)를 나누어 3주(州)를 설치하였다. 사리 주(捨利州)는 ‘사리 토이 부’를 치하고, 아사나주는 아사나부를 설치, 작(綽)주는 작(綽)부로 치하고, 사벽 주와 백 등(白登)주는 정관(貞觀) 말에 연연(燕然)도호에 예속했다. 후에 다시 와 속했다. 상건도독부, 용삭 2년에 정양(定襄)을 나누어 치하고, 임시로 삭방에서 다스렸으며, 4 주를 거느렸다. : 정관(貞觀) 23년 여러 부를 나누어 세 개의 주(州)를 설치했다. 욱 사주는 욱 사시부로 하고 정양(定襄) 예속되었으나, 후에 다시 속했고, 예 실주는 다지 예실 부로, 비실 주는 비실부로 하고, 처음 정양에 예속하였다가 다시 찾아왔다. 질 략 주 호연도독부, 정관 20년 설치했으며, 3 주를 거느렸다. : 정관 23년에, 여러 부를 나누어 세 주를 설치하였고, 하 노주는 하 노부로 하였는데 처음 운 중(雲中)도독에 예속했다가 다시 찾아 예속시켰다. 갈라(葛邏)주는 갈라(葛邏). 읍 달(挹怛)부를 설치하고, 운 중(雲中)도독에 예속시켰으나, 후에 내속시키고 질(跌)주도 처음 도독부에 예속되었으나, 북정(北庭)에 예속시켰으나, 후에 주(州)가 되어 다시 와 속했다.》
● 위의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 운 중(雲中)도독부니, 상건도독부니, 백 등(白登) 주니 하는 말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현 대륙의 산서 성(山西省) 북방지역이구나.”할 것이다. 100 이면 99명이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위 원문(原文)은 하주(夏州)도독부의 실체를 밝혀주는 자료하고 볼 수 있다.
특히 백 등(白登)은 산서 동북(東北)방에 있다하고, 그 증거로 전한(前漢)시절의 漢(한)고조 유방(劉邦)과 흉노(匈奴) 선우의 전투를 떠올릴 것이다. 당시 한(漢)고조 유방과 30만 대군은 평성【平 城 : 현 산서 성 대동(大同)】으로 북상(北上)하여 흉노(匈奴)를 토벌(討伐)하려 하였는데, 이대 모돈(冒頓) 선우도 기마(騎馬) 30만을 이끌고 대동(大同)주위에서 일대 전투(戰鬪)를 벌였으나, 한나라 군대는 흉노(匈奴) 기마(騎馬)에 패하여, 동쪽에 있던 백 등 산(白 登 山)으로 피했다가 완전 포위(包圍)를 당하였다. 7일째 유방(劉邦)은 진평【陳平 : 한고조 유방의 군사】의 묘책(妙策)으로, 흉노(匈奴) 선우 비(妃)인 “알씨(閼氏)”에게 뇌물(賂物)을 주고, 모돈(冒頓)이 포위(包圍)를 풀자 살아 돌아왔다고 전한다.
과연 위 설명대로 “백등(白登)”이란 지명이 “백등 산”에서 유래하며, 현 산서 동북방에 있을까?
● 위 글에서 《갈라(葛邏)주는 갈라(葛邏). 읍 달(挹怛)부를 설치하고, 운 중(雲中)도독에 예속시켰으나》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읍 달(挹怛)』이라는 다소 접하지 못했던 이름이 등장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읍 달(挹怛)”이란 나라이름으로, 현 중앙아시아 지방에 있던 나라이름이다. 이 나라의 수도(서울)는 바로 “아무다리아강” 남쪽 2백리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당시 “읍 달(挹怛)”은 “읍 달(挹怛)부”로 하여 운 중(雲中)도독부에 예속시켰다고 하니, 과연 “운 중(雲中)도독부”의 지리적 위치가 어디일까 가장 궁금한 것이다.
