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펌 글 방

[스크랩] 조선의 대륙쪽 충청도와 전라도를 찾다

작성자김홍필|작성시간11.10.01|조회수587 목록 댓글 0

 

도회 중에 전라도 김제(金堤) 고을은 전주(全州)와의 거리가 지극히 가까운데도 나주(羅州)의 제읍(諸邑)에 속(屬)하였으니, 도리(道里)의 원근(遠近)을 다시 자세하게 마감(磨勘)함이 어떻겠습니까

국역조선왕조실록 > 세조 9년 계미(1463,천순 7) >

 

 

http://cafe.daum.net/damooltour/8JKr/100명나라시대 하간부 고지도

고려와 조선의 땅 김제는 경주의 동쪽 위하의 남쪽이며 연주의 북쪽이다.

 

 

청나라지도와 비교하면 명나라때 경주의 위치는 분명히 위하의 남쪽이다. 그러니 원래 명나라의 경주는 지금 료성시근처였다. 청나라때는 경주가 북쪽으로 이동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제의 위치는 당연히 지금 료성시의 동쪽이어야 한다.

 

 

 

지금 중국지도에서 료성시에 김제하라는 지명이 있음을 찾았다. 김제강이란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조선의 전주와 김제는 굉장히 가깝다고 했다. 조선의 김제가 지금 료성시동쪽임을 알았다면 전주역시 거기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제남시를 조선의 전주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http://blog.daum.net/sabul358/18321813 청나라고지도

 

본래 백제의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인데, 신라에서 청무현(靑武縣)으로 고쳐 임성군(任城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종(顯宗) 9년에 천안부(天安府) 임내에 붙이었다가, 뒤에 홍주(洪州)로 이속시켰다. 본조 태조(太祖) 4년 을해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쳤다. 딸린 부곡(部曲)이 1이니, 영수(永壽)이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산(定山)에 이르기 15리, 서쪽으로 홍주(洪州)에 이르기 16리, 남쪽으로 부여(扶餘)에 이르기 19리, 북쪽으로 대흥(大興)에 이르기 31리이다.
세종 지리지 / 충청도 / 홍주목 / 청양현

 

명나라지리지에는 청양이란 지명이 없는데 청나라지도에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청양의 남쪽에는 백제의 옛도읍인 부여가 있다고 하는데 청양의 남쪽에는 료성시가 있고 나는 료성시를 백제의 위례성이라고 했다. 즉 청양이란 지명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고 원래 조선의 청양이 저곳에 있었는데 조선이 청에 패전한후 땅이 넘어가면서 그들의 지도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濟南府元濟南路,屬山東東西道宣慰司。

명사

제남부는 원나라제남로이다. 산동동서도선위사에 속한다.

 

濟南路,上。唐濟州,又改臨淄郡,又改濟南郡,又??州。宋?濟南府。金因之。元初改濟南路總管府,舊領淄、陵二州。至元二年,淄州割入淄萊路,陵州割入河間路,又割臨邑縣?河間路,長?縣入泰安州,禹城縣?曹州,齊河縣入德州,割淄州之鄒平縣來屬,置總管府。戶六萬三千二百八十九,口一十六萬四千八百八十五。領司一、縣四、州二。州領七縣。

 

  錄事司。

 

  縣四

 

  曆城,中。倚郭。章丘,上。鄒平,上。唐、宋皆屬淄州,至元間來屬。濟陽。中。

원사

제남로는 당나라 제주이다. 임치군으로 개명했다. 또 제남군으로 개명했다. 송나라도 제남부라고 했다. 금나라도 동일하다 원나라초에 제남로 총관부를 두고 치주와 릉주2개주가 있다. 중략 역성현등이 있다.

중국역사지도 북제편 제주

중국학자들중 상당수는 이미 진실에 가깝게 우리 고대사를 알고 있다. 그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그들이 당나라제주라고 표기하는 곳이다. 내가 조선의 전주라고 한 지금 산둥성 제남시의 서쪽을 가리켜 제주라고 했다. 즉 그곳이 원나라 제남로이고 명나라 제남이다. 상식적으로 제북의 남쪽이 제남일것인데 제북군을 제주에 표기하는데 어떻게 제남군이 제북군의 동북쪽에 있겠는가?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손에 손잡고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