통상적 역사해설【반도사관과 식민사관】에서는 현 <산서 동북방 지대>를 아울렀던 옛 행정편제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주장할 것이나, 이는 전적으로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된 역사해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唐)나라 역사서인 당서(唐書)에서 직접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곧 “운 중(雲中)도독부”는 서역(西域)지방인 현 “신강(新疆)성 지방”의 서쪽지방을 다스렸던 행정조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증거(證據)와 고증(考證)은 당나라 역시서인 당서(唐書)로 가능하며, 또한 그 고증(考證)은 당시의 당(唐)의 대표적 역작이라고 하는 통전(通典)의 내용으로 하겠다.
=========================================================================
❈ 아래 통전(通典) 서융(西戎) 5 편을 잘 보자. 본인(本人)이 『조선사(朝鮮史)는 대륙(大陸)에서 벌어진 조선(朝鮮) 백성(百姓)들의 삶의 일기(日記)』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根據)와 고증(考證)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
● 通 典 卷 第 一 百 九 十 三 . 邊 防 九 / 西 戎 五 / 挹 怛 은 ;
<康 居. 曹 國. 何 國. 史 國. 奄 蔡. 滑 國. ➡【 ( )噠 挹 怛 同 】天 竺. 車 離. 師 子 國. 高 附. 大 秦. 小 人. 軒 渠. 三 童. 澤 散. 驢 分. 堅 昆. 呼 得. 丁 令. 短 人. 波 斯. 悅 般. 伏 盧 尼. 朱 俱 波. 渴 槃 陀. 粟 弋 .阿 鉤 羌. 副 貨. 疊 伏 羅. 賒 彌. 石 國. 女 國. 吐 火 羅. 劫 國. 陀 羅 伊. 羅. 越 底 延. 大 食> 편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유의하기 바람.
( ) 噠 挹 怛 同
《 ( ) 噠 國 , 或 云 高 車 之 別 種 , 或 云 大 月 氏 之 種 類 。 其 源 出 於 塞 北 。 自 金 山 而 南 , 在 于 闐 之 西 , 東 去 長 安 一 萬一 百 里 。 : 읍 달(挹怛)은 혹 전하기를, 고차(高車)의 별도 종족이라 하며, 혹은 대월(大月)씨의 종류라고도 한다. 그들의 원래 출원(出源)지는 새북이며, 금산【金山 : 알타이 산맥의 최고 봉우리】의 남쪽이며, 우전(于闐)의 서쪽인데, 장안(長安)으로부터 1만 1백리 떨어져 있다.》
《衣 服 類 胡 , 加 以 纓 絡 , 頭 皆 翦 髮 。 其 語 與 蠕 (蠕) 、 高 車 及 諸 胡 不 同 。 部 眾 可 十 萬 。 依 隨 水 草 。 其 國 無 車 , 有 輿 , 多 駝 、 馬 。: 의복은 오랑캐와 같은데, 끈을 두르는 것을 더하며, 머리는 모두 털을 자른다. 그 언어는 연연과 함께 같고, 고차(高車)와 여러 호(胡)와 같지 않다. 부(部)의 무리들은 십만이 넘는다. 물과 풀을 따라 의거하여 산다. 그 나라는 수레가 없고, 여(輿)는 있으며, 낙타(駱駝)와 말은 많다.》
《 又 兄 弟 共 娶 一 妻 , 無 兄 弟 者 , 妻 戴 一 角 帽 ; 若 有 兄 弟 者 , 依 其 多 少 之 數 更 加 帽 角 焉 。 西 域 康 居 、 于 闐 、 沙 勒 、 安 息 及 諸 小 國 三 十 餘 所 , 皆 役 屬 之 , 號 為 大 國 。 每 遣 使 朝 貢 。: 또 형제(兄弟)가 공히 한 아내를 맞는다. 형제(兄弟)가 없는 자는 처(妻)가 일 각진 모자를 쓴다. 만일 형제(兄弟)가 있거나, 형제가 많고 적음에 따라 모자의 각이 더하여 진다. 서역(西域)의 강거(康居). 우전(于闐). 사륵. 안식(安息)과 여러 작은 나라 30여 곳에 모두 복속되어 사역을 하는데, 부르기를 대국이라 하며, 매세 사신을 보내 조공(朝貢)한다.》
-------------------------------------------------------------------------
挹 怛 同 。
《至 隋 時 又 謂 挹 怛 國 焉 。 挹 怛 國 , 都 烏 滸 水 南 二 百 餘 里 , 大 月 氏 之 種 類 也 。 勝 兵 五 六 千 人 。 俗 善 戰 。 先 時 國 亂 , 突 厥 遣 通 設 字 詰 強 領 其 國 。 俗 同 吐 火 羅。 南 去 漕 國 千 五 百 里 , 東 去 瓜 州 六 千 五 百 里 。 大 業 中 ,遣 使 來 貢 。 按 劉 璠 梁 典 , 滑 國 姓 噠 , 後 裔 以 姓 為 國 號, 轉 訛 又 謂 之 挹 怛 焉 。 <挹: 뜰 읍. 怛: 슬플 달> : 수나라 때에 이르러 불렀던 읍 달(挹怛)국이다. 읍 달(挹怛)국은 도읍지(都邑地)가 “오 호 수(烏滸水)” 남쪽 2백 여리에 있으며, 대월(大月)씨의 별종이다. 뛰어난 병사가 5, 6천이다. 싸움을 잘한다. 예전에 나라가 어지러울 때, 돌궐(突闕)에서 파견된 “설 자 힐”이 그 나라를 강하게 영도하였다. 풍습은 토화라(吐火羅)와 같다. 남쪽으로 조국(漕國)이 천5백리 떨어져 있고, 동쪽으로 과주(瓜州)가 6천 5백리 떨어져 있다. 대업 중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생각해보면, “유번”의 “량 전(梁 典)”에, 골국(滑國)의 성(姓)이 “( )달”인데, 후에 후손들이 성(姓)을 나라이름으로 하였는데, 전음이 증거이며, 또 소위 읍 달(挹怛)이다.》
● 위 통전 서역 5 편의 “읍 달(挹怛)”편을 보면 이 나라의 서울은 “오 호 수 (烏 滸 水) 남쪽 2백 여리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 나라는 “오 호 수(烏滸水)”의 동서남북(東西南北)주위에 있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 호 수 (烏 滸 水)”는 어느 하천을 말하는 것일까?
◉ 烏 滸 水 : 『오 호 수(烏 滸 水)』는 아무다리아강(A m u, D a r y a, 러시아어: Амударья, 페르시아어:آمودریا, D a r y a (바다를 의미함)는 파미르(총령(蔥嶺) 고원에서 발원을 해, 힌두쿠시 산맥을 빠져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경 지대의 북서(北西)쪽에서 흐르는 강이다. 원래는 아랄 해로 흘러서 들어갔지만, 현재는 사막(沙漠) 쪽에서 사라지고 있다. 연장 1450km (원래는 2400 km)."다리야"는 터키어로 "강"의 의미이므로 "아무 강"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
아무다리야 (아시아 강) [옥수스 강] 출처: 브리태니커 / (영) Amu D a r y a. A m u d a r' y a, A m u d a r' j a라고도 씀. 옛 이름은 Oxus River.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
<바 흐 슈 강>과 <피 안 즈 강>이 합류(合流)하면서 형성(形成)되어 서북서쪽으로 흘러 “아랄 해” 남해안에 이른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국경 가운데 일부를 이룬다. 길이는 1,415㎞로 추정되나 가장 긴 원류인, 동(東)파미르 고원을 흐르는 ‘바흐지르’의 가장 먼 수원(水原)에서부터 측정하면 2,540㎞에 이른다. ‘아무다리야’라는 명칭은 지금의 ‘차르조우’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아몰’ 시에서 따왔다고 하며, 아랍인들은 ‘자이 훈’이라고 부른다.
‘아무다리야’ 강 유역은 남북으로는 950㎞, 동서로 1,450㎞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 ‘시르 강’ 유역, 동쪽으로 ‘타림 강’ 유역, 남쪽으로 ‘인더스· 헬만드’ 강 유역과 연결된다. 총 유역 면적 46만 5,500㎢ 가운데 강이 시작되는 산맥지역 또는 제라프 샨· 카슈카 강 집수지대(集水地帶)가 차지하는 면적은 22만 8,000㎢뿐이다. 유역 남동쪽에는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의 만년설 및 빙하가 덮여 있는 산악지역이 포함되는데, 힌두쿠시 산맥의 높이는 평균 5,000~5,500m이나 때로 5,800m, 7,000m에까지 이르는 곳도 있으며, 파미르 고원 북서쪽으로는 ‘알라이’ 산맥이 인접해 있다.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는 또한 키질쿰· 카라쿰 사막 일부가 속해 있는 투란 저지(低地)의 일부 평원이 포함된다. 주요수원 아래로는 왼쪽으로 수르호프 강, 오른쪽으로 카피르나간· 수르한 강 등 3개의 지류가 있으나 그 아래로는 더 이상 지류가 없이 계속 어귀까지 흐른다. 강물 대부분은 증발과 배수로 없어지거나 도중에 관개에 이용된다.
산악지대에서는 강변까지 서양 향나무와 포플러나무가 자라며 들장미와 검은 나무딸기 덤불이 무성하다. 물줄기를 따라 아래쪽에는 버드나무·갈매나무·수유나무가 주로 자라며 중류에 이르면 홍수 침전물로 생긴 저습지에 다양한 종류의 버드나무와 포플러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버드나무·수유나무·포플러나무가 멀리 떨어진 하류지역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갈대로 뒤덮인 삼각주에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철갑상어·잉어·돌 잉어·송어 등 여러 종류의 어류가 발견되며 강변에는 멧돼지·살쾡이·재칼·여우·산토끼가 서식한다. 조류도 약 200여 종이 있다.
아무다리야는 고대부터 지명도가 높았고 2~3세기경에는 아랍의 지리학자들에게까지 잘 알려져 있었으나 그 후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다가 러시아의 표트르 1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734년 처음으로 비교적 믿을 만한 지도가 만들어졌으며 19세기말 비로소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1920년 대 말 강 유역 전체를 다룬 지도가 타슈켄트에서 출판되었고 지금도 세부적인 연구가 러시아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다리야의 수량은 대체로 주요지류인 피안즈 강과 바흐슈 강에서 흘러드는 물에 의존하는데 이들 강의 물은 대부분 눈과 얼음이 녹아서 생긴 것이므로 아무다리야의 수위는 평원의 눈이 녹고 비가 오는 3~5월에 높아지기 시작하여, 산맥의 얼음과 눈이 녹는 6~8월에 절정을 이루다가 9~2월에 걸쳐 점점 줄어든다. 상류의 강기슭이 얼어붙는 겨울이 오면 하류의 삼각주 부근에 있는 누쿠스 시는 2개월에서 2개월 반가량 얼음에 둘러싸이게 된다. 2월과 3월에는 부빙(浮氷)들이 강 하류를 가득 메우며 떠다닌다. 상류에서는 수량이 일정한 반면 하류는 일정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물에 떠다니는 퇴적물이 아주 많다. 예를 들면 1960년 이후 케르키 부근의 퇴적물은 연간평균 2억 1,000만t이었으며, 누쿠스 부근은 1억 3,000만t이었다. 이들 지역의 충적토 비율은 각각 1세제곱 피트 당 0.25파운드와 0.17파운드로 기록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 십 년 동안 강 유역에서 재배하는 목화 등의 작물에 물을 대기 위해 아무다리야와 지류들에서 대량으로 물을 끌어들였으므로 아랄 해로 흘러드는 물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20세기 중반 아랄 해가 마르기 시작했다. 강어귀에서 테르메스까지 배가 다닐 수는 있지만 강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수심이 얕은 곳이 많아 항행이 어려워 수상운송은 발달하지 못했다. 홍수로 경작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하류에 복합적인 댐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970년대와 1980년 대 초에는 바흐슈 강에 거대한 수력발전소인 누레크 발전소와 로군 발전소가 세워졌다. 두 발전소의 댐 높이는 각각 300m와 335m로 완성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댐에 속했다.
-------------------------------------------------------------------------
● 이러한 지역에 있었던 “읍 달(挹怛)”을 운중(雲中)도독부에 예속시켰다면 그 “운 중(雲中)도독부”는 어디에 있었을까? 전회에도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인용하여 “운 중(雲中)도독부”의 위치를 찾아냈었다.
그때의 <운중(雲中)도독부 또는 운중(雲中)도호>의 위치는 적남(磧南)지방이었다. 적남(磧南)지방은 적중(磧中)의 남쪽지방으로 현 신강(新疆)의 천산산맥 이남지방과 동쪽 일부지방이었다.
그러나 신당서(新唐書) 지리지에 의한 운 중(雲中)도독부의 관할지역은 다소 다르다. 천산산맥 북쪽 일부와 남쪽과 서쪽지방을 아우르는 곳이다. 현재의 위치로 보면, 신강성과 그 서쪽지방을 아우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 이러한 곳에 “백등(白登)주”도 있었다는 것이므로, <전한(前漢)의 유방(劉邦)과 흉노(匈奴) 선우 모돈(冒頓)>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평성(平城)이나 백 등(白登)> 역시 이 주위에 있어야 역사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한(前漢)은 고구려(高句驪)라 할 수 있으며, 고구려(高句驪)는 마한(馬漢)에서 출발하였으므로 전한(前漢)은 마한(馬漢)이며, 고구려(高句驪)였다고 보는 것이다.
=========================================================================
○ <조선사(朝鮮史)에 대해 해설(解說)하는 인터넷 카페는 많으나, 대부분 반도사관(半島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과 연계(連繫)되는 것들이다. 『대륙조선(大陸朝鮮)』에 대하여 옛 역사서(歷史書) 원전(原典)속의 내용을 가지고 주장하는 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본인(本人) 역시 대륙 사(大陸史)와 조선사(朝鮮史)의 원전(原典)속의 내용으로 대륙조선(大陸朝鮮)의 실체(實體)와 영토(領土)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대부분의 대륙(大陸)사 인용(引用) 문건은 본인(本人)이 소개한 것들이다. 원전(原典)을 뒤지는 일은 힘들고 고된 작업이나, 이러한 근거(根據)나 고증(考證)할 수 있는 자료(資料)를 찾아낼 때의 기쁨은 모든 힘든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 대륙조선(大陸朝鮮)과 아세아조선(亞細亞朝鮮)!!!!!!!!!!!!!!!!!!!!!!
● 본인은 조선(朝鮮)의 진실(眞實)된 역사(歷史) 전개과정과 그 역사(歷史)가 이루어진 영토(領土)를 알고자 함이며, 마음속으로 찾고자 함이지, 그곳이 반도(半島)든, 대륙(大陸)이든,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든 관계치 않는다.
『이것의 핵심(核心)은 어느 곳에 “중국(中國)”이 존재했는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한가위를 지내고 나면, 곧 추분【秋分 : 이십사절기의 16번째로 백로와 한로사이의 절기로 9월 23일이다. 낮과 밤의 시간이 같다고 하며,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이 올 것이다. 여기서 본인이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가 사용 중이며, 대륙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합당한 지역이 어느 곳인가?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주위에 이러한 농본주의(農本主義)가 일상화되어 월력(月曆)을 이용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가 완성되었을까? 아니면 대륙(大陸)의 “중국(中國)”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어느 쪽이든 만들어진 곳은 농본주의(農本主義)가 뿌리박혀 있는 곳일 게다. 유목 종족(遊牧種族)과 농경 족(農耕族)!!!!!!!!!!!!!!!!!!!!!!!!여러 회원님들에게 연구 과제를 던집니다.
2011년 08월 29일 <글쓴이 : 문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